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이면 어떠랴!…충북대학교에 세워진 김학응 송공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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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이면 어떠랴!…충북대학교에 세워진 김학응 송공비
  • 김남균 기자
  • 승인 2019.01.30 17:2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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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응, 일제강점기 보은‧옥천 군수 역임…해방후 충남북지사 승승장구
이승만 3‧15부정선거로 징역형…파묻었던 송공비, 2008년 다시 꺼내
충북대학교 야외박물관에 설립된 일제강정김 조선총독부 고위관료 김학응의 송덕비. 김 씨는 일제하 옥천군수, 보은군수를 지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있다.
1961년 2월 27일 동아일보 보도지면. 김 씨는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돼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사진 :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광복된 새나라에 이 대학 만년대계를 위하여... 김(학응) 지사는 조국의 동력이 되는...”(충북대학교 대학이전 김학응(충북도)지사 송공비 中에서”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김학응(金鶴應, 창씨개명 金子薰 / 1989~?) 전 충북도지사.

김 씨는 일제강점기 시절 충북도청 내무부 학무과를 시작으로 1940년 보은군수를 지냈고, 이후 옥천군수를 지내는 등 조선총독부 관리로 승승장구했다.

해방이 됐지만 일제에 부역해 성공적인 관료를 지낸 경력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해방 후 미군정하에서도 내무국 지방과장을 지냈고 1955년 9월부터 1958년 7월까지 충북도지사, 1958년 7월 29일부터 1960년 4월 30일까지 충남도지사를 지냈다.

김 씨는 충북도지사로 재직할 때인 1953년 충북도가 보유하고 있던 청주시 개신동 토지 23만평을 충북대학교 부지로 제공한다.

이것을 계기로 충북대학교 부지에 김 씨에 대한 송공비가 세워졌다. 천년 만년 갈 것 같았던 김 씨의 송공비는 1960년 4‧19혁명과정에서 땅 속에 묻히는 수모를 당하게된다.

1960년 김 씨는 충남도지사로 재직하며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에 가담한다. 이에 분노한 충남도민들은 김 씨의 사퇴를 요구하며 시위대열에 합류했다.

결국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고 이후 김 씨는 부정선거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61년 2월 27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 씨등은 업자들로부터 받은 당시 돈 2천5백만환 중 600만환을 자유당 도당 위원장에게 제공한 혐의를 받았다.

이후 1961년 10월 13일 열린 재판에서 김 씨는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 판결을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충북대학교가 김 씨의 송공비를 땅에 파 묻은 것으로 알려졌다.

1960년 4.19가 혁명이후 김 씨가 3.15 대통령 부정선거에 개입한 인사에 포함되면서 민주당 감사가 내려온다는 소문이 전해졌고, 충북대학이 송공비를 땅 속에 묻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씨의 송공비는 2008년 당시 임동철 충북대학교 총장의 지시로 다시 햇빛을 보게된다.

자발적 친일부역자의 대명사격인 일제하 고위관료를 지낸 김학응 전 충북도지사.

그는 친일경력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인해 처벌을 받은 적이 없다. 겨우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을 뿐이다.

김 씨는 이후 민주주의를 훼손한 대표적인 사건인 3‧15부정선거에 가담해 형사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땅속으로 들어갔던 김 씨의 송덕비는 다시 햇빛을 보며 유유히 충북대학교 교정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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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다리 2019-02-03 10:59:46
요즈음 빨개이 개자석들이 튀어나와 친일타령하더라.

저승사자 2019-02-03 08:08:42
미친놈일세~~~~~
혹시 쪽발이 아녀~~~

청주인 2019-02-02 20:44:29
아니 그게 어때서? 오늘의 충북대 부지를 만든 것은 그분의 공이 사실 아닌가? 일제시대는 구한말 미개의 조선의 망국적인 행태로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일제치하의 군수 도시사를 지낸 것이 죄가 될 수는 없다. 빈국 조선의 운명은 러, 일, 청 전쟁 시 러시아의 승리면 러시아 땅이 되었을 것이고 청국의 승리면 중국의 변방으로 통합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일본에 병합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왜냐? 일본에 병합되지 않았다면 한국이란 이름은 지구상에 지워졌을 것임. 행운은 미국의 원폭투하에 의한 일본패망으로 오늘의 한국이 존재하는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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