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보은공장 폭발사고에 공포에 떠는 주민들
1997년·98년, 2003년 이어 네 번째 폭발사고
2003년 사고당시 2명 사망, 1997년 폭발당시 주택까지 파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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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화 보은공장이 위치한 충북 보은군 내북면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 한화 보은공장에선 지난 1월 26일 꽝 하는 굉음과 함께 질산암모늄으로 추정되는 물질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주)한화 보은공장이 위치한 충북 보은군 내북면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 한화 보은공장에선 지난 1월 26일 꽝 하는 굉음과 함께 질산암모늄으로 추정되는 물질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주) 한화 보은공장 입구 모습
(주) 한화 보은공장 입구 모습

화약고가 터졌다. 화약고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아픈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다행히 이번 폭발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불안감은 커진다.

주민들은 대부분 70이상의 초고령 노인이다. 상대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한화. ㈜한화 보은공장은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시설로 국가 기밀시설로 돼 있어 접근조차 어렵다.

힘 없고 나이 든 노인들은 할수 있는게 별로 없다. 기껏해야 현수막을 내거는 정도다.

지난 1월 28일 충북 보은군(군수 정상혁) 내북면 화전리와 법주리 일대에 현수막이 일제히 걸렸다.

현수막 문구는 “꽝! 무서워 못살겠다”.

 

과거 아픈 기억 끄집어 낸 26일 폭발사고

 

26일 새벽 0시 25분경 ㈜한화가 운영하는 보은사업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번 사고원인은 폭탄 제조 원료인 질산암모늄이 급격한 온도상승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한 것으로 추정했다.

26일 새벽 0시 25분경 보은군 내북면 화전리와 법주리 주민들은 ‘꽝’하는 굉음에 잠에서 깨어났다. 이곳 주민들에 따르면 집이 흔들릴 정도로 충격이 매우 컸다.

한 밤중에 발생한 폭발의 진원지는 ㈜한화보은공장. 이곳에는 초정밀 유도탄 등 방산물품 생산시설이 들어섰다. 폭발로 건물 일부가 붕괴 됐지만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가 나자 ‘한화 구미공장 이전 저지대책위원회’ 등 지역 주민들은 지난 1월 27일 ㈜한화 보은공장을 방문해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한화 측은 이 사업장이 안전하다고 하지만 그 말을 믿을 수 없게 됐다"면서 "조속한 시일 내에 정중한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폭발 사고 후 며칠 지났지만 지금도 불안해하는 주민들이 있다"며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대책을 한화는 반드시 내놔야 한다"고 요구했다.

(주)한화 보은공장이 위치한 충북 보은군 내북면 주민들이 게시한 현수막 모습
(주)한화 보은공장이 위치한 충북 보은군 내북면 주민들이 게시한 현수막 모습
보은군 내북면 주민들이 게시한 현수막이 걸려 있는 도로 전경
보은군 내북면 주민들이 게시한 현수막이 걸려 있는 도로 전경

주민들이 불안해 하는 이유는 이번 사고 때문만은 아니다.

(주)한화가 보은 땅에서 첫 가동을 한 것은 32년 전인 1990년. 보은군 내북면 염둔리 일대 120만평에 터를 잡고 각종 폭약과 화약을 생산한 이래 지금까지 4번의 폭발사고와 한번의 화재사고가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03년 한국화약 보은공장 폭발사고

탄두조립실 고폭탄 터져…2명 숨지고 4명 부상

 

2003년 11월 18일 오후 4시12분 경 충북 보은군 내북면 염둔리 (주)한국화약 보은공장 방산생산1부 탄두조립공실에서 2.75인치 다목적고폭탄이 터져 2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는 탄두조립공실에서 원격조정 장치에 이상 징후를 포착한 직원들이 점검하는 과정에서 로켓탄두가 폭발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 사고로 노동자 2명이 숨지고 4명은 몸에 파편이 박히거나 고막이 터지는 부상을 당했다.

폭발사고로 150평 규모의 탄두조립공실 건물 내부가 완전히 부서지고 옹벽까지 무너졌다.

 

주민 최대 물적피해를 준 1997년 폭발사고

 

한화 보은공장 가동이후 사망 사고는 2003년 11월 폭발사고가 처음이지만 주민들의 물적피해가 가장 컸던 때는 1997년 10월 8일 폭발사고였다.

이날 밤 10시경 공장 화약저장 창고에 보관중이던 화약원료 12.8톤 가운데 8.9톤이 폭발했다. 200여평의 창고가 전소됐고 폭발로 날아간 H빔 파편으로 조립식 건물 2개동이 전파 또는 반파될 만큼 파괴력이 엄청났다.

사고 당시 공장 인근 법주리에 살던 이 모씨(당시 47세)는 “집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꽈꽝’ 하면서 벽이 흔들리는 거여, 아이쿠 지진인가 보다 싶어서 밖으로 뛰쳐 나가보니 뒷산 꼭대기 위로 뻘건 불기둥이 환하게 솟아 올랐더라구. 그때서야 아- 화약공장에서 뭔 일이 터졌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사고로 법주리를 비롯한 창리․ 화전리 20여 가구의 유리창이 깨지고 형광등과 거울이 떨어져 부서졌다.

심지어 20km이상 떨어진 보은읍을 비롯 내속리면․산외면 주민들도 한밤중에 폭발음과 불기둥에 놀란 경우가 적지 않았다.

폭발과 함께 불길이 인근 야산으로 번지는 바람에 청주지역 소방차와 공군 3579부대 화학차량 까지 동원 돼 다음날 새벽 3시가 지나서야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당시 사고 처리 과정도 논란이 됐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소방서 측에 사고 신고를 한 것은 공장 측이 아니라 주민들이었다.

사실상 ㈜한화 공장 측의 사고대응 시스템은 가동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이 날의 사고를 "난리"로 칭했다.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한 주민 남모씨(2003년 당시 73세)는 "말도 마. 그런 난리가 없었어. 천지가 진동을 하는데 전쟁 터진 줄 알고 자다 말고 피난 보따리를 싸고…. 짐승들은 놀래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라고 말했다.

 

1998년에도 폭발사고, 2001년에는 화재

 

보은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폭발사고는 1998년도에 있었다. 2001년에는 화재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사실은 2003년 ㈜한화가 인천공장을 보은으로 이전 할 당시 회사관계자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과정에서도 확인된다.

오마이뉴스 취재기자가 2001년 또 한차례 화재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자 ㈜한화 관계자는 "당시 사고는 별반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이때 사고는 외부의 조력없이 자체 진화했다. 수입하던 것을 자체 생산하는 과정에서 기술력 부족으로 생긴 사고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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