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서울시 시작으로 8개 지역 조례 제정
지역마다 근거법령 따라 지원 대상·내용은 달라
충북은 지자체·교육청 모두 느린학습자 조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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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학습자시민회는 지난 9일 ‘느린학습자시민회 활동보고대회’를 열었다.(느린학습자시민회 유튜브 캡처)
느린학습자시민회는 지난 9일 ‘느린학습자시민회 활동보고대회’를 열었다.(느린학습자시민회 유튜브 캡처)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느린학습자를 위한 조례가 제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조례제정을 통한 지원으로 느린학습자들의 학습과 사회성을 향상시키고, 지역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함에도 조례와 지원이 없어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것. 일부 지자체에 조례가 있지만 이는 전국적으로 10%도 안 돼 사각지대 해소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최근 느린학습자시민회가 주최한 ‘느린학습자시민회 활동보고대회’에서 이재경 박사(한신대학교 민주사회정책연구원)는 ‘느린학습자 관련 정책성과와 향후과제(지방자치단체 조례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제했다. 이 박사는 발제를 통해 앞으로 더 많은 기초지자체가 느린학습자 지원조례를 제정할 필요가 있고 기존에 학습부진에 매몰돼 있던 지원을 평생학습과 학교 졸업 후 자립 방향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지원하나?

느린학습자(경계선지능)는 지능지수(IQ)가 71~84인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 전국민의 13.5%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들은 말그대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로, 정부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지난해 서울시를 시작으로 일부지자체에서 조례를 제정, 이들을 대상으로 한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이재경 박사(느린학습자시민회 유튜브 캡처).
이재경 박사(느린학습자시민회 유튜브 캡처).

 

이재경 박사에 따르면 느린학습자 조례가 있는 지역은 서울특별시와 광주광역시를 비롯해 서울시 노원·서초·양천·구로구, 경기도 여주·고양시 등 8곳이다. 지역별로 대상연령과 지자체장의 의무여부는 차이가 있지만 느린학습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보급과 현황 파악, 재원조달 등은 공통적이다.

이 박사는 발제에서 8개 조례가 갖고 있는 근거 법령은 상이하다고 설명했다. 즉 서울시와 광주시 조례는 평생교육법에 근거를 두고 있고 노원·서초구, 경기도 여주시 조례는 초중등교육법에 근거를 둔다. 또 양천구는 평생교육법과 초중등교육법에, 고양시는 청년기본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조례에서 근거법령이 중요한 것은 근거 법령이 무엇이냐에 따라 지원대상자와 내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초중등교육법에 근거를 둔 느린학습자 조례는 지원대상을 19세 미만 학령기 아동청소년으로 한정하지만, 평생교육법에 근거를 둔 조례는 지원대상을 모든 연령의 느린학습자를 대상으로 한다.

이재경 박사는 “초중등교육법에 근거를 둔 조례는 학습부진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고 학습에 매몰되는 부작용이 있다. 학습부진 개선도 매우 중요하지만 생애주기별 지원이 가능하도록 연령제한을 두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지난 10월 제정된 고양시 조례는 눈길을 끈다. 청년(만 18세~39세 이하 느린학습자)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조례이기 때문이다. ‘고양시 청년 느린학습자 지원 조례’의 주요 내용은 ‘인지능력이 다소 부족한 청년에게 교육·문화생활·고용 등을 지원해 사회적응과 안정적인 생활을 돕는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고양시 조례는 느린학습자 청년의 자립지원을 명시함으로서 정책적 대안모색의 가능성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한편 느린학습자 지원조례는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7개 시·도교육청에도 있다. 전남·인천·서울·경남·경기·충남·세종교육청에 제정되어 있는데 그 명칭은 ‘천천히 배우는 학생 교육지원조례(전남)’, ‘학습부진아 지원조례’ 등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이 박사는 “교육청 조례는 초중등교육법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학습부진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충북엔 느린학습자 조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충북은 어떤가?

충북은 교육청 조례도, 지자체 조례도 없는 상황이다. 아니 좀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지자체의 관심이 없으며, 느린학습자라는 단어조차 낯선 것이 현실이다.

2019년 6월 청주복지재단에서 ‘청주시 경계선지능 의심아동 실태조사 및 지원방안 모색연구’라는 연구결과가 나왔지만 후속 작업은 2년 반이 지난 현재까지도 없는 상황이다. 일부 학부모들이 자조모임을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하는 독서활동을 진행했지만 코로나19로 이마저 중단됐다.

학부모 윤선용 씨는 “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무 걱정된다. 졸업 후 취업도 힘들고 자신이 죽으면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고 말한다”며 “충북에도 다른 지역처럼 지자체에서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조례 만드는 것에 적극 찬성한다. 의원들과 간담회가 있다면 꼭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재경 박사는 “느린학습자 아동의 학습부진은 사회성하고도 연관이 되어 있다. 학습부진이 결국은 사회성 결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자체 조례가 없다면 우선 학습부진 개선을 위한 교육청의 조례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느린학습자 문제를 학부모 당사자들만의 문제로 보지 말고 지역사회 교육기관과 시민단체들이 함께 공유하고 요구해야 한다. 부모들의 목소리가 없다고 요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느린학습자 아동들은 성인이 돼서도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고 지역에서 살 확률이 높다. 지역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와 관련 박형용 충북도의회 정책복지위원장은 “그동안 느린학습자와 관련해서 논의를 한 적은 없다. 그러나 평생학습 차원의 지원이라면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느린학습자를 대표하는 단체가 있다면 간담회를 열어서 애로사항을 듣고 그분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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