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졸업 후 사실상 갈 곳 없는 경계선지능 청년들
일하고 싶지만 학창시설 받은 상처·트라우마는 여전
심화되는 고립과 은둔의 굴레…지원 체계 마련 절실
경계선지능청년 직접 나서서 지원매뉴얼·조례 제정 촉구

묶음기사

 

‘전 국민 10명 중 1~2명’, '느린학습자', ‘사각지대’, ‘장애·비장애의 중간’, ‘은둔형 외톨이’.

지능지수 71~84인 경계선지능인을 일컫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살펴보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유아시절부터 성인 이후까지 우리사회 곳곳에 있는 차별과 편견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 들어 일부 지자체에서 경계선지능인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와 지원센터가 생겨나고, 인식 또한 확산되고 있지만 한계는 여전합니다.

충북인뉴스는 8회에 걸쳐 경계선지능인들의 학교생활과 성인이후 삶을 조명해보고, 문제 개선 및 대안을 마련해보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그냥 아무거나. 최저시급보다 적게 줘도 괜찮아요. 내가 할 수만 있다면, 그냥 아무거나 라도 하고 싶어요."

 

24살 경계선지능인인 허채원 씨. 그녀는 어떤 일이라도 좋으니 자신도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예전에 빵집에서 단기간으로 일했을 때 동료로부터 받았던 지적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두렵기도 하지만 이제는 자신도 일을 해야 하고, 돈을 벌 나이가 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생각일 뿐, 용기도 없고, 어떤 일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23살 박윤수 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인쇄업에 흥미를 느끼고 있지만 경력도 없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없다. 어떤 일이라도 하고 싶지만, 채원 씨와 마찬가지로 막막한 느낌이다. 용돈을 주시는 부모님이 언젠가는 돌아가실 거라는 것을 윤수 씨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재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왼쪽부터 허채원 씨, 박윤수 씨. 
왼쪽부터 허채원 씨, 박윤수 씨. 

 

너무 높고 너무 두꺼운 벽, 그 이름은 ‘자립’

경계선지능 청년들의 고민은 심각하다. 상당수의 청년들은 학교를 졸업한 이후 소속감이 없다는 것, 무엇보다 학창시절에 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입었던 상처(?)를 회복하지 못했다. ‘실수하지 않고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못한다고 지적받으면 어떻게 하지?’ 두렵기만 하다.

부모들 또한 마찬가지다. 경계선지능 청년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자녀의 (경제적·정신적)자립 문제를 가장 어렵고 시급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서울시 동북권 NPO지원센터가 2019년 진행한 ‘느린학습자 지원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에 따르면 경계선지능인을 자녀로 둔 부모들의 상당수는 성인 느린학습자(경계선지능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먼저 필요한 지원프로그램으로 ‘맞춤직업훈련(167명 중 56명)’을 꼽았다. 또 자녀 장래와 관련, 가장 큰 걱정은 ‘취업(167명 중 98명)’이라고 답했다.

 

출처 : 서울시 동북권NPO 지원센터가 발행한 '느린학습자 지원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
출처 : 서울시 동북권NPO 지원센터가 발행한 '느린학습자 지원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

 

경계선지능 청년들에게 열려 있는 취업의 문은 생각보다 좁고 어둡다. 장애등급이 없는 경계선지능 청년들은 비장애인들과 경쟁을 해야 하고 비장애인 청년들도 취업하기 어려운 시대에 경계선지능 청년들의 취업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취재 중 만난 한 복지사의 말은 경계선지능인을 대하는 사회적인 인식과 취업의 벽이 얼마나 두꺼운지 실감케 한다. 또한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저희 복지관에서는 경계선지능 청년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우선 대기업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이 뜻밖에도 특혜를 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도와달라는 것이었는데 특혜라니…. 그들은 경계선지능인이 장애인도 아닌데 왜 우리가 특혜를 줘야 하느냐고 했습니다. 경계선지능인을 지원하려면 회사 내규를 바꿔야 하고,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죠. 사실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집에서 나오지 않는 청년들

자립이란 경제적·정서적 독립을 말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경계선지능 청년들의 자립을 위한 시스템은 전무하다. 일단 학교를 졸업한 경계선지능 청년들은 갈 곳이 없다. 경제적 자립은 차치하고라도 정서적 고립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 최근 서울시와 경기도 일부 기초지자체에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를 만들고 사업도 진행할 계획이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청년행복학교별’의 안은비 교사는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은 만날 친구도, 갈 곳도 없어요. 악순환이 반복되고, 점점 더 고립됩니다. 대체로 남자들은 게임에, 여자들은 유튜브에 빠지는 경향이 많습니다”라고 전했다.

또 “대다수 경계선지능인 청년들은 친구가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핸드폰에 저장된 친구 전화번호가 진짜 한개도 없는 청년도 있어요. 사회적인 관계가 거의 없고, 집에만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죠”라고 덧붙였다.

실제 청년행복학교별 재학생인 허채원 씨는 자신의 하루일과를 이렇게 소개했다.

 

‘오전 8시 기상→아침 식사→청년행복학교별에 갈 준비하기→10시~4시 청년행복학교 별 수업듣기→4시30분~ 씻고 내일 청년행복학교별에 갈 준비하기→저녁식사→카톡, 유튜브 보기→취침’

 

학습보다 사회성이다

대다수 경계선지능 청년들의 고등학교 졸업 후 진로는 대학입학, 단기간 취업, 실업 등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모두 만족스러운 것은 없다.

대학에 입학한다 해도 또래관계에서 또다시 벽을 느끼거나, 학업에 어려움을 겪어 중도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정규 취업이 어려워 단기간 아르바이트, 일부는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에 취업하지만 이곳에서도 부족한 사회성은 걸림돌이 된다. 업무능력은 시간이 갈수록 향상되지만 대인관계 어려움을 호소하다 그만두는 것을 반복한다. 실제 취재 중 만난 청년들은 일 자체보다도 대인관계, 부족한 사회성 때문에 일을 그만뒀다고 전했다.

현재 ‘청년행복학교별’에서는 최초 1~2년 동안 대인관계 기술과 사회성증진훈련, 원활한 소통방법을 교육하고 있다. 3년차에 이르러서야 (사)청소년과 가족의 촣은 친구들 산하에 있는 바리스타 카페, 쿠키공방, 출판사에서 활동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안은비 교사는 “경계선지능 성인들은 한 수업에 5~8명이 참여하는데 모든 수업은 함께 회의하고 협업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청년들은 처음엔 힘들어하고 말하기도 어려워하지만 점점 소통이 많아지고 협동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라고 소개했다.

 

‘청년행복학교별’ 수강생들이 활동하는 모습.(청년행복학교별 제공)
‘청년행복학교별’ 수강생들이 활동하는 모습.(청년행복학교별 제공)

 

고립과 은둔의 굴레

경계선지능 청년들의 가장 우려되는 진로는 실업상태, 특히 ‘은둔형 외톨이’ 상태다. 실제 ‘느린학습자 시민회’에서 만난 A씨 자녀 이야기는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20대 후반 나이지만 과거 학창시절 입었던 상처로 불안증이 여전히 지속되고, 현재는 밤낮이 바뀌어 생활하고 있으며, 아예 집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전문가들 또한 은둔형 외톨이 상태가 사회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가장 우려할 상황이라고 강조한다.

 

이재경 박사.
이재경 박사.

 

이재경 박사(한신대 민주사회정책연구원)는 “경계선지능인 생애주기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고등학교 시기입니다. 유아부터 초·중학교를 거친 학생과 부모는 이미 많이 지쳤고, 포기하는 분들도 일부 있습니다. 일부는 대학에 입학하지만, 고등학교 이후 경계선지능인의 상당수는 은둔형 외톨이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은둔형 외톨이가 되면 가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그 전에 지원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느린학습자 시민회 강근정 사무국장도 경계선지능인들의 사회적 고립을 우려하며, 국가 정책과 지원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강 국장은 “사람을 자원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현대사회는 저성장 시대이고 인구도 줄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이 굉장히 소중합니다. 은둔형 외톨이가 될 경우 사회적 비용이 엄청납니다. 어릴 적부터 국가에서 지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강근정 느린학습자 시민회 사무국장.
강근정 느린학습자 시민회 사무국장.

 

그렇다면 국가는 경계선지능인들의 자립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지원해야 할까? 청소년 및 청년 지원에 선진국이라 불리는 독일의 사례는 이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현재 독일에서는 ‘자립’과 ‘사회통합’을 목표로 영·유아기부터 성인까지 교육 및 자립지원을 하고 있다. 지역마다 있는 청소년청과 고용노동부에서 각 사회복지 기관을 지원, 독일 국민들은 장애등급 여부와 상관없이 무료로 취업교육을 지원받는다.

독일의 사회복지 기관 디어 슈테그(DER STEG gGmbH)의 홀개르 슈테더(Holger staedter) 과장은 “청소년(청년)들이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고 방치되어 있다면 나중에 시가 보조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나중에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죠. 이를 사전에 막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라고 말했다. 경계선지능인이라 하더라도 장애등급이 없으면 일반인과 동일한 잣대로 ‘경제적·정서적 자립’을 요구하는 우리나라와는 분명 대조적이다.

한편 경계선지능 자녀를 둔 한 부모의 말은 울림을 준다.

 

“일반적으로 자립하는 시기를 스무 살, 또는 대학을 졸업하는 20대 중반이라고 생각하지만 경계선 아이들에게는 발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애 등급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일반 청년들과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됩니다. 할 수가 없어요. 정부에서 한 단계 더 두터운 발판을 마련해 줘야 합니다.”

 

경계선지능 청년이 직접 요구한다

IQ72, 자신이 바로 경계선지능인이라고 당당히 밝히며, 지원 정책과 시스템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하는 청년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 자신이 경계선지능 당사자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안다며 영·유아는 물론 학생, 성인 지원 조례와 매뉴얼 마련 등을 촉구하고 있다. 

물론 그 또한 1~2년 전까지만 해도 타인의 시선, 인정할 수 없는 지능지수로 방황하고 괴로워했다. 그러나 이젠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며 사회를 향해 당당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이창갑 씨.
이창갑 씨.

 

25살 당진에 거주하는 이창갑 씨가 주인공이다. 초·중·고 시절 경계선지능이라는 말조차 모르고 살던 이창갑 씨는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에서 자신이 경계선지능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집중력이 약하고, 그래서 공부를 잘 못하고, 성격이 모나 친구를 잘 못 사귀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지 그것이 지능 때문이었다는 것을 스무 살이 다 되어서야 알게 된 것이다. 원망과 좌절은 이어졌고 자살을 고민할 정도로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과 가족이 곁에서 응원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결국 내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출발점은 당진시의회 의장을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없이 전화를 한 끝에 당진시의장을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눴고 지원을 위한 조례제정을 요구했다.

 

 

이 씨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기초부터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른 지역에 설립돼 있는 경계선지능인 단체도 방문하고, 경계선지능인과 관련된 모든 언론 자료를 찾아보며 이제는 자신의 앞날도 계획한다. 현재 배재대학교 조경학과에 재학 중인 이창갑 씨는 속도는 느리지만 조경기사 자격증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경계선지능인을 알리고 지원체계를 만드는데 발 벗고 나설 생각이다.

 

“경계선지능인들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자체에서, 나라에서 생태계 구축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검토가 아니라 적극적으로요. 제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고 취재에 응하는 것도 경계선지능인을 최대한 더 많이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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