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진행된 재심…“증거능력 없다” 무죄선고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국가보안법 폐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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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재심 선고 직후 강성호 교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미자 강창수 전교조 충북지부장, 강성호 교사,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
2일 재심 선고 직후 강성호 교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미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 강창수 전교조 충북지부장, 강성호 교사,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그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이 선고로 위안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9월 2일 오후 2시 청주지법 621호 법정. 재판장의 말에 방청객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무려 32년이 걸렸다. 1989년 28살 초임교사였던 강성호 교사는 북침설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불법연행 돼 32년간 '빨갱이 교사'로 살았다. 그가 마침내 누명을 벗은 것이다.

 

“피고인의 발언 사실 인정하기 부족하다”

청주지법 형사2부(부장 오창섭)는 2일 강 교사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심공판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재판부는 “학생들의 진술을 종합해 볼 때 ‘6·25는 북한이 남침을 한 것이 아니고, 미군이 먼저 북한을 침범해 일어난 것이다라는 피고인의 발언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또 “피고인의 행위가 객관적으로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된다거나 반국가단체에 이로울 것이란 인식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한다”고 밝혔다

오원근 변호사는 “당시 공안정국을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유죄판결을 한 것을 이제 다시 판결로써 바로잡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강성호 교사는 1989년 5월 24일 첫 발령 학교인 제천 제원고(현 제천디지털전자고)에서 일본어 수업을 하다 경찰에 강제 연행돼 수감됐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6·25는 미군에 의한 북침이다”, “북한은 살기 좋은 곳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 주요 근거였다. 당시 학생 6명의 증언이 증거로 채택됐고 1990년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강 교사는 교단에 설 수 없었고 10년이나 지난 1999년 복직했다.

강성호 교사는 지난해 1월부터 재심 재판을 진행했다. 재판과정에서 강성호 교사에게 북한 찬양교육을 받았다는 학생 중 두 명은 정작 해당 수업에 결석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학생이 진술서를 쓸 때 간단하게 쓰면 자세하게 쓰라고 경찰이 지시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전교조 충북지부는 재판부 선고 이후 청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성호 교사 무죄판결에 환영의 메시지를 전했다.
전교조 충북지부는 재판부 선고 이후 청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성호 교사 무죄판결에 환영의 메시지를 전했다.

 

국보법 폐지로 이어져야

전교조 충북지부는 재판부 선고 이후 청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성호 교사 무죄판결에 환영의 메시지를 전했다. 기자회견문에서 전교조 충북지부는 “강성호 선생님의 재심 사건의 본질은 학생이 교사를 고발하고 교장이 교사를 법정에 세워서 수업내용을 갖고 사실 여부를 다투는 가장 비교육적, 비인간적인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또 "통일교육이 공안정국과 분단 구조 속에서 의식화 교육으로 매도된 가장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사건이며 체제 유지와 전교조 와해 목적으로 기획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 강성호 교사에 대한 재심 무죄로 국가가 과거 국가폭력에 대해 사죄와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우선 89년 당시 충북교육감, 제원고 교장과 교감 등 사건 진실 은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교육관계자들은 교육자의 양심으로 강성호 교사와 제원고 학생들에게 사과하기를 바란다. 또한 국가는 이 사건에 대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에 대해 국가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성호 교사도 기자회견에서 “당시 제가 북침설을 교육했다고 제자들에게 강요했던 교사, 교감, 교육감은 아직도 고통에 숨죽이고 지내고 있는 제원고등학교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교육자적 양심을 걸고 사과해야 한다. 아직도 스승을 간첩으로 몰았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자살까지 기도했던 제자들의 인생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한 개인의 삶을 30여 년 동안 짓밟았던 일은 또다시 재현될 것”이라며 “이번 선고는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국가보안법은 헌법과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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