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에 묻혀있다 다시 세워진 일왕등극 기념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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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에 묻혀있다 다시 세워진 일왕등극 기념비석
  • 김남균 기자
  • 승인 2019.04.04 11: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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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 영춘면 만종리에 요시히토 즉위 기념림비
3년 전 존재 알려졌지만 무관심…마을자랑비와 나란히
1915년 충북 단양군 영춘면 만종리에 세워진 일왕 즉위기념림비(왼쪽)
1915 충북단양군 영춘면 만종리에 세워진 기념림비(왼쪽). 이 마을 구장기념비(가운데)와 마을자랑비(오른쪽)과 나란히 서있다.

 

일제의 잔재물이라면 있던 것도 치워야할 상황이지만 땅에 묻혀 있던 것이 다시 햇빛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충북 단양군 영춘면 만종리에 있는 ‘御登極記念林碑’(어등극기념림비) 비석입니다.

이 비석은 조선총독부가 1912년 일왕(日王) 요시히토(嘉仁·다이쇼)가 즉위하면서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조림사업을 홍보하기 위한 것인데요. 100여년 전 친일파 등이 경쟁적으로 조림사업을 하고 이를 기념했던 당시의 실상을 짐작하게 하는 상징적인 비석입니다.

비석의 존재는 2016년 2월 28일 <뉴시스>통신사의 단독보도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기념림비는 높이 80㎝, 폭 25㎝, 두께 10㎝ 크기이며 1915년 11월 10일 애초 면사무소에 건립됐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비석 좌우 옆면에는 ‘大正四年十一月十日’(대정 4년 11월 10일)과 ‘車衣谷面’(차의곡면)이란 글자가 음각돼 있습니다.

‘대정(大正)’은 요시히토 일왕 재임 시절 사용된 일본 연호로 대정 4년은 1915년에 해당합니다.

‘차의곡면’은 조선총독부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현재의 ‘영춘면’으로 바뀌기 전의 지명입니다. 비석이 존재하는 만종리는 당시 차의곡면 소재지였습니다.

당초 면사무소 마당에 세웠으나 광복 후 반일 감정이 격화되자 사라졌고 나중에 효동마을 길가에서 발견됐다는 것입니다.

이후 방치되다가 1997년 3월 마을에서 ‘만종리 마을 자랑비’를 건립할 때 이장 기념비와 함께 그 옆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비석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고 다시 세워

 

이 마을에 거주하는 김종수 할아버지는 2016년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사람들이 다니던 길가에 묻혀 있던 비석을 발견해 함께 파내서 보관했다가 마을 자랑비를 건립할 때 옆에 세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발견 당시 비석이 어떤 내용인지는 몰랐고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 기념림비는 요시히토 일왕 즉위에 맞춰 조성한 임야를 기념해 세운 비석입니다. 요시히토 일왕은 1912년에 즉위했는데요.

이때부터 일왕 즉위를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열렸고 그중 하나가 기념림(記念林 ) 조성사업이었습니다.

당시 충북에는 이런 기념림이 140여 곳, 140여 정보에 이르렀다고 하는데요. 수종은 리기다소나무가 주종이었고 아카시아 나무 등도 많이 심었습니다.

‘단양군 군세 일반’(1930년)에는 일왕 즉위를 기념한 어대례(御大禮) 기념림으로 9곳 20정보에 붉은 소나무 9000그루와 밤나무 8000그루를 단양지역에 심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황태자전하어강탄…일왕 아들 출생도 대대적으로 기념해

 

1934년 1월 13일자 <부산일보>. 어강탄[御降誕] 기념사업으로 기념탑과 회관 건설등이 포함된 사업계획을 심의하고 있다고 돼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요시히토 일왕은 1912년부터 1926년까지 재위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일본 천황의 온정적인 지배를 과시하기 위하여 각종 기념일에 전국 각지에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개최하도록 합니다.

1934년 3월 황태자 탄생을 기념하여 각 도에서 봉축식, 봉축연, 기행렬, 제등행렬, 가장행렬, 강연회, 연예대회 등의 축하행사가 열립니다.

기념사업으로는 기념식수, 기념저축, 기념문고, 국기게양대 설치, 기념림 설치, 기념관 설치 등이 행해진 것으로 조선총독부 자료에 기록돼 있습니다.

충북 음성군 음성읍 설성공원에는 일왕 황태자 출생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인풍정이란 정자와 ‘황태자전하탄신기념비’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이른바 황태자전하어강탄(皇太子殿下御降誕) 기념사업입니다. 조선총독부 자료에는 1935년 3월까지 기념사업은 모두 2711건에 경비는 79만6129엔이 지출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36년간 우리 민족을 수탈한 재원으로 일본 왕실 기념사업을 지속적으로 벌인 셈입니다.

이런 사실은 일제강점기 시절 언론의 보도에서도 알수 있습니다. 1934년 1월 13일 <부산일보>는 어강탄[御降誕] 기념사업으로 기념탑과 회관 건설등이 포함된 사업계획을 심의하고 있다고 보도합니다.

1934년 1월 14일자 <부산일보>. 어강탄(御降誕) 소식을 듣고 일본인임을 깨달았다는 낮뜨거운 내요이 들어 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다음날 <부산일보>는 “어강탄(御降誕)을 듣고 비로소 일본인임을 자각했다”는 낮뜨거운 기사도 내보냅니다. 참고로 <부산일보>는 일본어로 제작된 신문입니다.

비석의 존재가 <뉴시스>의 단독보도로 알려진지 3년이 지난 현재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콘크리트 기단위에 마을자랑비와 나란히 서있습니다.

지난 31일 만난 마을 한 주민은 “이런 비석이 있는지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안내판이라도 세워져 있다면 비석의 내용이라도 알게 될 텐데요.

오늘도 무관심속에 비석은 오늘도 햇빛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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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멘 2019-04-07 00:46:42
미개한 반일감정 선동 기사좀 작작 쳐올려라. 일제시대는 좋은것 축복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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