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전문가, “활동 충분히 서술하면 학종 문제없다”
보통교과 부족 지적에 대안교과로 해결할 수 있어
학교장 재량으로 과목개설…“반대 위한 반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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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고가 들어설 가덕중학교 공사 현장./최현주
단재고가 들어설 가덕중학교 공사 현장./최현주

충북교육청이 개교를 연기하면서까지 단재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새로 짜겠다고 밝히는 가장 큰 이유는 단재고 학생들의 대학 선택폭이 좁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5년에 걸쳐 충북대안교육연구회가 설계한 단재고의 보통교과는 △국어 △사회 △한국사뿐이고, 그나마 이 세 과목의 단위(시수)도 12단위밖에 되지 않아 학생들이 대입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올 3월부터 단재고 업무를 맡고 있는 도교육청 중등교육과 모지영 장학관과 이상명 장학사는 “단재고 졸업생 중에도 대학에 입학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 있을 텐데 보통교과 단위 수가 부족해 대학 입시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대입을 원하는 학생들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안교육연구회가 설계한 교육과정을 바꿀 것이다. 보통교과 단위를 아무리 못해도 50~100단위까지 늘릴 것”이라고 전했다.

정말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도교육청 담당자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입시전문가 A씨는 “얼핏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단재고 교육과정은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문제는 없어 보인다”라고 밝혔다.

이 문제를 알기 위해선 우선 현재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대입 체계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과체계는 보통교과와 전문교과로 나뉜다. 보통교과는 또 공통과목과 선택과목으로 분류되고, 선택과목은 일반선택과 진로선택으로 구분된다.<사진 참조> 전문교과는 다시 전문교과Ⅰ과 전문교과Ⅱ로 구분되는데, 이는 각각 특목고와 특성화고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번 기사에서는 제외한다.

 

출처 교육부.
출처 교육부.

 

또 대입 전형은 크게 정시와 수시로 구분된다. 정시는 쉽게 말해 수능점수 위주로 당락이 결정되는 것이고, 수시는 크게 학생의 진로적합성을 중시하는 학생부종합전형과 고등학교 내신 성적이 강조되는 학생부교과전형으로 나뉜다.

 

단재고만의 독특한 대안교과 운영

일단 도교육청이 단재고 교육과정을 문제 삼는 이유는 고1 시기에 공부해야 하는 공통과목(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통합사회, 통합과학, 과학탐구실험)이 단재고에는 부족하고, 창의적체험활동(창체) 또한 교육과정상에 편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단재고 교육과정은 △보통교과(국어, 사회, 한국사) △인문학(철학Ⅰ, 철학Ⅱ, 인문학선택) △노작(생태활동, 노작선택) △프로젝트(프로젝트 입문, 개별 프로젝트, 졸업 프로젝트, 사회참여 프로젝트, 지역사회 프로젝트) △인턴십(인터십 준비, 인턴십 체험 1주, 인턴십 6주) △자기설계 과정 △길 찾기 등이다.

자료만 보면 모지영 장학관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수학, 영어, 통합과학, 과학탐구실험 등이 빠져 있고 창체 또한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안교육연구회는 “도교육청의 주장이 말도 안 된다”며 “반대를 위한 핑계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대안학교는 필수이수단위(국어10·수학10·과학12·사회8단위를 반드시 이수) 규정을 따르지 않아도 되고, 학종의 경우는 몇 과목을 이수했는지가 대입에서 당락의 기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대안교과(△인문학 △노작 △프로젝트 △인턴십 △자기설계 과정 △길 찾기)를 통해 보통교과(공통과목, 선택과목)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재고 학생들은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나?

그렇다면 단재고 학생들은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고, 평가는 어떻게 이뤄지며, 대학에서는 단재고 학생들을 어떤 기준으로 선발하게 될까?

단재고 대안교과는 일단 학생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분야를 찾는 것에서 시작된다. 학생의 흥미 또는 관심분야가 정해졌다면 학생과 코칭팀(학부모, 교사, 관련 분야 전문가 등)은 어떤 분야를, 어떻게 공부할지 계획한다. 그리고 학생이 공부할 과목은 이 과정을 거친 후 개설된다.

예를 들어 A라는 학생이 앱개발에 관심이 있다면, 단재고에서는 자기설계 수업으로 △정보와 미래 철학 △앱개발 수업 △정보과학 교과를 설계하고 배운다. 프로젝트는 △파이썬 활용 데이터분석 프로젝트 △앱개발 프로젝트를 한다. 그리고 노작활동에서는 △하이테크, 코딩 인턴십은 앱개발 스타트업에서 할 수 있다. 창제 및 동아리 활동으로는 △앱개발 공모전 참여 △온라인 플랫폼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이다.

대안교육연구회 소속의 교사 B씨는 “도교육청에 제출한 교육과정 자료 중 프로젝트는 과목명이 아니고 과정명일뿐이다”라며 “단재고의 큰 틀은 자기설계교육과정이다. 모든 학생들은 자신이 어떤 분야를 공부할지, 어떤 과목을 공부할지 코칭팀과 매 분기, 매 학기, 매년 계획을 수립한다. 코칭팀은 교사와 학부모, 전문가 등으로 구성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학생이 어떤 분야를 공부하고 싶은지 미리 알 수 없고, 협의 이후 교과목이 개설되기 때문에 도교육청에 제출한 자료 중 보통교과에는 당연히 표기할 수 없다. 국어, 사회, 한국사만을 명시한 이유다.

단재고의 평가는 기존 일반계 고등학교 등급(1~9등급)제와는 달리 A, B, C, D와 서술형으로 기록될 예정이다. A, B, C, D평가는 등급제로 환산, 학생부교과전형으로도 응시가 가능하고 서술평가는 학종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대안학교는 학교장 재량으로 교과 개설 가능

“앞으로 수업은 더 이상 교실에만 국한되지 않아”

부족한 보통교과 문제를 대안교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단재고가 학교장 재량에 따라 교과목을 개설할 수 있는 대안학교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실제 ‘대안학교의 설립·운영에 관한 규정’ 제 9조와 제10조<사진>에 따르면 대안학교의 학교장은 교과목을 개설할 수 있고, 교과서 또한 자체적으로 개발해 사용할 수 있다.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개설해 운영되고 있는 선택과목은 이미 수백여 개에 이른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캡처.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캡처.

 

대안교육연구회의 B교사는 “대학에서 원하는 고등학교의 보통교과 단위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과목은 국영수사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얼마든지 개설할 수 있다. 보통교과 단위가 부족해 대입에 어려움이 있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B교사의 말은 2025년부터 전면 도입되는 고교학점제와 일맥상통한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를 통해 학생이 주어진 교육과정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존재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수업을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진로를 개척해 나가는 자기 주도적인 존재로 변화하길 기대하고 있다.

A씨는 “(학교생활기록부에)학생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내용을 적을 수 있다. 이제 수업의 개념은 교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학생이 교실 수업 뿐 아니라 확장된 영역에서 한 활동을 충분히 적어주면 대학에서는 선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학에서는 학생이 선택한 과목에 어떻게 참여했고, 얼마나 역량을 키웠는지 본다. 활동과 연계된 학과에 지원한다면 입학에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개설했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강사를 어떻게 수급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도교육청에서도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오창고의 조정자 교사는 “고등학교 교사가 모든 교과를 다 지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구시대적 발상이고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빅데이터나 다양한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양질의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다. 또 관심이 같은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는 것도 유력한 방법이다. 필요한 경우에는 대학교수 등 전문가나 지역사회 전문가와 연결시켜 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교사는 아이 한명 한명과 이 과정을 함께 설계하고 검토하고 점검하며 학생의 학습이력을 관리하고, 길을 찾지 못할 때 다양한 길을 안내해 주고, 나태함을 보일 때 촉진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정자 교사의 말 또한 고교학점제와 맞닿아 있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도입을 통해 교사는 교과의 지식을 전달하고 대학 진학을 지도하는 역할에서, 학생 개개인의 다양한 성장과 맞춤형 학습을 지원하고 배움의 질을 보장하는 진정한 교수·학습 전문가로 변화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개교 10개월 앞두고 교육과정 전면 재설정?…“반대 위한 반대일 뿐”

단재고 졸업생 중에도 학생부종합전형 이외에 학생부교과전형이나 정시로 대학에 입학하길 원하는 학생이 있을 수는 있다. 교육과정상 문제풀이식 정시(수능)대비를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취업을 원하는 학생이 특성화고에 진학하고, 예술교육을 원하는 학생이 예술고에 진학하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즉 특정분야를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 특정 고등학교에 진학하듯이 단재고 또한 졸업 후 바로 대학 진학하기보다는 대안교육을 원하는 학생들이 입학할 것이라는 대전제가 있다는 얘기다.

결국 현 입시체계에서 단재고 학생들이 대입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도교육청의 주장은 합리적이지도, 또 사실도 아니다. 더욱이 이러한 이유로 이미 수년에 걸친 고심 끝에 완성된 교육과정을 개교 10개월 앞둔 시점에서 전면 재설정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한편 이에 대해 신현규 대안교육연구회장은 “충북교육청에서 이러한 사정을 모를 리 없다. 단재고의 보통교과를 50~100단위로 늘린다면 당초 단재고가 표방했던 1인 1교육과정, 맞춤형 교육 등 ‘스스로 서고, 서로를 살리는 사람을 양성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는 불가능하다.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대입에 유리한 일반계 고등학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며 “도교육청의 주장은 반대를 위한 반대이고 핑계일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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