“나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정지용 생가 앞 돌다리는 황국신민서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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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정지용 생가 앞 돌다리는 황국신민서사비
  • 김남균 기자
  • 승인 2019.02.11 15:4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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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민족정신 말살위해 전국에 설치…옥천 죽향초‧동이초에서 발견
죽향초엔 이순신 장군 동상 좌대, 알고보니 일제 때 일본무사 동상
충북 옥천군 옥천읍 정지용 생가 앞 도랑으로 옮겨져 돌다리로 사용되고 있는 황국신민서사비.(사진 박명원 기자)
충북 옥천군 안내면 옥천향토전시관 표지석으로 사용되고 있는 황국신민서사비(사진 김남균 기자)

 

"① 나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이다. ② 나는 마음을 합해 천황폐하께 충의를 다한다. ③ 나는 인고 단련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된다"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 아동용]

"① 우리는 황국신민이며 충성으로써 군국에 보답하자. ② 우리 황국신민은 서로 신애협력하여 단결을 굳게 하자. ③ 우리 황국신민은 인고단련의 힘을 키워서 황도를 선양하자"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 일반용]

중일전쟁이 한참이던1937년 조선총독부 학무국은 ‘황국신민서사’라는 괴이한 맹세문을 만듭니다. 맹세문은 한마디로 한국인을 일본인으로 개조하려는 음흉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황국신민서사는 조선의 민중들에겐 고통이었습니다. 학교와 관공서, 은행을 비롯한 회사와 공장에서 조회를 하면서 맹세문을 낭송해야 했습니다. 조회뿐만 아니라 각종 집회등 행사 때 마다 외워서 낭송을 해야 했으니 얼마나 굴욕이였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국민이란 말도 ‘황국신민’에서 비롯됐다고 하는 설도 있는데 줄이면 ‘일 황제의 충성스런 신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기이한 맹세문을 만든 사람은 일본인이 아닌 조선사람 김대우(1900~1976)입니다.

김대우는 일제강점기 시절 전라북도와 경상북도지사를 지낸 인물입니다. 해방이후 미군정 하에서도 경북지사를 지냈고 미군정시절 공금횡령한 사실이 드러나 1946년에는 도피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 파고다 공원에서 학생들이 주최한 독립선언식에 참여해 시위를 벌였고 그 때문에 옥살이도 했던 인물이지만 곧바로 일제와 타협해 적극적인 친일관료로 변신합니다. 친일관료로 변신해 승승장구하던 김대우는 1936년 요직이라 할수 있는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과장의 지위에 오릅니다. 그리고 1937년 10월경 ‘황국신민의 서사’를 제정하는 계획을 입안합니다.

일제에 부역하고 공금을 횡령한 파렴치범인데도 1948년 뻔뻔하게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돼 조사를 받았지만 반민특위가 해산되면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이후 1960년과 1963년 국회의원 선거에 두 번 더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습니다.

 

죽향초‧동이초에 세워진 황국신민서사비

 

대전 한밭교육박물관에 전시된 황국신민서사 지주석. 일제가 죽향초에 황국신민서사비를 세우면서 학생들에게 돌덩어리에 서사를 쓰게한후 비석의 지주돌로 사용했다.

조선총독부의 만행은 황국신민서사를 낭송하는데 그치지 않고 전국 곳곳에 황국신민서사 비석을 세웁니다.

서울 남대문 앞에서부터 전국 방방곳곳에 비석을 세웁니다. 우리 충북지역에는 현재 2개의 비석이 남아있습니다. 2개의 비석은 공교롭게도 충북 옥천군에 있습니다.

두 비석모두 초등학교에서 발견됐습니다. 옥천읍 죽향초등학교, 그리고 안내면 동이초등학교에서 세워졌는데

현재는 ‘황국신민서사비’ 라는 글자는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해방이후 사람들은 글자를 쪼아 없에고 다른 글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죽향초에 세워진 비석에는 대신 ‘통일탑’이라는 글자가, 동이초에 세워진 비석에는 ‘옥천향토전시관’이라는 글자가 다시 새겨졌습니다.

위치도 옮겨졌습니다. 죽향초에 있던 비석은 옥천읍 정지용 생가 앞 작은 도랑으로 옮겨져 돌다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돌다리로 사용하면서 엎어 놓았기 때문에 글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옥천신문에 따르면 1993년까지 죽향초에 있었는데 졸업생들이 일재잔재라는 점을 지적해 1994년 현재 위치로 옮겼다고 합니다.

동이초에 있던 비석은 옥천군 안내면 옥천향토전시관 자리로 옮겨져 전시관의 표지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본 무사상 좌대위에 세워진 이순신 동상

 

충북 옥천군 옥천읍 죽향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 2005년 옥천신문은 죽향초 졸업생들의 말을 빌려 동상의 좌대가 일제강점기 시절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상징하는 일본 무사 구스노키 마사시게 동상을 설치할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붉은 원안은 일본에 세워진 구스노키 마사시게 동상 모습(사진 박명원 기자, 편집 우혜민 기자))

일제는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고 낭송하게 하는 것도 모자로 글로 쓰게했습니다. 1940년 죽향초등학교(당시 옥천제2공립심상소학교) 학생들에게 서사내용을 돌에 직접 쓰게 했고 비석을 세울 때 기반석으로 사용했습니다.

현재 이때 학생들이 서사를 슨 돌덩이는 대전 한밭교육박물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일제가 황국신민서사비만 세운 것은 아닙니다. 일제는 죽향초등학교애 일본 무사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 동상도 세웠습니다.

구스노키 마사시게는 일본 가마쿠라시대 무장으로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이런 사실은 2005년 옥천신문 이안재 (현 옥천신문 상임이사) 기자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옥천신문은 이 학교 졸업생들의 말을 빌려 죽향초 무궁화동산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

상을 떠받치고 있는 좌대는 일제가 천황에 대한 충성교육을 위해 건립한 구스노키 마사시게의 동상이 있던 곳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해방 뒤 일본 무사상을 뜯어냈으나 좌대를 부수지 않고 그 위에 이순신 동상을 얹었다"며 "왜군에 맞섰던 민족의 영웅이 일제잔재 위에 세워진 모습이 광복 60년을 맞도록 청산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는 졸업생들의 말을 덧붙였습니다.

 

“친일잔재, 기록하고 기억하는 안내비 세워야”

 

2005년 옥천신문 보도이후 일본 무사상 좌대문제 처리를 두고 여러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민족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일제 잔재 위에 세워지는 것이 타당하냐는 것이죠.

옥천신문에 따르면 2005년 논란이 일자 당시 죽향초 교감 A씨는 "원로 졸업생 등을 통해 사실 여부를 알아본 뒤 좌대가 일제잔재로 확인되면 이순신 장군 동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좌대는 철거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바뀐 것은 없었습니다. 지난 주 죽향초를 방문해서 확인해보니 일본 무사상 좌대는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이안재 옥천신문 상임이사에 따르면 좌대에 남아있던 일부 글자를 누군가가 쪼아 없앴다고 합니다. 그는 “2005년 당시에는 좌대 뒷면에 ‘애국부인회’란 글자가 있었는데 지금을 사라지고 없다”고 했습니다.

이안재 상임이사는 “학교에 남아있는 친일잔재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황국신민서사비가 있던 곳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일 무사상 좌대에도 이런 사실을 알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사비를 들여서라도 하고 싶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 한 올해 지역에서 모금운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죽향초 관계자도 “이런 사실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면서 “학교 운영위원회에서 논의해 처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학교도 논의에 들어간 가운데 한밭교육박물관의 처리방식도 관심을 끕니다. 현재 박물관은 충남지역에 발견된 황국신민서사비를 전시하고 있는데요.

이 곳의 황국신민서사비는 쓰러진 상태로 반쯤 땅에 묻혀져 있는 상태인데요. 이른바 ‘모독 전시’ 쯤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비석 옆에는 안내판을 설치해 일제의 황국신민화 만행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국민교육헌장비는?

 

충북 보은군 삼산초등학교에 세워진 국민교육헌장비(사진 김남균 기자)

충북 보은군 삼산초등학교 교정에는 현재도 국민교육헌장비가 남아있습니다. 비석에는 국민교육헌장 전문과 ‘대통령 박정희’라는 문구가 새겨있습니다.

국민교육헌장은 1968년 6월에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의 지시에 의해 ‘국민교육의 장기적이고 건전한 방향을 정립하고 시민생활의 건전한 윤리 및 가치관을 확립’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 1월 27일 대통령령으로 국민교육헌장선포기념이 폐지됐습니다.

국민교육헌장은 선포 당시부터 논란이 있었습니다. 내용자체가 국가주의적이고 전체적인 내용을 담았고 반공과 민족중흥이라는 집권세력의 통치데올로기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또 '국민에 대한 국가의 우위'로 요약되는 이 헌장은 천황의의 절대권력을 정당화하고 천황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과 충성을 강요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일제의 '교육칙어'를 그대로 본뜬 것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었습니다.

1978년 전남대학교 교수 11명이 국민교육헌장과 유신헌법 폐지를 요구했다가 2명의 교수가 해직,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1990년초반까지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워야 했던 기억이있을 겁니다.

1994년 김영삼 정부시절 기념행사를 폐지했고 이후 모든 교과서에서 삭제됐습니다. 이렇게 삭제된 국민교육헌장 기념비가 굳이 학교에 남아있을 필요가 있는지 이 점도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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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 2019-02-18 17:28:27
김영삼은 민족혼도 애국혼도 없는 매국노다 IMF유발로 국부를 팔아치우고 정체성도 혼미하여 좌빨들에 길을터준자로 역사에 길이 길이 그 이름을 날리것이다..

박문곡 2019-02-13 16:33:52
죽향초등학교는 육영수가 댕긴 모교이니 황국신민 다운 분위기를 간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부부일심동체.

한국인 2019-02-11 20:00:29
댓글조작으로 여론조작하고 가짜뉴스 남발하여 대통령을 사기탄핵하는 개같은 이 나라 보단 차라리 일본이나 미국으로 합방되어 선진국민으로 살아가는게 훨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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