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①] 5년 동안 아동학대 9건 접수, 2건만 처분 

여기 아주 오래된 아동복지보호시설이 있습니다. 선교사 활동을 하던 허마리아 여사가 1948년에 설립한 충북희망원. 다음 해 김경회 씨가 인수한 뒤 그의 아들 김인련 씨, 손자 김성수 씨까지 원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삼대가 충북희망원을 운영하는 사이, 무슨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지난 5년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아동학대 사건만 해도 9건에 이릅니다. △시설 종사자와 시설아동 간 교제 △시설아동 간 성폭력 △후원금·물품 관리 부적절 △아동복지시설 기준 위반 △시설 운영위원회 운영 부적절 등 온갖 사건 사고가 충북희망원에서 일어났습니다. 

지역 사회의 묵인과 방관 속에 아이들은 늘 뒷전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아동학대 공범일 지도 모릅니다. <충북인뉴스>는 충북희망원 사태 연속보도 ‘아이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통해 이 시설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리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태어나보니 이곳이었다.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른다. 부모 또는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이 맡겨지는 충북희망원(청주시 옥산면 소재). 서른세 명의 아이들은 충북희망원을 ‘집’이라 불렀다. 생활지도원은 ‘부모’였다. 같이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족’이 됐다. 이곳에서 벌어진 일은 놀랍다.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실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충북희망원에서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접수된 아동학대 사건은 모두 9건에 이른다. 신체·정서적 학대는 물론이고, 방임 문제까지 불거졌다.

  • 2016년 6월 생활지도원이 아동을 때리고 훈육을 이유로 밤에 잠을 못 자게 하거나, 새벽에 강제로 달리기를 시켰다 – 아동학대 (신체·정서) 
  • 2016년 6월 교사가 아동에게 폭언을 하면서 머리채를 잡고 때렸다 – 아동학대 (신체·정서) 
  • 2016년 12월 피해 아동이 다른 원생에게 폭행을 당했으나 보육사가 말리지 않고 방치했다 – 아동학대(방임)
  • 2017년 3월 피해 아동이 물건을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보육사가 아동의 머리카락을 잡아 흔들었다 – 혐의없음 
  • 2017년 3월 시설 내 보육사가 피해 아동의 눈을 때려 맞은 부위가 부었다 – 아동학대(신체) 
  • 2018년 10월 시설 생활아동이 시설원장에 의해 부적절한 대우(식사미제공, 용돈 부족)를 받고 있다 – 아동학대(방임) 
  • 2019년 6월 시설 내 보육사에 의한 신체적 체벌과 폭언이 있었다 – 아동학대(신체·정서) 
  • 2019년 10월 시설 원생 간 성 문제가 있었으나 시설에서 인지 후 사후조치가 적절한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 혐의없음 
  • 2020년 1월~2월 시설장 및 종사자가 시설 내 발생한 아동 간 성문제 사건 진술을 번복하도록 회유, 아동에 대한 체벌과 폭언 및 성추행 발언 등 – 조사 진행 중 

-충북희망원 내 성범죄 및 아동학대 등 인권침해 처리 현황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실 제공)

지난해 6월, 시설 내 생활지도원(보육사)이 신체적 체벌과 폭언을 행사했다는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됐다. 생활지도원은 아이에게 부모가 없다는 욕설을 내뱉으면서 가슴을 밀쳤다. 그는 이전에도 반찬 투정하는 아이의 목을 졸랐다. 이 사건으로 가해자는 사회봉사 수강명령 40시간을 처분받았다.  

2017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충북희망원 생활지도원이 아이에게 빨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생활지도원은 아이가 지시를 따르지 않자 주먹으로 이마를 때렸다. 아이 얼굴에 부종과 멍이 생겼다. 

‘아동학대’, 쏟아지는 증언 

‘아동학대’, 이 네 글자를 주제로 쉴 새 없이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시끄럽게 굴었다고 휴대폰이 깨질 때까지 머리를 맞았던 일, 알몸으로 무릎 꿇고 손들게 했던 일, 늦게 일어났다고 찬물을 맞은 일…. 충북희망원 아이들에게 떠올리기 싫은 기억은 차고 넘쳤다. 

충북희망원 아동 A는 “받아쓰기 문제를 내주면 정답을 안 알려주고 다시, 또다시 풀게 한다”며 “정답을 스스로 알아낼 때까지 틀릴 때마다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때렸다”고 증언했다. 충북희망원 직원 B 씨의 증언도 일치했다. 그는 “아이들이 무엇으로, 어떻게 맞았는지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전했다. 

C는 “초등학생 때 입맛이 없어 밥을 먹기 싫었던 적이 있었다”며 “밥을 먹지 못하고 토하자 선생님이 계속해서 숟가락으로 떠먹여서 괴로운 기억이 있다”고 고백했다. 충북희망원 아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볼 때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하지 않았던 아동학대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성수 원장은 27살이던 2009년에 충북희망원으로 입사했다. 당시 원장은 아버지 김인련 씨였다. 아들은 아버지의 자리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 ⓒ 김다솜 기자
김성수 원장은 27살이던 2009년에 충북희망원으로 입사했다. 당시 원장은 아버지 김인련 씨였다. 아들은 아버지의 자리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 ⓒ 김다솜 기자

 

“본래 충북희망원은 영유아 시설로 운영하다가 보육시설로 바꿔 운영하게 됐습니다. 2000년생이 이 시설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아이들이에요. 이전에 청소년 아이들을 키워 본 적이 없으니 우왕좌왕하는 겁니다. 이 시설의 보육 방식이 ‘아동학대’인 거죠.” - 충북희망원 직원 D 씨 

지난 5년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충북희망원 아동학대 사례 9건 중 2건만 인정돼 처분이 내려졌다. 처분받지 않은 아동학대 사례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거나 혐의 입증이 어려워 무마됐다. 

묻히는 사건들이 있다 

사람이 죽었다. 처벌받은 사람은 없었다. 2013년 여름, 충북희망원 내 축구부 아이들은 계곡으로 떠났다. 생활지도원이 시설 아동에게 다이빙을 부추겼다. 계곡에서 뛰어내린 아이에게 생활지도원이 심하게 물장난을 치는 과정에서 사망했다. 

“그 당시에는 아동보호전문기관도 없었고, 이걸 ‘방임’이라고 볼 사회적 분위기도 안 됐어요. 도의적 책임지고 나가는 거로 마무리됐는데…. 좋은 뜻으로 데리고 가서 사고가 났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아이들이 걱정이었죠. 지금도 두고, 두고 애들이 얘기하잖아요. 그때 아이들이 치료를 받았어야 했어요.” - 충북희망원 직원 E 씨 

많은 사람이 그 사고를 목격했지만, 트라우마 치료는 없었다. 아이들은 오랫동안 괴로워했다. 지금은 성인이 되어 시설에서 나온 F에게도 이 사고는 죄책감으로 남았다. 그 아이가 다이빙을 하기 전에 바로 옆에 서 있었던 건 F였다. F는 “그때 바로 옆에 있던 내가 그 친구처럼 됐을 수도 있다”며 “지금도 그 선생이 처벌받길 원한다”고 말했다. 

A도 그랬다. 시끄럽게 떠들었다고 선생은 휴대폰이 깨질 때까지 머리를 때렸다. 선생은 휴대폰이 깨진 건 떨어져서라고 항변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는커녕 A의 가슴에 상처만 준 일로만 남았다. 

2011년 충북희망원 아이들의 모습. ⓒ뉴시스
2011년 충북희망원 아이들의 모습. ⓒ뉴시스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아동학대 최전선에 있지만, 섣불리 나설 수 없다. 신고된 건에 한해서 사례 관리를 진행하기 때문에 여러 이유들로 피해 사실이 알려지지 않으면 그대로 묻힌다. 

이태광 충북 아동보호전문기관 팀장은 “아동학대에 대한 조사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으나 수사를 할 수 없다”며 “우리는 조사 내용을 정리하고 수사기관에 의뢰한 내용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치킨 냄새가 풍기는 그날 

33명의 아이들이 지낸 충북희망원 생활관. ⓒ 김다솜 기자
33명의 아이들이 지낸 충북희망원 생활관. ⓒ 김다솜 기자

 

사탕 껍질이 바닥에 뒹굴고 있는데도 선생님은 화를 내지 않았다.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껍질을 집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원래라면 한 시간 동안 주먹 쥐고 엎드려서 단체 기합을 받았을 일이다. 선생님이 H를 붙잡고 물었다. 

“내가 너 때렸니? 아니지? 그렇지?”

G는 선생님에게 맞았던 기억이 또렷이 떠올랐지만 차마 ‘그렇다’고 답할 수 없었다. G는 2016년 아동학대를 조사하기 위해 어른들이 충북희망원을 찾았던 날을 기억했다. ‘그날’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생전 받지 못했던 애정을 받았다. 그날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신호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치킨 냄새.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치킨을 사주면서 달랬다.  

  •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10세 이상 소년을 발견한 보호자 또는 학교·사회복리시설·보호관찰소의 장은 이를 관할 소년부에 통고할 수 있다’ - 소년법 제4조 제3항 

시설에서는 아이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썼다. 원장이 그를 압박했던 카드는 ‘통고제’였다. 말을 안 들으면 통고제를 내려 감옥에 보내겠다고 협박하는 것이다. F는 “아무래도 가족처럼 가까우니 온갖 허물을 서로 다 알고 있다”며 “내가 잘못한 일들을 약점으로 삼아 아동학대 신고를 못 하게 한다”고 증언했다. 

매년 비슷한 사건 사고가 벌어지는 충북희망원. 피해자들은 정말 가해자들이 처벌받는 걸 원치 않았던 걸까. 김현정 청주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장은 “가정폭력이 묻히는 과정과 굉장히 유사하다”며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학대 피해 여부를 묻는 것 자체가 잘못이고, 어른들이 나서서 폭력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충북희망원 아동이 만든 피켓. ⓒ 제보
충북희망원 아동이 만든 피켓. ⓒ 제보

아동학대 피해를 겪으면 아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충북희망원이 ‘집’이고, 피해자가 ‘가족’처럼 여기는 생활지도원이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가해자 처벌 여부보다 ‘집에서 계속 살 수 있는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우리한테 여기는 집이에요. 다른 시설 애들은 각자 알아서 하지만, 우리는 모든 일을 같이 논의해요. 가족이라는 이유로 모든 걸 덮는 거죠. 어떻게 이게 가족이에요?” - 충북희망원 퇴소 아동 F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