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또래관계, 학교에서 받은 상처 누적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설 곳 없는 경계선지능인
맞춤형교육 하면 눈에 띄는 성과 확인할 수 있어
기초학력보장법 긍정적이지만 여러 한계점 있어
공부보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인 후 자립
관심도, 지원시스템도 없다…전 생애 지원 절실

묶음기사

 

‘전 국민 10명 중 1~2명’, '느린학습자', ‘사각지대’, ‘장애·비장애의 중간’, ‘은둔형 외톨이’.

지능지수 71~84인 경계선지능인을 일컫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살펴보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유아시절부터 성인 이후까지 우리사회 곳곳에 있는 차별과 편견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 들어 일부 지자체에서 경계선지능인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와 지원센터가 생겨나고, 인식 또한 확산되고 있지만 한계는 여전합니다.

충북인뉴스는 8회에 걸쳐 경계선지능인들의 학교생활과 성인이후 삶을 조명해보고, 문제 개선 및 대안을 마련해보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유난히 캐릭터 그리기를 좋아하는 지선이(가명). 지선이는 올해 초등학교 3학년, 열 살이다. 지선이는 요즘 힘들다. 1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선영이(가명)가 언제부터인가 왕따를 시키기 때문이다. 전에는 선영이와 함께 캐릭터 그리기를 하며 즐겁게 지냈었는데, 요즘 들어 선영이는 지선이가 싫어하는 것을 자꾸 시킨다. 지선이는 그런 선영이 때문에 힘들고, 화가 난다.

 

“선영이가 자꾸 이거해라 저거해라 시키고 그래요. 그렇게 안하면 죽여 버린대요. 1학년 때는 잘해줬었는데…. 선생님한테 얘기해도 그냥 알아서 하래요. 선영이랑 안 놀면 같이 놀 친구가 없어요. 학교요? 학교는 재미없어요, 그래도 학교니까 공부는 해야 할 것 같아요. 착한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쩔 수가 없어요.”

 

지선이는 이내 울먹인다. 며칠 전에는 선영이가 가지고 오라는 과자를 안 가지고 갔더니 절교하겠다는 말을 했다. 지선이는 자꾸 화가 나고, 그래서 마음속에 있던 착한 마음이 없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체육은 좋아하지만 수학 익힘과 받아쓰기가 제일 무섭고 두렵다는 지선이.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지선이는 최근 학교와 지역아동센터 교사로부터 경계선지능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듣고 검사를 진행했다.

 

유난히 캐릭터 그리기를 좋아하는 지선이(가명). 캐릭터를 그려달라고 취재진이 요청하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유난히 캐릭터 그리기를 좋아하는 지선이(가명). 캐릭터를 그려달라고 취재진이 요청하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차곡차곡 쌓이는 상처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지선이’가 있다. 전 국민의 13.5%, 경계선지능인의 정확한 통계 수치는 아니지만 웩슬러 지능검사 기준으로 추측해볼 수 있는 수치다. 한 학급 당 2~3명은 경계선지능 아동이라는 얘기다.

이들의 상당수는 친구들과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고 말이 어눌하며, 소위 ‘분위기 파악’이 느리다. 그리고 수학과 글쓰기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들의 내면에는 또래관계·학습문제로 받은 상처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지선이를 교육했던 지역아동센터의 정찬주 교사는 “경계선지능 아동들은 학급에서도, 센터에서도 자꾸 소외되고 상처가 누적됩니다. 포기가 반복되고 나중에는 정서적으로 위축되면서 능력이 다운될 수밖에 없어요”라고 전했다.

단정 짓긴 어렵지만, 지선이의 어려움은 앞으로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초등 고학년, 중·고등학교에 진학할수록 학습은 어려워질 것이고, 친구로부터 받은 상처감은 깊어질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공교육현장에서 지선이의 문제를 해결해 줄 학교시스템과 환경, 교사는 찾기 어렵다.

초·중·고를 다행히 졸업한다 해도 졸업 이후 자립문제는 또 다른 ‘벽’으로 다가온다.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직장이나 아르바이트를 구해도 한 달 이상 버티지 못한다며 자립은 남의 나라 얘기라고 토로한다. 마음을 터놓을 친구 또한 없어서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것은 아닐까 늘 전전긍긍한다.

 

관심도 없고, 지원시스템도 없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에서 경계선지능인을 위한 교육과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관계자들은 우선 교사들의 상당수가 경계선지능인 자체를 너무 모르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물론 수년전보다 많이 알려졌지만 교사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경계선지능인을 ‘학습부진아’, ‘답답한 아이’ 쯤으로 여긴다.

공교육 특수교사이면서 경계선지능 아동의 아빠이기도 한 이보람 진건중학교 교사는 “과거보다 많이 알려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교사들이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진건중학교 이보람 교사.
진건중학교 이보람 교사.

 

이 교사는 일단 이러한 현상에 대해 교대 또는 사범대 교육과정에 경계선지능과 관련된 교과목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2020년 권인숙 국회의원은 서울교대의 ‘2010년부터 2020년까지 학기별 교육과정’을 분석한 결과, 20년간 교육과정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밝힌바 있다. 서울교대에서 교대생들이 특수교육과 관련해 이수하는 교과목은 단 한 과목, ‘특수교육학개론(2학점·필수)’ 뿐이고 경계선지능인과 관련된 교과목은 아예 없는 상황이다.

이보람 교사는 “임용고시에 경계선지능인과 관련된 문제가 단 한 문제라도 나온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반해 상당수 교사들은 시스템의 부재를 가장 큰 문제라고 꼽는다. 경험상 ‘느린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다수의 아이들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2~3명 아이에게만 집중할 수 없고, 별도의 프로그램이나 교수법도 없다는 얘기다.

서울시 동북권 NPO지원센터가 2019년 교사 1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사의 74.8%(80명)는 ‘경계선지능 학생지도에 대해 교원연수를 받은 적이 없다’고 응답했고, 그 이유로 42명의 교사들은 ‘연수과정 자체가 없다’고 답했다.

 

출처 : 서울시 동북권NPO 지원센터가 발행한 '느린학습자 지원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

 

결국 이런 저런 이유로, 교실에서 경계선지능 아동들은 교사로부터 배려 받지 못하고 소외되며, 심지어 학교폭력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맞춤형 교육하면 확실히 ‘효과’ 있다

관계자 및 전문가들에 따르면 IQ 71~84 사이에 있는 경계선지능인들을 위한 처방은 크게 세 가지다. 교육환경(시스템) 개선과 사회적 지원시스템 마련, 인식의 변화다.

경계선지능인들의 문제를 전 생애 문제로 보지 않고 학령기 학습부진 영역에서만 다뤄지는 것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지만, 사실 (기초)학습은 매우 중요하다. 기초학습이 부족할 경우, 성인이후 삶에 어려움을 느낄 것이고, 원만한 사회생활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경계선지능인들의 경우 지능의 한계는 분명히 있지만, 학습방법과 기간에 따라 (지능)평균치에 이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는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일례로 서울대학교 특수교육연구소가 지난해 경계선지능인 중학생 13명을 대상으로 15차례에 걸쳐 ‘읽기이해 추론중심 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 눈에 띄는 성장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학생이 중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학생의 ‘진짜 수준’을 파악해 일대일 맞춤형으로 지도한 결과, 의미 있는 결과가 도출된 것.

 

출처 : SSK교육사각지대 학습자 교육연구사업단의 '문해력에 날개달기'.
출처 : SSK교육사각지대 학습자 교육연구사업단의 '문해력에 날개달기'.

 

연구를 진행한 김희은 박사는 “학년 별로 구분하여 결과를 보았을 때, 읽기이해, 어휘, 쓰기 영역에서 큰 폭으로 향상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특수교육, 일반교육, 교육상담전문가들과 함께 의논하면서, 또 학생의 학습과 정서적인 면을 고려하면서 최선의 방법으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또 “공교육 내에서도 전문성을 가진 교사와 전문프로그램들이 지속적인 서비스로 제공된다면 경계선지능인들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전문성이란 학생의 학습, 정서 특성과 수준을 정확히 진단하고 거기에 따른 효과적인 수업설계, 학생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미래혁신 연구원 김희은 박사.
서울대학교 미래혁신 연구원 김희은 박사.

 

김희은 박사의 말처럼 학습지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시스템과 환경이다. 서울대 특수교육연구소는 학생 한명 한명을 대상으로 특수교육·일반교육·상담 전문가들이 매주 모여 의견을 나눴고 한 명의 학생을 위해 최선의 방향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단순히 학습부진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학생의 정서적인 면을 고려하면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려고 했던 것.

이 부분은 지난해 8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기초학력보장법이 좀 더 보완돼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기초학습능력에 대한 교육부 및 교육청의 관심이 많아졌지만 자칫 ‘단편적인 학습 프로그램 활용’만으로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갈무리.

 

기초학력보장법의 핵심은 배움의 과정에서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국가의 책무성을 강화했다는 점이다. 교육부장관은 5년마다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하고, 교육부장관과 교육감은 기초학력지원센터를 지정·운영하며, 각 학교 장은 효율적인 학습지원을 위해 담당교원을 지정하고 보조 인력을 배치할 수 있다.

국가가 나서서 기초학습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법 제정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완되어야 할 것이 많다는 지적 또한 제기되고 있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기초학력보장법은 여러 한계들을 갖고 있다”며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 이하로 낮출 것 △전문성 있는 교사 확보와 배치 △일회성 프로그램 운영이 아닌 팀 체제로 학습지원 △학습지원 전담교원 확보 등 현장중심의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부보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사회성’

경계선지능 아동들의 기초학습 능력이 향상됐다고 해서 경계선지능인들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됐다고 볼 수는 없다. 학교 졸업 이후 또 다른 문제가 다가올 것이고, 결국 전 생애에 걸친 지원이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경계선지능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습 자체’보다 사회성, 관계형성,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활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이는 성인 이후 자립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경계선지능인을 둔 부모들의 대다수는 자신의 자녀가 전문지식이 크게 필요 없는, 단순 기능 일을 하더라도 스스로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을 얻고 부모가 없어도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고 말한다.

앞서 밝힌 서울 동북권 NPO지원센터에 따르면 부모들은 취업 못지않게 자녀의 대인관계에 대해 큰 우려를 하고 있다. 사회성이나 대인관계가 좋으면 어떤 일이라도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니 걱정이라는 얘기다.

이런 점은 실제 경계선지능인 관련 단체에서도 인지하고 있다. '청년행복학교별'에서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관계형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청년행복학교별' 안은비 교사.
'청년행복학교별' 안은비 교사.

 

안은비 교사는 “경계성지능 청년들은 어릴 적부터 또래와 공부를 하든, 뭘 하든 항상 느리다보니 ‘난 항상 실패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지도 못하고 다가오는 사람도 없어서 점점 고립되고 있다”고 전했다. 취업을 위한 기능이나 기술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만한 인간관계가 급선무다.

나아가 경계선지능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는 필수적인 요소다.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경계선지능인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조금 기다려주고 배려해주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

안 교사는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이해가 아직은 부족하다. 그분들은 기다려주면 충분히 따라올 수 있는데 이해가 부족하다보니 ‘왜 이것도 못하니’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해와 인식의 확산이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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