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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어느 도시, ‘민중의 집’ 앞에서 인터뷰에 응한 한 남자는 난생처음 경험해보는 희열에 젖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안에 어떤 동물성을 발견한 것 같아요. 그것은 내게 엄청난 영감을 불러일으켜요.” 프랑스 민중들은 일상에서 켜켜이 쌓아두던 찌든 감정들을 시위를 통해 말끔히 씻어버리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맨몸으로 거리에 나와 동물처럼 소리를 질렀고, 경찰들은 그들을 사냥하려는 듯 최루탄을 쏘고 몽둥이질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실명을 당했다. 노란 조끼를 입고 시위에 나선 이들은 속칭 ‘전문 시위꾼’도 아니고, 단체나 정당 활동가들도 아니었다. 그들 대부분은 임금을 받으며 생활하는 노동자들이거나 실업자, 은퇴한 사람들이었고, 평범한 민중들이었다.

프랑스 민중들은 높은 집값과 월세, 세금 감면 혜택을 누리는 부자들과 기업과는 달리 중산층에 부과되는 각종 세금 폭탄, 늘어나는 빈곤층, 빈약해지는 연금정책… 등등의 경제적 불평등을 감내하고 있었다. 2018년 프랑스 마크롱 정권이 환경오염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경유 유류세를 23%, 휘발유 유류세를 15% 인상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방아쇠가 당겨졌다.

얼마 뒤 어느 50대 여성이 페이스북에 영상 하나를 올려  “프랑스 사람들의 현금으로 무엇을 하느냐”며 마크롱 정권의 정책을 비판했는데 짧은 시간 안에 영상은 조회 수 600만을 돌파했고 25만 번 넘게 공유되었다. 이렇게 21세기 풀뿌리대중운동 ‘노란 조끼 운동’은 SNS상에서 사람들이 삶의 고충을 토로하면서 시작됐다.

누군가 차량에 의무적으로 비치하던 형광 조끼를 입고 원형교차로에서 모이자고 제안했고 얼마 뒤 수십만 명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사르코지 정권이 위기 상황 시 입을 수 있도록 차량 내 노란 조끼 비치를 의무화했는데, 훗날 이 조끼가 위기에 빠진 민중의 삶을 알리는 투쟁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어느 지도자나 활동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할 것 없이 저마다 짊어지고 있던 삶의 숙제들을 바깥으로 꺼내와 거리에 쏟아냈다. 피켓을 들고, 악기를 두드리고, 소리를 지르며. 그렇게 민중들의 요구가 거리로 터져 나왔다.

‘은퇴했는데 연금 몇 푼을 가지고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 ‘이 나라엔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도 최저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 ‘월세가 비싸서 살기 힘든데 유류세까지 올리면 어떻게 살라는 거냐’. 그들의 요구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들이었다. 노란 조끼 운동은 지역을 넘나들며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체계적이지 않고 시끄럽고 야단법석이었지만 모두에게 발언권을 인정하고 마음껏 떠들도록 했다.

지역마다 세워진 ‘민중의 집’을 거점으로 정치적 성향, 출신과 관계없이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고 요구사항을 정리하고 시위를 조직했다. 아수라장에 가까웠던 토론도 ‘발언 막대기’를 돌려가며 한 번에 한 사람씩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방식을 누군가 제안하면서 질서를 잡아갔다.

“2020바리케이드 노동인권국제영화제@음성”의 첫 번째 상영작, 오헬리앙브룽도·발레리오마지 두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조끼 하나면 충분하다(2019)>가 끝났다. 패널과의 대화가 이어졌지만 금왕읍의 “소극장 하다”에 모인 관객들은 무거운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 민중연대 활동 방향에 관해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패널로 참석한 음성민중연대 집행위원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음성지역에서 민중운동이 오랜 침체를 겪고 있는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터라 나 또한 마음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어떤 활동을 해야 사람들이 모이고 활발한 운동을 전개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침묵을 깨고 이어진 관객들의 소감들을 통해 구체화될 수 있었다.

관객 중 음성읍 내 초등학교 선생님 한 분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말들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이미 우리가 잘해온 일들이 있지 않냐’고 이야기했다. 현재 소극장에서 기타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한 분은 임금노동자로 살았던 과거 경험을 떠올리며 ‘상여금 삭감, 1년마다 5천 원씩 올라가는 근속 수당 등등 부당한 일을 많이 겪었고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제대로 행동하지 못했다’며 부끄러운 심경을 고백했다. 제조공장에서 일하시는 한 여성분은 ‘음성지역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나이 평균이 60대다.

지금 내 동료들은 토요일 낮인 이 시간에도 일하고 있다. 그들은 이런 세계를 알지 못한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자주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고, 퇴근한 이후에도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영화 속 민중의 집 활동가의 웃픈 고백이 떠올랐다. 그는 20년 동안 활동을 하면서 이 광경을 고대해왔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정치적인 주체로서 국가에게 인간으로서 누려야하는 마땅한 요구를 하는 모습을 말이다. 시위의 규모가 커지자 그 활동가는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민중’들이 ‘민중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그의 인터뷰에서 어떤 지도자, 개혁가, 활동가들이 주체로 나섰던 기존의 운동방식이 전복되는 것을 목격했다.

혁명가 없는 혁명이 가능해진 시대가 왔다. 평범한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60대 여성노동자가, 지역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청년이, 초등학교 교사가 피켓을 들고 거리를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상상한다. 우리의 사정도 프랑스 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집 구하기 너무 힘들다. 주거권 보장하라. 아무리 일해도 생활형편이 나아지질 않는다. 적정임금 보장하라. 일 그만두면 곧바로 생계는 위협당한다. 실업자 생계 대책 마련하라. 지역에 제대로 된 의료시설이 없다. 공공의료원 개설하라…. 한국사회가 그어 놓은 선을 넘으며 자신의 동물성을 발견하고, 끈끈한 연대의식과 박애정신으로 서로 연결되고 돌보는 모습을 음성지역에서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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