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공장 증축저지 범대위, 사망사고 나자 ‘공장추방’ 수위높여
한화, 발전기금 10억원으로 내북면과 합의, 범대위 무력화 시도

공장확장 추진으로 주민 집단반발을 불러 일으켰던 (주)한화 보은공장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 공장이전 요구로 확산되고 있다. 18일 오후 4시12분께 충북 보은군 내북면 염둔리 (주)한화 보은공장 방산생산1부 탄두조립공실에서 2.75인치 다목적고폭탄이 터져 2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사고는 탄두조립공실에서 원격조정 장치에 이상 징후를 포착한 직원들이 점검하는 과정에서 로켓탄두가 폭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고로 이종락씨(36)와 조을수씨(27)가 현장에서 숨지고, 장승익씨(33) 등 4명은 몸에 파편이 박히거나 고막이 터지는 부상을 당해 병원치료를 받았다. 폭발사고로 인해 150평 규모의 탄두조립공실 건물 내부가 완전히 부서지고 옹벽까지 무너졌다. 한화측은 “2.75인치 로켓탄두 조립라인은 자동시스템인데 컴퓨터 원격조정 장치에 문제가 발생, 직원들이 점검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폭발한 것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펑’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로켓탄두가 폭발했다는 직원들의 말에 따라 고폭탄 탄두에 신관이 장전된 줄 모르고 작업을 하다가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중이다.

보은경찰서는 사고 당시 숨진 이종락씨(생산주임) 등이 작업자로부터 기계점검 요청을 받고 탄두조립공실 내부로 들어간 사실을 확인하고 탄두안에 자탄을 삽입하는 장치가 이상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고로 경찰을 비롯한 국방과학연구소, 산업안전공단의 현지조사가 이뤄져 조만간 조사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화 보은공장은 지난 97년과 98년에도 폭발사고가 발생해 인근 마을의 가축이 사산하고 주택 유리창이 파손되는 등 주민피해가 발생했다.하지만 안전부주의에 의한 폭발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인천공장 이전을 반대운동을 펼치던 군민들은 아예 공장 추방운동으로 요구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화 입장에서는 예민한 상황에서 결정적인 덜미를 잡힌 셈이다.

하지만 공장이 위치한 내북면 주민대표들과 지난 9월초 공장확장에 대한 합의서를 작성한 상황이기 때문에 한화측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취재결과 한화는 내북면발정위원회측과 지난 9월 6일 지역발전기금 10억원 출연, 직원 50세대 거주확보 등을 골자로 합의공증했다. 결국 한화보은공장추방범군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와 내북면발전위원회는 딴 길을 걷게됐고 그 갈등이 고발사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내북면발전위 A씨는 “당초 공조협력하려 했으나 우리는 준비가 다 됐는데, 범대위 구성이 자꾸 지연됐다. 그런 와중에 범대위 일부 사람들이 한화측에 대형 운동장과 콘도 설치 등을 조건부로 내걸었다는 소문이 나돌아 내북면은 독자적으로 활동키로 한 것이다. 그동안 97년 폭발사고 이후 회사측과 꾸준히 대화를 해왔기 때문에 내북면 주민들은 그쪽 사정을 잘알고 있다. 더구나 87년도에 한화공장 처음 들어설때 우리 주민들이 그렇게 반대했는데도, 이번에 범대위에 참여한 기관단체장들이 어떻게 처신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북면 발전위원회를 한화측과 합의한 것에 대한 비판내용이 담긴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범대위 공동위원장 6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상태다. 이에대해 일부에서는 “한화측에서 범대위 조직이 확대되고 반발수위가 높아지자 디바이드 앤 콘트롤(divide & control) 전략을 쓴 것 같다. 내북면 주민들을 분리시켜 범대위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더구나 발전기금 출연금도 공장확장 공사 착공시점을 못박아 내북면 주민들과 범대위가 다시 합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충북환경운동연합(대표 김학성)은 보은지역 주민의견이 양분되자 단체 산하에 ‘한화보은공장 특별대책위원회(위원장 구용섭)’를 구성해 증축 반대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사고현장 공개, 책임자 면담을 요구하면 공장앞에서 집회를 가졌다. 충북환경련은 염우사무처장은 “한화의 거듭된 안전사고는 주민들이 발전기금과 같은 당근에 현혹되서는 안된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환경권 확보와 생태계 보전이라는 환경운동 본래 취지에 따라 주민들의 반대운동을 적극 지원할 것이며 사망사고에 대한 공개적인 대군민 설명회를 갖지 않는다면 공장앞 천막농성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87년 120만평의 부지에 건설된 한화 보은공장은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뒤 현무탄두 등 36종의 방산제품과 각종 안전뇌관류 등 민수제품, 자동차 에어백용 인플레이터 등 연간 580억원 상당의 화약류를 생산하고 있다.한화는 지난해부터 인천공장 이전에 따른 보은공장 증축 계획을 추진해왔다. 오는 2005년까지 1200여억원을 들여 보은공장 인근에 인천공장에 있는 산업용 화약류 생산공장을 이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범대위의 반대운동이 확산되자 지난달 공장신축에 따른 건축허가 신청을 취소했다.

범대위는 9월 21일 800여명의 주민이 참여한 가운데 범군민 결의대회 개최하고 이어 화북면?산외면 등 면별로 집회를 갖고 있다. 또한 주민 서명운동과 함께 한화 인천공장 이전에 따른 불법 건축 및 불법 잔재물 시정 요구서 군에 제출했다. 10월에는 (주)한화 보은공장 증설반대 및 보은공장 타지역 이전 요청을 위한 군민 1만308명의 서명서를 첨부한 민원을 충북도 제출했고 오는 12월초 대규모 군민 규탄대회를 열 계획이다.

97년 화약원료폭발 주민피해 심각

한화 보은공장 가동이후 사망 사고는 지난 18일 폭발사고가 처음이지만 주민들의 물적피해가 가장 컸던 때는 지난 97년 10월 8일 폭발사고였다. 밤 10시께 공장 화약저장 창고에 보관중이던 화약원료 12.8톤 가운데 8.9톤이 폭발했다. 당시 200여평의 창고가 전소됐고 폭발로 날아간 H빔 파편으로 조립식 건물 2개동이 전파 또는 반파될 만큼 파괴력이 엄청났다.

공장 인근 법주리에 살던 이상욱씨(47)는 취재 당시 “집에서 TV를 보고있는데 갑자기 ‘꽈꽝’하면서 벽이 흔들리는 거여, 아이쿠 지진인가 보다 싶어서 밖으로 뛰쳐나가보니 뒷산 꼭대기 위루다 뻘건 불기둥이 환하게 솟아 올랐더라구. 그때서야 아-화약공장에서 뭔 일이 터졌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사고로 법주리를 비롯한 창리·화전리 20여 가구의 유리창이 깨지고 형광등과 거울이 떨어져 부서지는 소동을 빚었다.

심지어 20km이상 떨어진 보은읍을 비롯 내속리면·산외면 주민들도 한밤중에 폭발음과 불기둥에 놀란 경우가 적지 않았다. 폭발과 함께 불길이 인근 야산으로 번지는 바람에 청주지역 소방차와 공군 3579부대 화학차량까지 동원돼 다음날 새벽 3시가 지나서야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피해가 컸던 화전리는 ‘마을회관 건립, 가구별 유선TV망 설비’를 조건으로 회사측과 합의했다. 하지만 전업 양축농가들과 피해보상 협상이 난항을 겪게 됐다. 폭발음에 놀란 가축들이 뛰쳐나간 경우도 있었고 후유증으로 유·사산하거나 발육부진 등의 피해가 잇따랐다. 결국 이상욱씨등 양축농가 3가구는 회사측과 서울대에 피해산출 용역의뢰를 맡켜 그 결과에 따르도록 합의했다. 하지만 사고 당시 소음치를 80-90db로 산정하는 바람에 피해농가에서는 당초 요구액의 20-25% 수준의 보상금을 받는데 그쳤다.

당시 피해산출 용역을 맡았던 서울대 황우석교수는 취재진에게 “조사과정에서 해당 농민들의 요구도 집요했고 회사에서는 보상예정가의 1/3 수준을 내세웠다. 나중에는 경찰, 정보기관에서도 전화가 걸려왔다. 입장이 곤란해서 이런 상황에서는 용역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하겠다고 보류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조사과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입장을 하소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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