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⓷] 시설 폐업하면 그만?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없어

여기 아주 오래된 아동복지보호시설이 있습니다. 선교사 활동을 하던 허마리아 여사가 1948년에 설립한 충북희망원. 다음 해 김경회 씨가 인수한 뒤 그의 아들 김인련 씨, 손자 김성수 씨까지 원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삼대가 충북희망원을 운영하는 사이, 무슨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지난 5년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아동학대 사건만 해도 9건에 이릅니다. △시설 종사자와 시설아동 간 교제 △시설아동 간 성폭력 △후원금·물품 관리 부적절 △아동복지시설 기준 위반 △시설 운영위원회 운영 부적절 등 온갖 사건 사고가 충북희망원에서 일어났습니다. 

지역 사회의 묵인과 방관 속에 아이들은 늘 뒷전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아동학대 공범일 지도 모릅니다. <충북인뉴스>는 충북희망원 사태 연속보도 ‘아이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통해 이 시설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리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이사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충실하게 그 직무를 행해야 하며, 이사가 그 임무를 해태한 때에는 법인에 대하여 연대하여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음’ - 대한민국 민법 제61조, 제65조 

2016년부터 지금까지 충북희망원 법인 이사회는 11번 개최됐다. 이사회 논의 내용은 ‘예산’ 아니면 ‘이사 선출’로 압축됐다. 충북희망원 회의록에서 아동학대와 성폭력에 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2016년 시설운영계획안을 설명하면서 성폭력 관련 법정의무교육이 필요하다는 언급이 전부다. <충북인뉴스>가 이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느냐고 묻자 비슷한 답변들이 나왔다. 

“아동학대 1~2건 정도는 알고 있고, 경고받은 게 두 어 번 되나…. 그건 내 알고 있어요.” - 오세억 이사(오창중앙교회 장로)

“(원장한테서) 보고가 안 된 사안에 대해선 모르고 있고요. 일부 뒤늦게 알게 됐고….” - 서지한 이사(전 청주시의원) 

“처음 듣는 얘기고…. 이번에 한 번 확인해보고 말씀드릴게요.” - 경상재 이사(부동산중개업)  

이사들은 원장이 해당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고, 보고가 없으면 모른다는 입장이었다. 양준석 행복디자인 사람 대표 활동가는 “동네 계모임도 아니고 법인 이사들이 이걸 몰랐다는 건 말도 안 된다”며 “설사 보고 받지 못해서 몰랐다고 하더라도 이건 이사들이 무능력하다는 반증”이라고 지적했다. 

이효윤 충북희망원 대책위 공동대표도 같았다. 그는 “원장에게 보고를 받고, 개선을 요구했어야 했는데 결국 이 사태까지 이른 건 이사진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언론에도 (아동학대와 성폭력 사건이) 이미 보도됐고, 이사회가 조금만 관심 가졌더라면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충북희망원에서 발생한 아동학대와 성폭력 사건이 법원까지 간 경우가 6건,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받아들인 아동학대 사건만 3건이다. 충북희망원에서 발생한 사건이 언론에도 여러 차례 노출됐다. 당시 이사회는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실상 ‘직무유기’다. 

충북희망원 대책위는 17일(화) 성명을 발표해 시설폐쇄 즉시 명령을 요구했다. 이들은 3일(화) 한범덕 청주시장에게 시설 폐쇄와 법인 허가 취소 요구안을 전달했다. ⓒ 김다솜 기자
충북희망원 대책위는 17일(화) 성명을 발표해 시설폐쇄 즉시 명령을 요구했다. 이들은 3일(화) 한범덕 청주시장에게 시설 폐쇄와 법인 허가 취소 요구안을 전달했다. ⓒ 김다솜 기자

 

족벌 경영의 폐해  

충북희망원은 삼대가 원장을 맡았다. 1949년 김경회 씨, 2004년 그의 아들 김인련 씨 그리고 2012년 손자 김성수 씨가 원장으로 취임했다. 심지어 아버지와 아들이 번갈아 대표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2019년 3월 이전에는 김성수 원장이, 지금은 김인련 씨가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족벌 경영의 폐해는 충북희망원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의 장 (김성수 원장) : 현재 일신상의 사유로 2019년 3월 31일 자로 대표이사직 사임하고 법인이사 추천을 받겠다. 
오세억 이사 : 사임하시는 이사님을 대신해 김인련 씨를 법인이사로 추천하고자 함. 
김은희 이사 : 사회복지 분야에 오랜 기간 근무한 경력을 비추어 법인 및 시설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되실 것 같아 안건에 동의합니다. 
- 2019년 3월 18일(월) 오후 13시 00분 2019년도 충북희망원 정기이사회 회의록 일부
 

충북희망원 이사회는 △대표이사 김인련 씨 △이사 4명 △외부이사 2명 △감사 2명으로 구성돼있다. 이사들은 김 씨 일가와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어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 인맥으로 연결돼있거나, 지역사회 내에서 사회복지재단을 운영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의사결정기관인 사회복지법인 이사회가 법인 자정 능력을 상실한 원인도 여기에 있다고 보여 진다.

현재 충북희망원 아이들은 전원 조치된 상태다. 2월에 청주시에서 시설 운영 영업 정지가 내려진 뒤 아직까지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이 집을 잃게 된 이유는 희망원의 총체적 관리 부실 때문이다. ⓒ 김다솜 기자
현재 충북희망원 아이들은 전원 조치된 상태다. 2월에 청주시에서 시설 운영 영업 정지가 내려진 뒤 아직까지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이 집을 잃게 된 이유는 희망원의 총체적 관리 부실 때문이다. ⓒ 김다솜 기자

 

“가족 법인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하려고 하겠죠. (아동학대나 성폭력이 발생한) 이런 상황에선 관선을 파견시켜야 하는데 그걸 안 하면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대부분) 다 자기네들이 추천한 이사들인데….” - 충북희망원 이사 A 씨  

투명한 이사회 운영을 위해 외부추천이사제도가 존재한다. 외부이사 2명을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3배수 추천한 사람 중에서 선임해야 한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는 한계에 부딪힌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입장에서 선임할 만한 이사가 적은 게 현실이다. 결국 협의체 추천 인사 중에서도 인맥·학연·지연에 연결된 이를 찾기 마련이다. 

 

시설 폐업·시설장 해임 결정   

충북희망원 이사들이 사법적 처벌까지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오원근 변호사는 “구체적인건 따져 봐야겠지만 시설장이나 대표이사, 상임이사같이 상당한 보수를 받고, 상황 관리하는 입장에 있으면 책임을 물을 여지가 있다”며 “그러나 회의나 몇 차례 참석하는 이사들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긴 어렵다”고 말했다. 

충북희망원 이사진들은 자신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지난 4일 충북희망원에 사직서를 제출한 김은희 이사는 “사직 사유는 개인적인 이유며, 이번 사태가 불거지기 전부터 사표를 제출해왔다”며 “희망원 문제와 관련해 더 할 말이 없다”고 일축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자' 충북희망원 원훈. ⓒ 김다솜 기자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자' 충북희망원 원훈. ⓒ 김다솜 기자

지금까지도 충북희망원 이사회는 공식적인 사과나 입장 발표를 내놓지 않고 있다. 오세억 이사는 “들여다보니 문제가 보통이 아니라 이사들이 화가 많이 났었다”며 “우리는 시설장이랑 이사장이 하는 얘기를 믿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11일(수) 충북희망원 이사회는 시설 폐업과 시설장 해임을 결정했다. 현재는 관련 자료를 취합하고 있고, 준비되는 대로 청주시청에 전달할 계획이다. 

“내가 김성수 원장한테 그랬어요. ‘당신 할아버지가 여기를 설립했을 때 이 주변에서 얼마나 칭찬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흘러가서 안 좋은 모습만 남기게 된다면 할아버지 명예에,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거다’라고 충고했었는데….” - 서지한 충북희망원 이사 

충북희망원 설립자 김경회 씨는 지역사회에서 독실한 기독교 장로로 알려졌다. 그는 충북희망원이 후손들의 손을 거쳐 이 지경까지 이르리라 상상이나 했을까.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자'는 충북희망원 원훈이 무색하기만 하다. 

김인련 대표이사 (김성수 원장 아버지) 
오세억 이사 (오창중앙교회 장로)
경상재 이사 (공인중개사) 
이종민 이사 (흥덕노인요양원 원장) 
김은희 이사 (청주YWCA 회장)
박기봉 이사 (자영업) 
서지한 이사 (전 청주시의원)
-충북희망원 법인 이사회 임명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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