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 제정 등 많은 변화 있었지만 한계와 숙제는 여전
엄마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
모든 시민이 장애로 차별·배제되지 않는 사회되어야

묶음기사

‘전 국민 10명 중 1~2명’, ‘느린학습자’, ‘사각지대’, ‘장애·비장애의 중간’, ‘은둔형 외톨이’.

지능지수 71~84인 경계선지능인을 일컫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살펴보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유아시절부터 성인 이후까지 우리사회 곳곳에 있는 차별과 편견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 들어 일부 지자체에서 경계선지능인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와 지원센터가 생겨나고, 인식 또한 확산되고 있지만 한계는 여전합니다.

충북인뉴스는 8회에 걸쳐 경계선지능인들의 학교생활과 성인이후 삶을 조명해보고, 문제 개선 및 대안을 마련해보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느린학습자시민회 부모 자조모임 참관기>

“느린 것이 죄인가요? 빠른 사람이 있으면 느린 사람도 있고,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요? 속도가 다를 뿐인데, 왜 우리는 죄인처럼 살아야 합니까?”

 

지난 5월 16일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느린학습자시민회’ 사무실 분위기는 굉장히 묵직했고, 먹먹했다. 경계선지능인은 물론 느린학습자들의 인권운동을 하는 ‘느린학습자시민회’에서는 다양한 자조모임을 열고 있는데, 이날은 20~30대 경계선지능 청년을 자녀로 둔 엄마들이 모였다. 7~8명의 엄마들은 그동안 아이를 키우며 받았던 상처를 이야기하고, 조언하며,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냈다.

아이가 학교폭력 피해자로 몰려 학교 가는 것을 너무 두려워했던 이야기부터, 수년 동안 상담실을 전전했던 이야기, 아이문제가 남편과의 갈등으로 이어져 이혼까지 감내해야 했던 시간, 급기야 아이의 자살시도 이야기까지……. 3시간 넘게 이어진 엄마들의 속이야기는 안타까움을 넘어 충격적이었다.

이날 처음 만난 사이인 엄마들은 한두 마디 말로도 금세 공감대가 형성됐고, 홀로 자녀양육을 감당해야만 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눈물을 쏟았다.

서로 눈빛만 보고도 동병상련을 느끼는 걸까? 엄마들의 아픔은 자녀가 단순히 공부를 못하는 것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동안 받은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아 약간의 자극에도 아파했고 괴로워했다. 특히 10년, 20년 후 언젠가 자신이 세상을 등지고 난 이후 홀로 남을 자녀들의 먹고 사는 문제, 결혼 문제, 궁극적으로 자립의 문제 등등 걱정은 산 넘어 산이었다.

 

 

상처로 얼룩진 지난날

그들은 도대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은 것일까.

‘느린학습자시민회’에서 만난 A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딸이 유치원에 다닐 무렵 인지와 행동이 느리다고 판단돼 1년을 유예시켜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유치원에서 일 년을 더 배우면 한 살 어린 동생들보다 키도 더 클 것이고, 느린 것쯤은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딸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반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게 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놀림의 강도는 세졌고 가해자는 한명에서 두 명으로, 두 명에서 네 명으로 늘어났다. 나중에는 한반에서 두 반, 모든 전교생이 딸을 무시하기에 이른다. 치료실, 상담실, 대안학교, 특수학교 등등 안다녀본 곳이 없다.

공교육에서 이뤄지지 않은 언어치료, 상담 등으로 한 달에 100만 원 가량을 쏟아 부었다. A씨는 당시 상황을 “돈을 그냥 길거리에 버리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안할 수도 없어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거든요”라고 전했다.

그 과정에서 잦은 부부싸움과 이혼은 정해진 수순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왔고, 정신적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녀는 딸과 함께 지낸 지난 시간을 ‘환자가 환자를 돌보는 격’이라고 표현했다.

어느덧 딸의 나이도 스무 살이 넘었다. 그 지긋지긋한 학교폭력으로부터 벗어났지만 그럼에도 A씨의 고통은 여전하다. 단기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딸이 느꼈을 주변의 차가운 시선, 그 속에서 혼자 감내해야 했던 외로움,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딸을 어떻게든 돌볼 수 있겠지만 자신이 사망한 이후 딸의 장래는 암담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의 심적인 고통까지 어루만져 주면서 아이들이 땅을 딛고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지금은 엄마도, 아이도 발 한 짝은 구름위에 놓고 있는 격이라 우리 아이들은 언제 추락할지 몰라요. 대한민국에서 우리 아이들은 설 곳이 없습니다.”

 

너무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은 마음에 ‘느린학습자시민회’를 찾았다는 B씨. 그녀 또한 현재 가슴에 돌덩어리를 안고 살아가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B씨는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인지와 말투, 행동이 조금 느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금 늦될 뿐, 기회만 되면 언젠가 아들의 재능은 터질 거라고 생각했고 기다렸다. 물론 B씨도 A씨와 마찬가지로 대안학교, 혁신학교, 일반 학교 등등 여러 학교를 전전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들이 29살이 된 지금, 그녀는 후회하고 있다.

 

“아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받은 상처가 너무 너무 많은 거예요. 제가 아는 상처도 있고, 모르는 상처도 있고. 중학교 때부터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했었어요. 어떻게든 일반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하려고 한 것이 아들에게 큰 상처와 좌절을 준 것 같아요. 너무 후회됩니다. 대학 때까지는 그래도 저랑 대화도 많이 하고 제가 얘기하면 힘을 다시 얻고 뭐라도 해보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저하고도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아요. 예전의 상처를 떠올리면서 아예 집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도 않고, 집에만 있어요.”

 

‘차라리 장애등급을 받고 특수교육을 받았더라면….’ 수없이 후회하고 되뇌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하지만 B씨는 엄마니까 또다시 힘을 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그만 살고 싶다’며 수십 알의 안정제를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은 자녀를 보며 억장이 무너졌다는 C씨. 자신의 자녀가 중학교 시절 체험학습장소를 찾지 못해 홀로 몇 시간 동안 길거리를 헤맸다는 D씨. 많은 것을 바라지 않으니 선생님이 조금만 신경을 써줬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말하는 E씨.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는 딸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달리 할 것이 없었다는 F씨. 말로만 통합교육, 맞춤형교육이지 실제 학교에서 받을 수 있는 도움은 전혀 없었다고 교육계와 학교를 성토하는 G씨.

모두 과거형 표현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형, 미래형이다.

 

엄마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평범한 대한민국 시민

엄마들의 가장 큰 소망은 자신의 자녀가 최저시급 이하라도 좋으니 고정적인 임금을 받으면서 그저 평범한 사회구성원으로 여가생활도 즐기고 가족들과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의 소망은 이뤄질 수 있을까?

엄마들은 우선 사회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성이 좋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대인관계,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니 취업을 해도 한두 달 넘기기가 어렵다는 것.

경계선지능인들의 대인관계 어려움은 의사소통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경계선지능 중학생들을 지도했던 서울대학교 김희은 박사는 “경계선지능 아이들의 특징을 단순히 느리다고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딱히 표현하긴 어렵지만 ‘아’라고 얘기하는데 ‘어’ 아니에요? 라고 묻는 경우가 많아요. 반복해서 설명하고 익숙해지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경계선지능인의 특징은 다양하다. 인지기능은 낮지만 일부에서는 사회성이 발달한 이들도 있고, 인지기능은 높지만 사회성이 현저히 낮은 이들도 있다.

결국 이날 엄마들의 이야기는 아이들 특성에 맞는 ‘맞춤형 직업교육’이 시급하다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이어 기본소득보장, 성년후견제도, 고용·주거·돌봄 지원, 평생교육 등 중장기적 안전망 구축,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고 경계선지능인 문제를 더 이상 가정의 문제로 한정시키지 않고 국가가 나서서 지원해야 한다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출처 : 느린학습자 지원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서울시 동북권 NPO지원센터)
출처 : 느린학습자 지원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서울시 동북권 NPO지원센터)

 

이는 서울시 동북권 NPO지원센터가 2019년 진행한 ‘느린학습자 지원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 결과와 동일하다. 당시 연구결과에 따르면, 성인 경계선지능인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가장 중요하고, 가장 먼저 필요한 지원프로그램으로 ‘맞춤직업훈련(167명 중 56명)’을 꼽았고 사회성 향상(37명), 성인자립설계지원(23명)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장애든, 비장애든, 경계선이든, 아이는 무조건 행복해야 합니다”

한편 이날 ‘느린학습자시민회’에서 만난 H씨의 이야기는 오래토록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자신의 자녀가 경계선지능임에도 현재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들이 고정적인 급여를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 스스로 행복해 하기 때문. 오랜 시간 공부하고 인내하며 아이에게 수없이 많은 긍정 피드백으로 격려하고 도와준 결과다. H씨는 이날 모인 모든 엄마들의 부러움, 존경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모든 가정의 부모들이 H씨처럼 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녀의 말은 취재와 기사를 쓰는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저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오겠죠. 하지만 아이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끊임없이 지지해야죠. 전 엄마니까요. 그런데 이것만은 확실해요. 아이가 장애로 태어났든, 비장애로 태어났든, 경계선으로 태어났든, 그것은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이는 무조건 행복해야 합니다. 아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지 이제는 사회가, 나라가 생각하고 나서야 합니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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