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경계선지능 고백한 이우진 씨 인터뷰
취업·자립 원하지만 상처와 걱정에 사로잡혀
이제는 청주시, 충북도가 대답해야 할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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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진 씨.
이우진 씨.

 

“아! 그동안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

청주시 우암동에 살고 있는 27살 청년. 그는 얼마 전 자신의 무릎을 ‘탁’ 치며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어릴 적부터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쯤 되뇌었던 질문의 답을 비로소 찾았기 때문이다.

“난 왜 이렇게 이해력이 부족할까?”, “난 왜 이렇게 집중력이 떨어질까?”, “난 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다른 애들은 다 잘하는데 왜 나만 못하는 걸까?”

예비군 면제를 위해 받았던 종합심리검사에서 그는 뜻밖에도 자신이 ‘IQ 78, 경계선지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불과 2~3주 전 일이다. 경계선지능이라는 말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그가 당시 느꼈던 감정은 ‘충격’보다는 일종의 ‘위로와 위안’이었다.

 

기획기사 보도 이후 온 한통의 문자

충북인뉴스 기획기사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 보도 이후 낯선 번호로부터 한통의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충북인뉴스 최현주 기자님이십니까? 경계선지능에 관해서 취재하시나요? 저가 경계선지능이라서, 인터뷰 참여하고 싶습니다.”

곧바로 전화를 걸자, 조용한 목소리의 청년이 전화를 받았다. 얼마 전에 보도된 기획기사를 전부 다 보았고, 자신이 경계선지능이고, 자신과 같은 경계선지능인이 청주에도 많이 있을 거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날 커피숍에서 만난 청년은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조용조용하고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는 분명 청주시와 충북도에 ‘도와 달라’는 도움의 손을 내밀고 있었다.

 

투명인간처럼 지낸 학창시절, 그리고 현재

이우진 씨. 그는 ‘전형적인 경계선지능인’이었다. 어릴 적부터 사회성과 인지기능에 어려움이 있어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당연히 학업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었으며, 그럴수록 의욕과 자신감은 상실되어만 갔다. 조용하고 얌전한 태도 덕에 교사로부터 질책을 받지는 않았지만 ‘돌봄’과 ‘챙김’ 또한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학창시절을 ‘투명인간’이라고 표현했다.

신체검사에서 현역으로 판정을 받아 입대했지만, 이후 다시 현역 부적합심의를 받아 사회복무요원 생활로 군복무를 마쳤다. 예비군 훈련 또한 제대로 하지 못해 면제 서류를 준비하던 중 종합심리검사를 받게 됐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경계선지능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예비군 훈련에 가보니까 조별로 예비군 활동을 하는 건데 앞에서 교관이나 조교 같은 사람이 말하는 것도 못 알아듣고, 혼자 가만히 있다 보니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는 것 같고, 저를 이상하게 볼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제 와서 되돌아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경계선지능 때문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학창시절 내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것. 중학교 1학년 이후 공부가 너무 어려워 손을 뗄 수밖에 없었던 것. 특히 고등학교 시절엔 수업시간에 교사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 현장(기업)실습 학점을 채우지 못해 전문대 졸업도 할 수 없었던 것. 어쩌면 그가 현재 앓고 있는 우울증의 근본적인 원인이자 출발점도 경계선지능이 아닐까?

무엇보다 이런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부모와의 갈등으로 현재는 왕래조차 하지 않는 사이가 돼버린 것 또한 경계선지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모든 것이 두렵기만 하다.

“경계선지능이 우진 씨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저한테 있는 거니까 제 잘못이죠.”

어줍잖은 위로는 공허함만 더할 뿐이다.

 

“이런 삶을 계속 이어가야 하나?”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도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경제적 문제를 생각할 땐 숨이 막힌다.

하지만 곧이어 드는 생각은 ‘내가 조직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과 걱정뿐이다. 특히 최근 한 취업기관 상담사로부터 들은 말로 더욱 괴롭다. 상담사는 “우진 씨가 원하는 취업을 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일단 공공근로나 다른 사회적 경험을 많이 해 보세요”라고 말했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하나? 이런 삶을 계속 이어가야 하나? 이러다 고독사하는 건 아닐까?”

27살 청년이 할 수 있는 말은 분명 아니지만, 그의 표정은 이미 한두 번 한 생각이 아닌 듯 했다. 친구도, 취미생활도 없이, 스마트폰이 유일한 벗이자 취미생활이고 집에서 잘 나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에게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대신 최대한 취업할 곳을 알아보겠다는 말을 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돌아서는 기자에게 이우진 씨는 빠트린 것이 있다며 수줍게 말을 건넨다.

“저 같은 사람이 청주에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치하는 분들께 경계선지능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공공서비스를 확대해 달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혹자는 ‘신체 건강한 청년이 왜 집에서 빈둥거리냐’고, ‘공사판에라도 가면 되지 않느냐’고, ‘요즘 안 힘든 사람이 어딨냐’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20년 이상 학교에서, 사회에서, 가정에서 받았던 상처는 끈질기게 그의 발목을 잡고 있고, 누구도 그 상처의 깊이를 상상하긴 어렵다.

분명한 것은 그가 이제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에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그에게 이제는 청주시와 충북도가 대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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