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반성 없이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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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반성 없이 봄이 왔다
  • 이성배
  • 승인 2020.03.16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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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배의 틈

 

습자지처럼 얇아 다음 날이 비치는 일력을 하릴없이 찢다가 맞닥뜨린 봄. 숙제를 마치지 못하고 잠들었다가 깨어난 아침. 누군가 내 스케치북에 대신 그려 놓은 크레파스 그림을 목격하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당혹감이랄까. 

필자가 올봄에 대해 느끼는 이물감과 헛헛함은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불안감이나 밖에 나가 뛰어 놀고 싶은 두 아이를 달래며 집 안에서 보내는 최근의 일상 때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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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민들은 혼신을 다해 그러나 담담하게 각자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전염병 극복에 마음을 모으고 있다. 동시에 또 하나의 싸움에 대해서도 의연하다. 온갖 가짜뉴스, 클릭 수에 사활을 건 듯 보이는 자극적인 불안감 증폭 기사들과의 싸움. 봄의 두께를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우리가 아산이다’(#We_are_Asan) 스케치북 한 장에 적은 마음이 따듯한 물길이 되고 바람이 되어 트랙터의 동체처럼 딱딱한 불안과 그 불안을 부추겼던 일부 언론을 보듬었던 일. 틈이 생길만 하다 싶으면 날카로운 커터 칼 같은 [단독], [속보]로 국민을 분열시키려하고 불안을 증폭시키는 것에 대해 누군가는 반성해본 일이 있는가?

‘마스크 내가 먼저 양보하겠습니다.’(#나는_ok #당신_먼저) 꽃이다. 향기이다. 마음이다. 묵직한 움직임이다. 틈을 덮고도 남는 두터운 기운이다. 

생활이 어려운 팔십 노구가 주민센터 공무원들을 위해 빛바랬지만 아껴둔 천으로 밤새 바느질해 만든 마스크를 전달했다는 소식. 기사 그대로 ‘희망백신’이다. 

악다구니 치고 휘두르는 행위만 있고 사람이 없는 가짜 뉴스, 짜증 속보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고 지내다 혼자 청주 것대산으로 봄 마중을 나갔던 2월 끝자락.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등산객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도 사뿐사뿐 씩씩하게 산을 오르내리는 한국인의 저력이란... 니들이 매운 맛을 알어?   

창꽃 가지마다 막 젖니가 돋으려는 것처럼 도톰해진 꽃봉오리. 시원한 바람이 소나무 숲을 지날 때 바람은 파랬다. 기분 좋게 오솔길을 지나 상당산성 옛길로 내려오는 양지바른 개울둑. 초록 좌판을 펴고 촘촘히 벌여놓은 하늘색 꽃이 눈에 띈다. 올해 처음 마중한 들꽃이다. 그 이름 큰개불알꽃.(학명: Veronica persica Poir. 꽃말: 기쁜소식) 왠지 거시기한 생각이 든다면 ‘봄까치꽃’이라 불린다니 선택하여 부르시길.

의료진을 응원하고 작은 성금을 보태고 선한 기부가 이어지는 꽃망울 같은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건네는 기사가 많아지면 어떨까? [속보], [단독], [특보]를 몇 개씩 숨 가쁘게 ‘붙여넣기’ 하기 보다 사람의 마을 근처 야산이나 들로 나가 오체투지 오는 계절을 살피는 건 어떨까? “부장님, 개부랄 아니 큰개불알꽃이 피었습니다. 기쁜 소식이랍니다!” 지치고 불안한 시민들을 위해 희망백신을 찾은 것처럼 외친다면.

 [속보] 큰개불알꽃 활짝... 차분한 시민의식 빛나.(지금 우리는 힘들지만 봄은 오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습관을 버리지 못한 어떤 천한 자본주의가 다급하게 짜깁기하다가 [단독] 청주 인근 마을에 100년 만에 큰개불알 나타나...로 기사화 하더라도, 사실이 아니더라도 환해지지 않겠나. 

우리는 할 수 있다! 이 문장 속에는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동참하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용기를 건네는 말 한마디가 봄기운처럼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봄에는, 집에 있는 동안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잠시 되돌아보는 것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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