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계선지능 인식 낮고 프로그램 없어…차별 악순환
- 학년 올라갈수록 격차 심해지고 학폭 두려움도 커져
- 보호시설에 있는 경계선지능아동, “사실상 방치”

A군은 어릴 적부터 신체발달이 늦었다. 뒤집기, 기기, 걷기, 말하기 등 또래보다 늘 늦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장애로 진단할만한 특이사항이 없으니 일단 지켜보라’는 말을 들었다. 부모는 걱정했지만 크면서 좋아질 것으로 기대했었다.

문제는 네 살 무렵, 어린이집에 다니고부터였다. 행동이나 말이 느리다보니 A군은 단체 활동에서 배제됐고, 그럴수록 친구들과의 놀이에서도 배제됐다. 단체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여러 번 알려줘도 잘 기억하지 못했고 그때마다 교사와 친구들의 질책이 뒤따랐다. A군도 자신이 다른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종종 엄마에게 “엄마 나 바보야?”라고 묻곤 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검진을 받은 결과, A군은 ‘경계선지능아동’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장애등급을 받을 수준은 아니지만, 원하면 받게 해주겠다는 ‘친절한(?)’ 설명도 들었다.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히는 경계선지능아동들

미국 정신의학 협회의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에 따르면 지능지수가 85이상이면 ‘정상’, 70이하면 지적장애로 분류된다. 그 사이에 있는 71부터 84까지의 지능지수가 경계선지능이다. 경계선지능을 가진 이들은 전체 인구의 13%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계선지능아동은 단순히 지능이 낮다는 것 외에 학습장애, 운동장애, 언어장애 등을 동반한다. 말을 배우는 속도가 느리고 한 가지 일에 오래 집중하기를 어려워한다. 기억할 수 있는 정보의 양도 적어 복잡하고 추상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버거워한다. 그래서 교실에서는 ‘답답한 아이’,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히곤 한다.

A군의 부모는 수년 동안 언어치료, 심리치료, 놀이치료 등을 매일 요일을 바꿔가며 진행했다. 비용은 100%자부담, 100만 원 가량이 매달 치료비로 나갔지만 그만둘 수는 없었다.

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문제가 더욱 불거졌다. 담임교사는 “A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고 친구들과의 갈등으로 편할 날이 없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도움반’으로 가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다.

결국 A군의 부모는 최근 장애등급을 받았다.

“차라리 잘한 것 같아요. 치료비 부담도 부담이지만 중·고등학교에 가면 우리 아이 같은 아이들은 학폭 피해자가 될 가능성도 많다는데 미리 장애등급을 받고 일반 아이들과 분리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취업이나 군대 문제를 생각하면 더 그렇고요.”

A군의 부모는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경계선지능 아동을 둔 부모들은 늘 전전긍긍이다. ‘우리아이가 부진아로 낙인찍히는 것은 아닐까’, ‘학교폭력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까’, ‘내가 죽고 난 후에 이 아이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나질 않는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항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엄마들이 상당할 거라고 A군의 부모는 말한다.

 

"앞으로의 일들이 두렵다"

또 다른 경계선지능아동 B양. 초등학교 2학년인 B양도 최근 장애등급을 받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장애등급이 나올 수준은 아니라고 했는데 2학년 들어 다시 검사를 했더니 지능지수가 79였다. 장애등급을 받으려면 받을 수도 있다고 의사는 말했다. B양의 엄마 C씨는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억지로라도 장애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자체의 지원은 차치하고라도 학교에서 이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제대로 안 되기 때문에 차라리 장애등급을 받고 특수교육을 받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교사들도 경계선지능에 대해 잘 모르다보니 이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당연히 없고, 교사도 아이들도 이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요. 격차는 점점 벌어질 텐데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서 겪게 될 일들이 두려워요.”

일반 아이들과 같아지기 위해 아이를 닦달하고 힘들게 하느니 차라리 장애인으로 배려 받으면서 사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C씨는 이렇게 말한다.

“경계선지능아동들은 일반 교실에서도, 특수반에서도 환영받지 못해요. 일반 교실에서는 공부를 너무 못하고, 특수반에서는 공부를 너무 잘하기 때문이에요.”

지능지수 75인 초등학교 3학년 D군은 5살 무렵, 일찌감치 장애등급을 받았다. 유아교육을 전공한 엄마 E씨는 어릴 적부터 D군이 치료가 필요한 아이라는 것을 알았고, 장애등급을 빨리 받아 적극적인 치료를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 E씨를 남편과 시댁에서는 아직도 못마땅해 한다. 크면서 나아질 텐데 괜한 극성을 떤다는 것이다.

“남편과 시댁 어른들은 아직도 인정을 못해요. 왜 멀쩡한 아이를 그렇게 하냐면서 이혼이야기도 나오고 그랬어요. 그런데 진단을 해보면 지능지수가 경계이고 제가 보기에도 일반아이들과는 달라요. 그 격차가 점점 커질 텐데 아이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어요.”

E씨는 D군을 위해 둘째 아이 출산도 포기했다. 아이 하나 돌보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또 아이를 낳을 수 있겠냐며 헛웃음을 짓는다.

 

더욱 어려운 그룹홈의 아이들

A군이나 B양, D군처럼 부모가 있는 아이들의 형편은 사실 복지시설에 있는 아이들에 비하면 훌륭한 편이다. 부모가 힘들긴 하지만 어릴 적부터 치료를 통해 개선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동생활가정이나 아동양육시설 있는 아동들이다.

청주시 금천동에 소재한 S그룹홈. 이곳에는 5명의 아동(청소년)들이 가족이 되어 생활하고 있다. 일찍 부모를 여윈 아동, 부모가 있지만 제대로 보호받을 수 없었던 아동들이 이곳에 맡겨졌다. 5명중 2명은 지적장애, 2명은 경계선지능아동이다.

경계선지능아동 두 명은 외모 상으로 봤을 땐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눌한 말투와 느린 행동 또는 눈치 없는 행동 등 몇 마디 대화로도 경계선지능이라는 것이 금세 드러난다.

초등학교 6학년인 ○○는 온라인 수업을 단 5분 만에 끝내버린다. 교사가 내주는 숙제나 영상을 시청해야 하지만 화면을 켜놓기만 할뿐 집중하지 못한다. 그리고 “공부 다 했어요”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S그룹홈의 원장은 “○○는 학교에서 수도 없이 연필과 필통을 잃어버리고 와요. 잃어버린 필기구만 수백자루일겁니다. 필통을 열어놓은 채 그냥 들고 다녀서 속에 있는 물건들이 다 빠지고, 잃어버려도 아깝다는 생각도 못하고……. 수없이 얘기를 해도 안돼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는 경계선이지만 레고 조립이나 만들기를 아주 잘해요. 그런 걸 할 때는 집중도 잘하고 무엇보다 좋아하고요”라고 전했다.

 

교재도 전문가도 없다

청주시에 따르면 청주지역에는 현재 18곳의 그룹홈이 있고 이곳에는 106명의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다. 이중 경계선지능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을 하는 곳은 S그룹홈을 포함해 단 두 곳뿐이다. 대다수의 경계선지능아동들이 별도의 프로그램이나 지원 없이 생활하고 있다.

S그룹홈에서는 지난 1년 동안 삼성물산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아동자립지원단이 발행한 ‘느린 학습자를 위한 자립기초단계 매뉴얼Ⅰ’을 활용해 아동들을 지도했다. 그러나 현재는 후속 자료가 없어 더 이상 교육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S그룹홈의 원장은 “지난 1년 동안 매뉴얼 자료를 이용해 교육을 진행했어요. 1년 동안 하고 나니 이제는 더 이상 할 것이 없어요”라며 “교재도 없고 전문가도 없는 상황입니다. 전문가가 있다면 정말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궁여지책으로 야외체험학습에 집중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이긴 하지만 잘 못하는 수학계산이나 책을 읽는 것보다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더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S그룹홈의 원장은 “제대로 교육을 못할 바에는 차라리 장애등급을 받아 치료라도 제대로 하고 싶어요. 하지만 장애등급은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부모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할 수 없어요. 받을 수만 있다면 정말 받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청주복지재단이 발행한 ‘청주시 경계선지능 의심아동 실태조사 및 지원방안 모색연구’에 따르면 공동생활가정이나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동 중 37%가 경계선지능아동이거나 의심아동이다. 

이는 전체 인구의 13%가 경계선지능이라는 통계보다 무려 세배 가량 높은 수치다. 서재욱 연구위원은 “아동복지시설에서 경계선지능의 증상을 보이는 아동들이 증가하고 있다”며 “아동과 현장이 필요로 하는 현실적인 지원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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