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기사

- 장애인·비장애인 경계에서 아무런 도움 못 받아
- 지난 8월 충북교육발전소 느린책읽기 소모임 조직
- ‘느린아이’ 위해 부모가 직접 교육콘텐츠, 단체 만들 계획
- 느린학습자도 편견 없이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길 소망
- "지원받을 수 있는 조례제정과 모임 조직화가 우선돼야"

 

# "3년 전 집 근처 지역아동센터에 아이를 6개월 정도 보냈는데 그때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거기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나 봐요. 센터에서는 거의 방치수준이었고요. 아이는 지역아동센터에 대해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았고 말도 못 꺼내게 합니다. 말만 해도 울음을 터트리고……. 지금도 센터를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 "우리 아이들에 대해 학교에서는 너무 몰라요. 선생님들은 아이가 조금만 산만해도 무조건 ADHD검사 받아보라 하고, 약 먹이라고 하고. 학년이 바뀔 때마다 올해는 어떤 선생님을 만날지 너무 걱정되고, 제발 좋은 선생님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경계선지능이 뭔지, 느린학습자가 뭔지 교사들이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는 설자리가 정말 없어요, 복지관에 가면 장애등급이 있어야 한다고 하고, 일반 도서관 프로그램에라도 참여하려고 하면 장애인 반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고. 갈 때가 정말 없어요. 우리 아이들을 위한 아주 조그만 정보, 아주 작은 프로그램이라도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 “경계선지능 아동들은 이해하는 것이 일반 아이들에 비해 느리지만 꾸준히 학습하고 도와주면 얼마든지 지역사회에서 자기 역할을 하며 살아갈 수 있어요.”

 

9월 17일 저녁 7시, 한창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지만 엄마들은 ‘자녀교육’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이어간다. 이들은 자신의 자녀 이야기를 하며 그동안 마음속에만 쌓아두었던 학교와 사회의 문제점, 그동안의 고충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요.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 차별받지 않고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갈 수 있도록 엄마들이 나서야 합니다.”

편견 없이 살 수 있는 사회 만들고 싶다

지난 9월 17일 충북교육발전소에서 열린 '느린책읽기' 회의 모습.(출처 = 충북교육발전소 다음카페)
지난 9월 17일 충북교육발전소에서 열린 '느린책읽기' 회의 모습.(출처 = 충북교육발전소 다음카페)

경계선지능 또는 발달장애 아동을 둔 청주지역의 엄마들이 직접 자신의 자녀를 위한 교육콘텐츠를 개발하고 권리를 찾을 수 있는 단체를 만들기 위해 나섰다. 일상생활에선 분명히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동안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며 이제는 엄마들이 나서서 개선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주인공은‘엄마토닥아빠도담(엄마토닥)'이라는 밴드(Band)의 회원이자 충북교육발전소 소모임 ‘느린책읽기’ 회원들이다. 경계선지능아동을 자녀로 두고 있는 이들은 느린책읽기, 연극놀이 등 아이들을 위한 교육콘텐츠 뿐 아니라 지자체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 또 자녀들이 성장한 이후 편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충북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행동할 계획이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는 이미 단체도 설립되고 조례도 만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에 비하면 충북은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충북에도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생각보다 뜨거웠던 엄마들의 반응

엄마토닥은 충북지역의 경계선지능아동이나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엄마들이 가입돼 있는 밴드다. 이미 3년 전에 만들어졌다. 처음 시작은 2016년 정희영 씨가 전라도 광주에서 청주로 이사 온 후 자신의 자녀 육아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친구도 사귀고 청주의 소식도 들을 겸, 어쩌면 작은 바램으로 소통창구를 만들었다.

그러나 밴드를 만든 후 엄마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밴드를 개설한지 일주일 만에 회원 수가 100여명으로 늘었고 함께 하고 싶다는 엄마들로부터 매일 연락이 왔다. 그만큼 ‘소통’하고 싶다는 바램이 엄마들에게는 강했다.

현재 회원 수는 200여명으로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이곳에서 부모들은 자녀를 키우며 느꼈던 고충이나 애로사항, 교육정보 등을 공유한다.

지난 3년간 엄마토닥 회원들은 수시로 삼삼오오 모여 모임을 갖고 공부도 하고 정보를 공유했다. 많지는 않지만 부모교육 강의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임도 진행했다.

물론 한계는 있었다. 체계적으로 조직화되지 못했고 활동도 일관성있게 진행하지 못했다. 밴드의 리더인 정희영 씨는 “많은 엄마들이 함께 하고 싶다는 욕구는 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만큼 그동안 상처가 많았다는 얘기죠. 또 장소, 프로그램, 섭외, 비용 등 모든 것을 엄마들이 다 알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오프라인 모임을 꾸준히 지속하기는 어려웠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

‘엄마토닥아빠도담’ 회원들이 인터뷰하는 모습.
‘엄마토닥아빠도담’ 회원들이 인터뷰하는 모습.

엄마들의 모임이 잦아지고 소통을 자주 하다 보니 본격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뭐라도 시작해보자는 의견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리고 모두 동의했다. 우선은 독해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위해 책읽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

9월 17일 모임은 지난 8월 충북교육발전소 동아리로 등록한 이후 두 번째 자리다. 어떻게 하면 자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아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자료나 프로그램은 뭐가 있을지, 또 아이들을 위한 단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무엇보다 경계선지능 아동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의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이날 모임에는 특히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으로 ‘경계선지능아동의 사회적응력 향상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지역아동센터 충북지원단도 합류해 체계적인 조직을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엄마토닥 리더인 정희영 씨는 “사실 그동안 기댈 곳이 전혀 없어서 너무 힘들고 외로웠는데 엄마들이 하나둘 모이고 교육발전소와 지역아동센터 충북지원단에서도 도움을 주신다니 너무 힘이 된다”며 “다른 지역처럼 충북에도 경계선지능아동이나 느린학습자를 위한 조직을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의 필요’를 넘어 ‘우리의 필요’를 위해

엄마들은 우선 엄마들의 자조모임을 좀 더 탄탄히 다져나가기로 했다. 단순히 모여서 밥 먹고 수다 떠는 모임이 아니라 구체적인 학습콘텐츠를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임을 하기로 했다. 필요하다면 앞으로는 전문 강사도 섭외할 예정이다. 또 그동안 자신의 자녀를 드러내는 것을 꺼려했던 부모들을 설득해 모임에 참여토록 하고 더 조직화하고 확장될 수 있도록 단체 설립을 위한 준비도 해 나가기로 했다.

물론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엄마들은 잘 알고 있다. 단체를 만들고 모임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나의 필요’를 넘어 ‘일’로써 활동을 해야 하고 그동안 접해보지 않은 생소한 분야도 공부해야 한다.

정희영 씨는 “힘들고 어렵겠지만 해야죠. 제도나 지원정책은 뭐든지 요구하지 않으면 생기기 힘드니까요. 그래서 느린책읽기 모임에서도 함께 할 분들을 계속 찾고 있어요. 이런 모임이 더 활성화 되고 유지돼야 지원도 받고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사회에서 존중받고 배려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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