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서 내려 걷다보면, 비로소 눈 앞에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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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운동학 및 기능해부학'이라는 미국인 저자가 쓴 대학 교재는 성인 평균 걸음 속도가 시속 3마일(4.8km)이라고 설명한다. 내가 사는 음성군 금왕읍에 있는 무극터미널과 북청주정류소를 잇는 간선도로(네이버지도상 거리가 48km 가량 된다)를 10시간 만에 갈 수 있는 속도다. 오전 6시에 출발한다면 오후 4시쯤이면 도착한다는 얘기다. 물론 쉼 없이 같은 속도로 걸었을 때 나올 수 있는 수치니 1~2시간은 더해야 현실적인 참고가 될 것이다. 이 속도라면 모친과 동생이 사는 134km 떨어진 경기 고양시 아파트까지는 총 28시간 가량 걸려 당도할 수 있다. 하루 10시간씩 걷는다면 이틀 밤을 자고 셋째날 점심을 조금 넘겨서 도착하게 된다.

가끔씩 네이버지도를 켜고 도보 이동시간을 찾아보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라면 걸어보기로 한다. 자동차가 없고 운전면허마저 없는 나에게 '걷기'는 꽤 오래된 이동 방법이다. 걸음의 효능은 어디까지일까. 2013년 초, 겨울의 기운이 아직 한낮에도 남아 있는 계절이었다. 대학교 동기와 서울 시내를 벗어나 남쪽으로 무작정 걷기로 했다. 머리 속 가득한 번뇌를 흩뿌리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삼남길을 일부 복원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동기와 그 길을 걸었다.

삼남길은 경기, 충청, 전라를 관통하는 조선시대 가장 긴 도보길이다. 해남부터 강진, 나주, 광주, 완주, 익산, 논산, 공주, 천안, 평택, 수원을 지나 서울에 이르는 천리길. 삼남지방에서 난 풍성한 곡물들이 이 도로를 통해 유통되었고, 지역 장터를 오가는 보부상, 임지를 옮기는 관리, 민심을 살피러 나온 임금, 소달구지에 실려 유배지로 내려가는 대역죄인까지 모든 사람이 이용하는 도로였다고 한다.

도보여행은 골사그네라는 오래된 마을길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반나절을 걷고 또 걸었다. 언덕을 넘고 하천변을 걷다가 도심을 통과했다. 서호공원 호숫가에 내려앉은 철새들도 보았다. 봄이 오고 있었다. 눈에 들어온 여울, 솔방울, 새, 오래된 건물들을 보며 동기와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눴다. 우리의 도보 여행은 수원역 인근 옛 기찻길 어느 지점에서 끝이 났다. 되돌아 계산을 해보니 13km는 족히 걸은 셈이었다. 아점을 간단히 먹고 움직였던 터라 허기가 온몸에 배여있는 느낌이었다. 진짜 허기였다.

우리는 옛 기차길 인근 마을골목을 서성이다가 '철판닭갈비' 간판을 보고 무작정 들어가 메뉴를 시켰다. 주인 아주머니는 그야말로 이방인을 보듯 신기하게 쳐다보시더니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냐고 물었다. 우리는 서울서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그러자 많이 먹으라고 음식을 내어주시고는 청년들이 기특하다며 돈을 받지 않으시는 것 아닌가. 도보여행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런 시도 역시 바쁘지 않아야하고 다리가 튼튼하고 그밖에 위험요인들을 감수할 때에만 가능한 일이었다.

음성에 지난 4년간 살면서 "그래도 차는 사야한다"는 이야길 수십 번 들었다. 음성지역은 시내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고, 자전거길, 보도블럭조차 제대로 깔리지 않았다. 다른 지역과 연결되는 버스와 기차의 수는 매우 부족하다. 그나마 서울로 나가는 차편은 늦은 시간까지 있지만 음성으로 돌아오는 차편은 저녁 7-8시면 끊긴다. 지방 소도시의 인구가 빠져나가기만 하고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그야말로 자동차를 사야만 이동권을 보장 받는 사회다. 그래서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지역민들은 빚을 내서라도 자동차를 구입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속 4.8km라는 평균값은 차별적인 현실을 감추고 있다. 걸음이 제 속도를 낼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에서 음성-청주간 도보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버스, 덤프트럭이 다니는 간선도로 옆에 난 갓길을 위태롭게 걸어가야만 한다. 휠체어 이용자의 입장을 생각하면 이동하는 일은 더욱 골치 아파진다.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평평한 노면과 완만한 경사도, 그리고 자동차로부터 안전한 도로가 이 도시에는 제대로 놓여있지 않다.

자가용의 등장은 어떤 사회적 약자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여성이 자기 자동차를 갖는다는 건 "나만의 방"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자가용은 가부장제 가족이라는 불평등한 구조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해방공간이었다. 심지어 이 '방'은 바퀴가 달려있어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기까지 하니 차를 좋아하는 여성의 마음을 알 듯도 하다. 휠체어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지체장애인에게도 자가용은 장애물 가득한 도시가 박탈한 이동권을 스스로 쟁취해낼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다. 나는 음성군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정미정 센터장님의 차를 이따금씩 얻어 타고 다니며 지체장애인에게 자동차의 필요성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그런 의미에서 장애인콜택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음성의 경우 단 3대 뿐이다!)

다시 시속 4km로 돌아와 얘기하자면, 이 속도는 사람을 해칠 수 없는 비폭력 속도라고 말하고 싶다. 주변을 둘러볼 수 밖에 없고 관찰력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관계지향 속도라고도 부르고 싶다. 시선은 상대와 내가 갑자기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느린 속도를 갖거나 멈추어 있을 때 가능하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 서로를 향한 시선이 풍성해지기 위해선 시속 4km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아야한다. 그리고 이 속도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

자동차 운전자는 자연스럽게 공간을 지나가야할 무엇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화살표 방향으로 시선을 둔다. 만년 조수석 신세인 나는 그들에게 계절이 바뀌는 예쁜 풍경들을 골라 가르쳐준다. 다시, 걸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공기가 어떠한지, 산천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구름의 모양은 어떠한지, 사람들의 표정은 어떠한지, 그들의 체형은 어떠한지 보길 권한다. 우리 사회에 아픈 구석이, 슬픈 장면이, 그리고 여전히 명랑한 순간이, 아름다운 이들이 보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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