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가정보다 양육시설에 더 많은 경계선지능 아동
퇴소자의 20%가량 소득 없어…주거·취업 지원 절실
월 소득 100만 원 이하 47.8%에 달해…악순환 반복
양육시설 종사자의 92%, 경계선지능 특성 알고 있다
인력·예산 없어 개별 프로그램 및 지원 못한다 답해
장애등급 여부 넘어 다양성·인권 존중받는 사회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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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10명 중 1~2명’, ‘느린학습자’, ‘사각지대’, ‘장애·비장애의 중간’, ‘은둔형 외톨이’.

지능지수 71~84인 경계선지능인을 일컫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살펴보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유아시절부터 성인 이후까지 우리사회 곳곳에 있는 차별과 편견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 들어 일부 지자체에서 경계선지능인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와 지원센터가 생겨나고, 인식 또한 확산되고 있지만 한계는 여전합니다.

충북인뉴스는 8회에 걸쳐 경계선지능인들의 학교생활과 성인이후 삶을 조명해보고, 문제 개선 및 대안을 마련해보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경계선지능인 여부를 결정하는 지능지수(IQ)는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큰 영향을 받는다. IQ는 어릴 적 양육환경에 따라 향상 또는 저하될 수 있음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실제 경계선지능 학생을 위한 대안학교 예룸예술학교 지우영 이사장은 자신의 자녀이야기를 전하며, 양육 및 교육환경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지 이사장에 따르면 자신의 자녀 또한 발달장애였으나 지속적인 맞춤형 교육과 정서적인 지지로 현재는 IQ가 85이상으로 향상됐다.

문제는 반대의 경우다. 적절한 교육이 없을 경우, 또는 방치될 경우 지능은 70이하로도 떨어질 수 있다.

이쯤에서 ‘최후의 거주수단’, 이른바 양육시설을 선택(당)한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시설 내 자립지원전담요원도 있고, 상담사도 있지만 사실 일대일 돌봄과 맞춤형 교육이 안 되는 상황에서 양육시설 내 경계선지능 아동들의 문제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양육시설 아이들 중 경계선지능인 비율이 일반 가정의 비율보다 더 높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에서 드러났다. 우리나라 경계선지능인 비율이 통상적으로 13.5%라면, 양육시설에서의 경계선지능인 비율은 약 22%에 달한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서해정·박현숙·이혜수 박사가 2020년 발표한 ‘아동양육시설 퇴소 후 경계선 지적기능아동의 지원방안연구’에 따르면 2020년 퇴소 예정이었던 청소년 286명 중 경계선지능으로 진단 또는 의심받았던 인원은 63명이다.(표1 참조)

 

 

심지어 30%가 훌쩍 넘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2019년 청주복지재단이 발행한 ‘청주시 경계선지능 의심아동 실태조사 및 지원방안 모색연구’에서 서재욱 박사는 공동생활가정이나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동 중 경계선지능아동으로 진단받거나 의심되는 아동은 37% 정도라고 밝혔다.

 

양육시설에서의 경계선지능인…“그 자체가 지원대상”

양육시설 퇴소자의 47%, 월 소득 100만 원 이하

그렇다면 양육시설 종사자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경계선지능 아동들의 어려움은 뭘까?

한마디로 말하면, 이들은 일반가정의 경계선지능 아동(청소년·청년)들이 겪는 문제를 동일하게 겪지만 그 정도가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다.

학교생활 부적응은 물론, 특히 일반 가정의 아이들이 겪지 않아도 될 시설 내 차별과 고립감도 상당하고, 성인 이후 삶은 더욱 어렵다. 앞서 언급한 한국장애인개발원 연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서해정 박사.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서해정 박사.

 

우선 연구에 따르면, 경계선지능아동들은 시설과 학교생활에서 상당한 부적응을 겪고 있다. 양육시설 종사자 98명 중 65명(66.4%)이 자신이 근무하는 시설의 경계선지능아동 또는 의심아동은 학교와 시설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답했고, ‘매우 잘 적응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표2 참조) 양육시설이 비장애 아동 시설이다 보니 모든 것이 비장애 아동 중심으로 운영되고, 그 안에서 경계선지능 아동들은 차별과 고립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서해정 박사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경계선지능 아동이 만약 장애시설에 있었더라면 더 성장하고 행복하게 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있었다”고 전했다.

 

 

‘시설·학교생활 부적응’ 이외에도 퇴소 후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퇴소를 맞이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우리나라 2021년 전국 고등학생 대학 진학률이 73.7%인 것에 비해, 경계선지능 청소년들의 대학(2·3·4년제 포함) 진학률은 31.1%(135명 중 42명)에 불과하다.(표3 참조)

 

 

또 정규직 취업은 14.7%(136명 중 20명)에 그쳤다.(표4 참조) 소득이 전혀 없다고 답한 사람(19.9%)을 포함해 월 소득이 100만 원 이하라고 답한 인원은 절반 정도인 47.8%(136명 중 65명)에 달했다. 151만 원 이상이라고 답한 사람은 15.4%(136명 중 21명) 뿐이었다.(표5 참조) 사실상 양육시설에 있었던 경계선지능인 대부분이 퇴소 후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임금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서해정 박사는 “특히 여성의 경우엔 성 착취와 성폭력, 나아가 성매매가 발생하고 남성의 경우엔 노동착취, 사기 등 사건·사고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어 “일반 아이들도 만 18세에 집을 나가라고 하면 어렵고 힘든데 경계선지능 청년들은 그야말로 그 자체가 지원대상이다”라고 강조했다.

 

 

경계선지능인 어려움 알지만 인력·예산 없어

결국 양육시설에 거주하는 경계선지능아동 지원방안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는 방안을 찾는데 집중되어야 한다.

경계선지능아동들의 시설부적응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집단생활시설보다는 2~3명이 거주할 수 있는 집, 또는 소규모시설이 요구된다. 서 박사는 “경계선지능 아동은 개별적인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집단 시설이 맞지 않는다. 50명~80명이 있는 시설에서 생활하다 보면 그 안에서 낙오가 있을 수 있어서 훨씬 더 많은 차별과 고립감을 느낄 수 있다”며 “학교 근처에 2~3명이 거주할 수 있는 집이나 소규모 그룹홈이 필요하다. 보모와 같은 사회복지 양육자들이 함께 생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외국의 경우는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아이라고 판단되면 장애·비장애, 아동·성인 등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사회에 안착되기까지 관리해주고 있다. 바로 이런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독일의 경우엔 장애등급 여부와 관계없이 공교육 내에서 적응이 어려운 학생들이 별도의 소규모 시설(2~6명)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또한 퇴소 이후에는 ‘취업’, ‘직업훈련’, ‘대인(사회성)관계 향상’을 위한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양육시설 종사자 98명 중 68명이 경계선지능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취업’(49.1%, 98명 중 48명)과 ‘원활한 대인관계 형성’(20.5%, 98명 중 20명)이라고 답했다.(표6 참조)

 

 

한편 직접적인 수혜대상자인 경계선지능인 이외에도 양육시설 종사자들도 할 말이 많다. 현재 양육시설에서는 경계선지능 아동을 위한 매뉴얼이나 교재도 부족한 상황이고, 무엇보다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 더 이상 ‘열정 페이’만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연구에 따르면 아동양육시설의 종사자들은 공교육 교사들과는 달리, 경계선지능인에 대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지 또는 이해하고 있었다. 응답자 98명 중 91명이 ‘경계선지능 아동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고, 이중 69명(70.4%)은 ‘경계선지능인들의 특성을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표7 참조)

 

 

그러나 막상 이들을 위한 개별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13.5%(96명 중 13명)에 불과했다.(표8 참조) 개별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특화(개별화) 프로그램 진행 인력 부족’(42.1%, 83명 중 35명), ‘관련 매뉴얼 및 지침의 부재’(20.5%, 83명 중 17명)를 가장 많이 꼽았다.(표9 참조)

청주시에서 유일하게 경계선지능 청소년을 위한 양육시설인 그룹홈의 원장 A씨도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아동자립지원단이 발행한 ‘느린 학습자를 위한 자립기초단계 매뉴얼Ⅰ’을 활용해 아동들을 지도했지만 현재는 후속 자료가 없어 더 이상 교육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교재도 없고, 전문가도 없는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제대로 교육을 못할 바에는 차라리 장애등급을 받아 치료라도 제대로 하고 싶다. 받을 수만 있다면 정말 받고 싶다”고 강조했다.

결국 성폭력 문제와 마찬가지로 양육시설에 거주하는 경계선지능 아동 또한 사각지대 중의 사각지대로 제도권 편입과 지원이 절실히 요구된다.

 

출처 : ‘아동양육시설 퇴소 후 경계선 지적기능아동의 지원방안연구’(한국장애인개발원)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수준 OECD 중 최하위

경계선지능인을 장애 범주에 포함시켜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에 혹자는 “중증장애인 지원도 부족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경미한 장애를 겪고 있는 경계선지능인까지 지원해야 하냐”고 반박할 수 있다. 눈앞에 현실만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장애인 지원 예산을 고정시켜놓고 문제를 보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올해 우리나라 장애인 예산은 약 6조원으로, 전체예산 607조 원의 1% 수준이다. 등록된 장애인 인구 비율 5.4%에 비해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또 장애인 정책 수준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국 중 최하위권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주영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박사는 ‘장애인 정책 유형화 : 차별법제, 소득보장정책, 고용정책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통해 장애인 지원고용 프로그램과 근로 인센티브 등을 평가한 ‘고용정책’ 측면에서 한국은 18개국 중 최하위라고 밝혔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서해정 박사도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은 OECD주요국들과 비교하면 3분의 1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경계선 아동 중 좀 더 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추가해 같이 지원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예산 확대가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느린학습시민회 사무실은 성북구 종암로에 위치해 있다.
느린학습시민회 사무실은 성북구 종암로에 위치해 있다.

 

장애 등록만이 능사인가…다양성·인권 문제로 접근해야

이 시점에서 또 다른 우려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경계선지능인 문제는 ‘장애인 등록’만으로 다 해결될 수 있는 것일까? 이 또한 낙인과 갈라치기를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만일 지원대상을 ‘IQ 71~84’라는 숫자로 범주화시킬 경우, 84와 85의 차이는 또 무엇이고, 그 경계의 문제는 또 어떻게 극복한단 말인가? 취재 내내 들었던 생각이고, 실제 일부 취재원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바로 이점에서 부모들의 자조모임에서 사단법인으로 활동반경을 넓힌 느린학습자시민회는 의미 있는 단체로 평가받는다. 경계선지능인 뿐 아니라 그와 유사한 특성으로 어려움을 겪는, 그야말로 ‘천천히 배우는 사람들’의 권리 옹호 운동, 나아가 인권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느린학습자시민회는 장애등록을 통해 지원을 받을 수 있느냐 또는 아니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 약자들의 권리 옹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느린학습자시민회의 목적은 현재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2016년 서울시 성북구에서 시작된 부모들의 자조모임에서 강북, 양천, 도봉, 동대문, 노원, 구로, 강서, 경기도 용인, 의정부 지역 시민들까지 참여하고 있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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