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준의 위태로운 하루] 학교 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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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준의 위태로운 하루] 학교 없는 사회
  • 박윤준
  • 승인 2020.04.0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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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맞이한 온라인 개학 시대...'학교 없는 사회'를 상상해 본다

"형, 지금 브롤 들어왔어?" 금요일 점심때가 가까워진 시간에 '초등학교 3학년' 사촌동생 의진이한테 전화가 왔다. 평소에는 학교 다니느라 핸드폰으로 연락하기 쉽지 않은 녀석인데, 내가 휴대폰 게임 '브롤스타즈'에 접속한 걸 알고는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의 부모는 그에 대한 훈육의 일환으로 '휴대폰 게임 하루 1시간 룰'을 정하고 있어서 함께 게임을 하지는 못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시민들, 감축 운행으로 줄어든 버스 시간표, '코로나19 전문'을 내걸고 홍보하는 방역업체들… 코로나19로 인해 낯선 풍경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많은 이들의 일상을 흔드는 일이 있다면 전국 초·중·고교 개학 연기다.

어린이들 입장에서는 어쩌다가 학교에 가지 않게 된 셈이다. 올해 1월 아쉬운 마음으로 겨울방학을 하루하루 보내고, 개학과 동시에 시작될 '학교-방과 후 교실-학원-숙제-시험'의 무한 루프를 앞두고 현기증을 느낄 시점이었다. 2월에 나라에 이상한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더니 어른들이 불안에 떨며 외출을 자제하고 티비를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는 모습을 보았다.

어른들의 고뇌와 관계없이 어린이들은 직감적으로 희망의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이러다 학교 안 가도 되겠는걸?' 설마, 설마, 했던 실낱같은 희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오에 내리쬐는 뙤약볕이 되었다. 모든 학교는 개학을 연기했고, 4월이 되어서야 중고등학교부터 등교 없이 사이버 강의가 시작된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이반 일리치의 <학교 없는 사회>를 읽기 시작했다. 운명적인 독서랄까. 책에 담긴 저자의 뜻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학교는 가르침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 오히려 방해가 되니, 모두의 필요와 관심에 따라 나누고 공부하는 교육망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쓸 수 있겠다.

책에 따르면, 학교는 공권력이 교사에게 부여한 권위를 이용해 어린이들을 학급별로 '가두고', 1년이 지날 때마다 '승급' 제도를 통해 생애의 시간을 선 긋고, 계급화하며, 어린이의 사생활까지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이를 수행하는 데 있어 국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력과 세금을 들이지만(!) 정작 학교가 생산해내는 것은 학교화된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교사 권위에 굴종하고, 교사의 도덕적 기준에 부합하는 이는 높이 평가받고 실제로 경제적, 사회적 안전이 보장된 길목으로 안내받는다. 우리가 잘 아는 대학입시가 그 대표적인 길목이다. 일리치는 어린이들이 실제 삶에서 필요한 지혜와 지식은 모두 학교 커리큘럼 밖에서 배운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교사의 개입 없이 말하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느끼고, 놀고, 저주하고, 정치하고, 일하는 것을 배운다.

나는 여기에 대응하여 말하고 싶다. 우리는 공교육으로부터 표현하지 않고 눈치 보고, 공부 잘하는 친구-공부 못하는 친구, 부유한 친구-빈곤한 친구를 구별하고, 자기감정을 억압하고 무시하고, 오래 앉아있고, 욕하지 않고, 순종하고, 몰래 딴청 피우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이러한 학습을 통해 학교화된 인간은 대학교에서, 회사에서 살아남는다.(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학교화된 사람들이 공무원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통과된 선거연령 만 18세 하향은 단순히 선거연령이 낮아졌다는데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학교 안 청소년'들에게도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인정했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청주대성고등학교 학생들이 18세 새내기 유권자 응원 포퍼먼스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충북도선관위 제공)
올해 첫 선거를 치르는 만18세 이상 새내기 유권자들 ⓒ충북도선거관리위원회 제공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상상해보자. 교육부가 코로나19를 겪으며 공교육이 없더라도 청소년들이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스스로 알아낸다는 진실을 깨닫는 것을. 교육부가 2020년 4월부로 전국의 초중고를 모두 폐교하고 '지식순환 공동체'를 일구는 공간으로 전환하는 시나리오를. 교육부가 그러하지 않는다면, 모든 청소년들이 학교 교육의 쓸모없음을 깨닫고 전국 동시다발 등교를 거부하는 시나리오는 어떨까.

그리하여 어린 이들에게 학교와 학생이라는 굴레를 벗겨주고 동등한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시민권을 허락하면 어떨까. 이를테면 전 연령에게 투표권을 주고, 선거 후보의 기호와 이름만 써놓지 않고 사진이나 그림을 넣어두는 방법은 어떨까. 후보들은 자기 얼굴과 자신을 상징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도록 해야겠다. 그 그림만 보아도 많은 이들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학교 폭력의 피해를 입고 있는 수많은 청소년들의 처지를 생각한다. 이번 개학 연기로 마음을 쓸어내리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다. 눈물이 난다. 이주노동자들이 차별을 받아도 쉽게 사업장을 바꾸지 못하는 것과, 같이 공부(노동)하는 동료 학생들의 괴롭힘에도 쉽게 학급을 바꾸지 못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한 공간에 같은 사람들과 오랫동안 고여있지 않고, 학급의 구분 없이, 연령에 상관없이, 관심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공간이라면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의 정치적 술수가 지금과 같이 난무할까? 학교폭력방지법과 학교폭력대책위원회 그리고 그에 따르는 천문학적인 예산과 에너지 소모가 필요할까.

부디 나의 사촌 의진이를 비롯한 '학교 안 청소년들'에게 자유가 찾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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