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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정치·행정 비석이 가루가 될 때까지 잊지 말자. 그 이름 친일
‘악정(惡政)’ 펼친 일제면장 사진 걸어놓고 초대면장 추앙오창읍사무소, 조선총독부가 임명한 정운회‧김규빈 1‧5대 면장으로 표기
오창초등학교엔 김규빈 공적비…비에 새겨진 일제 연호만 쪼깨서 감춰
청주시 오창읍사무소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가 임명한 2명의 면장의 사진을 게시하면서 초대면장과 5대면장으로 소해하고 있다.

 

호칭이 같다고 해서 조선총독부의 관료가 대한민국의 관료가 될 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상해임시정부에 있지 조선총독부에 있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사무소 2층 회의실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임명한 두 명의 면장 사진이 전시돼 있습니다.

1923년부터 1932년까지 조선총독부 오창면장을 지낸 정운회(鄭雲會)와 1933년부터 해방때가지 면장을 지낸 김규빈(金奎斌)의 사진입니다. 그리고 사진에는 현 오창면의 초대면장과 5대면장이라고 표기했습니다.

 

“면장의 악정에 못이겨, 선조의 고토(오래된 땅)를 이별”

 

1925년 1월 23일 시대일보는 <면장의 악정에 못이겨, 선조의 고토를 이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정운회의 악행을 비판했다.(사진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일제강점기 면장의 역할은 강제공출, 지원병과 위안부 모집 등 민중을 수탈하는 업무를 수행했던 사람입니다.

오창읍사무소가 초대면장이라고 사진을 걸어놓고 추앙하고 있는 이들의 행적은 어땠을까요?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한국사데이타베이스’를 통해 확인한 결과 정운회에 대한 기사 하나가 눈에 띕니다.

1925년 1월 23일 시대일보는 <면장의 악정에 못이겨, 선조의 고토를 이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냅니다.

기사의 부제목은 <가산을 팔고 남부녀대한 수백 군중은 갈곳이 어데, 안전지대를 찾는 오창면민>이라고 돼 있습니다.

기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1920년 초반에 오창면 도암평에 수해가 발생해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수해가 발생한 땅의 주인이 바로 오창면장인 정운회였습니다.

정운회는 청주식산은행 지점에서 당시 돈 8만원을 빌려 제방공사를 합니다. 자기 땅의 수해복구를 위해 제방공사를 한 것이죠.

정운회는 자기 토지의 제방고사를 해놓고 이해관계가 전혀없는 오창의 토지주들에게 조선총독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을 것이라며 동의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강요합니다.

하지만 토지주들은 이를 거부합니다. 주민들이 반발하자 정운회는 수백명의 토지주들을 학교에 모아놓고 강제로 도장을 찍게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든 서류를 가지고 제출했지만 조선총독부는 이를 각하합니다. 그러자 정운회는 다시 수방계(水防契)라는 단체를 만들어 조선총독부에 돈을 타내려 하지만 이 또한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자 정운회는 오창면의 토지주에게 제방공사비라는 명목으로 납입고지서를 발부하고 혹독한 독촉을 가합니다.

정운회의 악정(惡政)에 견디다 못한 오창면의 토지주들은 땅을 헐값에 내놓고 고향을 떠납니다. <시대일보>는 100여원 하는 토지를 80원에 내놓았다고 소개합니다.

 

일본인에게 넘어간 오창면 토지

토지가 헐값에 매물로 나오자 일본인들이 이 토지를 대거 사들입니다. <시대일보>는 그 결과 토지 전부가 일본인 소유로 넘어갔다고 보도합니다.

오창읍사무소가 제5대면장으로 소개한 김규빈에 대한 자료는 남아 있는게 거의 없습니다. 면장으로 있으면서 일제에 부역했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남아있는 기록은 없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임명한 오창면장 김규빈에 대한 남아있는 기록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오창초등학교에 그의 송덕비(頌德碑)가 남아있습니다.

청주시 오창초등학교에 일제강점기 시절 오창면장을 지낸 김규빈의 공적을 기리는 송덕비가 세워져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임명한 김규빈의 송덕비 뒷면. 일제연호 '소화' 로 추정되는 글자가 지워져 있다.

 

비석의 앞면에는 ‘면장 김공규빈송덕비’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그의 공덕을 표시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송덕비가 건립된지 오래됐지만 상태는 단 두글자만 빼고 매우 양호합니다. 비석 뒷면에는 설립시기를 표시하는데 두 글자가 지워지고 ‘十五(15)년 七(7)월’이라는 글자만 남았습니다.

일제는 새로운 천황이 등극 할때마다 새로운 연호를 사용합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명치, 대정, 소화라는 연호가 사용됐습니다.

김규빈의 군수 재임기관을 감안하면 지워진 글자는 소화(昭和: 일본식 발음 쇼와)로 추정됩니다. 소화는 1926년 처음 사용됐는데 소화15년이면 1940년입니다.

그런데 소화란 글자는 왜 지웠을까요? 바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면장이었다는 사실을 알수 있는 흔적이니까 지웠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일제강점기 면장을 지낸 김규빈의 송덕비는 오창초등학교 내에 있습니다. 오창초등학교 교문에는 마침 3‧1운동 100년을 기념하는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현수막에는 “3‧1운동 100년, 들꽃처럼 피어난 역사의 새봄”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습니다.

아참! 오창읍사무소에만 일제강점기 면장의 사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사무소에도 1938년부터 해방때까지 7년동안 면장을 지낸 이규필(李圭珌)의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김남균 기자  spartakook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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