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간첩이 됐다니…30년 만에 이어진 스승과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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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간첩이 됐다니…30년 만에 이어진 스승과 제자  
  • 김다솜 기자
  • 승인 2020.02.03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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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빨갱이 교사입니다 ⑤] 국가보안법 위반 교사의 재심이 시작됐다 

1989년은 교사들에게 의미가 깊은 해입니다. 그 해 5월 28일,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가 결성됐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를 전후로 수많은 교사들이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전교조 결성을 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안 사건이 동원됐습니다. 전교조 교사들에게 ‘빨갱이 교사’라는 낙인이 붙었습니다. 

강성호 교사도 피해자입니다. 강 교사는 북침설을 가르친 교사가 되어 교단을 떠나야 했습니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강 교사는 유죄입니다. 전교조도 여전히 법 밖의 노조입니다. 강성호 교사는 재심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충북인뉴스>가 부임 두 달 만에 간첩으로 내몰렸던 강성호 교사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듭니다. - 편집자 주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강성호 피고인 나와 주세요.”

판사의 말이 떨어지자 강성호 씨는 피고인석을 향해 걸어 나갔다. 30년 만에 선 법정. 강 씨는 1989년 제천지방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교사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공판에서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재판을 받는 8개월 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 제천 제원고등학교(現.제천디지털전자고등학교)로 초임 교사 발령을 받은 지 불과 몇 달 만에 벌어진 참사였다. 그 후 10년 동안 강 씨는 교단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국가보안법’이란 중죄를 저지른 죄인으로 기록됐다. 지난해 5월, 그는 잃어버린 30년을 되찾기 위해 재심을 청구했다. 

“피고인은 단순 통일 교육에 불과할 뿐 이적 행위라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항소한 거 맞으시죠? 불법 체포 감금이 어느 정도 인정된 거 같은데…. 증인 진술이 중요하겠네요. 누가 증인입니까?”

“그 당시 학생들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판사의 물음에 변호사는 증인을 밝혔다. 강 씨는 수업시간에 북한을 찬양하고, 북침설(남한이 북한을 먼저 공격하는 바람에 6·25 전쟁이 발발했다는 의견)을 주장했다는 혐의로 잡혀갔다. 학교장이 고발했고, 여섯 명의 학생이 증인으로 재판장에 서서 선생을 간첩으로 지목했다. 강 씨는 학생들의 진술이 강요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교육민주화동지회와 전교조 충북지부는 강성호 교사의 재심을 응원하기 위해 함께 청주지방법원을 찾았다. ⓒ 김다솜 기자
이날 교육민주화동지회와 전교조 충북지부는 강성호 교사의 재심을 응원하기 위해 함께 청주지방법원을 찾았다. ⓒ 김다솜 기자

1월 30일(목), 강 씨의 재심 공판 첫날에 많은 사람이 함께 했다. 이 사건은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전교조 탄압을 위해 정부 기관이 조직적으로 동원됐던 시절에 벌어진 일이었다. 허건행 전교조 충북지부장은 “국가 폭력에 대한 사죄와 반성으로 사법부의 책임 있는 판결을 촉구한다”며 “진실 규명와 명예훼복을 위해 전교조 충북지부도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선생님이 사라졌다  

‘형’, ‘오빠’라 불려도 어색하지 않았다. 스물여덟 살의 일본어 선생님은 고등학생 제자 사이에서 유독 인기가 좋았다. 꽃잎이 교정을 굴러다니던 89년의 봄날. 강 씨는 칠판 가득 벚나무를 그려 넣고, 학생들에게 차례로 나와 꽃을 그려 보라고 했다. 

“선생님이 벚꽃을 그리면서 일본어 단어를 알려 주셨어요.”

유송미 씨(가명)는 30년 전 선생님과 보냈던 즐거운 한때를 기억해냈다. 제자들은 강 씨를 잘 따랐지만, 학교 임원들은 다르게 대했다. 학생들이 봐도 강 씨는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교사였다. 전교조 관련 모임에 나가고, 학내 관습 타파에 앞장섰던 강 씨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수업시간에도 교실로 들어와 강 씨를 지켜봤다. 유 씨는 당시 2학년 4반 반장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학급 임원들을 불러내 강성호 씨의 수업 내용을 물어보곤 했다. 그러다 강 씨가 학교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저녁에 집에서 뉴스를 보는데 선생님이 나왔어요. ‘북침설’을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황당했죠. 기가 막혔어요. 전혀 그런 일이 없었는데 선생님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하니까. 방송에서 거짓말을 하는 건가 싶고….” 

여기까지가 선생님과의 마지막이었다. 유 씨는 “선생님이 전근 가는 줄만 알았고, 구치소에 수감되고 이런 고역을 겪으신 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제자들의 선생님의 소식을 듣게 된 건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 

 

지난해 12월 28일, 강성호 씨의 재심 청구가 받아 들여졌다. ⓒ 김다솜 기자
지난해 12월 28일, 강성호 씨의 재심 청구가 받아 들여졌다. ⓒ 김다솜 기자

 

스승과 제자가 다시 함께  

제자들과 연락이 닿은 건 동료 교사 덕분이었다. 제원고등학교 졸업생들과 연락을 이어오던 동료 교사가 강 씨의 소식을 전했다. 졸업생들은 동창회에 강 씨를 초청했다. 지난해 12월, 제원고등학교 동창회에서 강 씨는 제자들과 재회했다. 지난한 30년의 세월을 쏟아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10년 만에 복권되어 교직으로 돌아가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저희는 선생님이 다른 학교에 가신 줄 알았어요.”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될까요?”

그 얘기를 듣는 제자들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강 씨가 학교를 떠나고 나서 누구도 그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은 모두를 떨게 했다. 그렇게 기억 속에 잊혀진 선생님이 고난 속에서 살았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강성호 씨와 그의 부인 서유나 씨. 공판 첫날, 서 씨에게 "긴장되지 않느냐"고 묻자 "남편이 더 긴장될 것"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 김다솜 기자
강성호 씨와 그의 부인 서유나 씨. 공판 첫날, 서 씨에게 "긴장되지 않느냐"고 묻자 "남편이 더 긴장될 것"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 김다솜 기자

 

“옛날에 선생님이 결혼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사모님이 제가 사는 동네 학교 선생님이셨어요. 그 자그마한 몸으로 만삭이 되어 오르막길을 오르시는 걸 봤었어요. 강성호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어요. 짧았지만 저희가 선생님한테 첫 제자였잖아요. 우리 학교가 첫 발령지고. 그런데 너무 안 좋은 기억으로 남으셨을까 봐…. 이번 기회에 좋은 기억으로 전환되면 좋겠네요.” 

박자영 씨(가명)는 재판에서 증인이 되어 주겠다고 나섰다. 다른 제자들도 재판에 도움 되는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했다. 30년 전 제자들이 다시 스승의 손을 맞잡은 순간이었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하는 재판은 3월 12일(목) 오후 4시 청주지방법원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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