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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안의 반파(半坡)유적은 중국의 농경문화인 앙소(仰韶)문화를 읽을 수 있는 대표적 신석기 유적이다. BC4000년 경의 수혈식 주거지로 씨족사회의 흔적이 잘 남아 있다. 사람의 주거와 함께 가축을 사육하던 흔적도 있다. 중국 당국은 유적 위에 통째로 집을 지어 유적을 보존하고 있다. 이 유적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생활 및 물고기 잡기와 연관된 여러 토기들이다. 붉은색 계열의 토기 표면에다 여러 기하학적 무늬를 새겨놓았는데 그중 물고기 무늬(魚骨文)와 사람얼굴무늬(人面文)가 가장 많다. 토기표면에다 먹색이나 회색 등으로 여러 무늬를 그렸는데 사람얼굴과 물고기를 기하학적인 구도로 합성한 인면어(人面魚)가 눈길을 끈다. 얼굴은 사람이고
오피니언
임병무 고문
2005.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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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조사(祖師)들의 깨우침과 가르침을 모아 놓은 ‘傳燈錄(전등록)’에는 1701명에 달하는 선사(禪師)들의 입적(入寂)과정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책을 보면 그들 선사들은 대부분 임종에 이르러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견하고 마치 먼 곳에 여행을 떠나듯이 홀연히 열반과(涅槃), 적멸(寂滅)에 들고 있어 숙연케 합니다. 스님들은 마지막 떠날 때 대부분 눕거나 앉아서 숨을 거두지만 서서 눈을 감은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뜰 앞을 거닐다 문득 “오늘 가야겠구나” 독백을 하고 몇 발짝을 옮기다가 선 채로 입적한 이가 있는가 하면 거꾸로 물구나무를 선 채 죽음을 맞은 이도 있습니다.
오피니언
김영회 고문
2005.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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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의 충북협회 신년교례회 때문에 회장님이 한 회원으로부터 폭행혐의로 피소당했고, 또 충북협회 부회장단은 충청일보바로세우기대책위 위원장인 김승환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우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에 기자의 입장을 떠나 도민의 한사람으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날 저도 신년교례회가 열린 세종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깜짝 놀랐습니다. 충청일보 노조원들이 상경한다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호텔로비에서 그런 소란이 벌어질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충청일보 노조원들은 자신들의 답답한 사정을 알리기 위해 올라갔고, 출발하기 전에 이미 여러 사람들로부터 점잖은 분들이 참석하는 자리인만큼 절대 소란피우지 말고 의사만
오피니언
한덕현 기자
2005.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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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의 각축장이었던 충북에는 산맥을 따라 산성이 이어달리기를 한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산성이 보은에 있는 삼년산성(사적 제235호)이다. 신라 자비왕 13년(470)에 쌓은 이 산성은 둘레 1680m로 오정산(烏頂山) 능선을 따라 계곡을 감싸안은 듯한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이 성은 3년에 걸쳐 쌓았다고 해서 ‘삼년산성’이란 명칭이 붙었고 신라시대 보은의 명칭은 삼년 군, 또는 삼년산 군이었다. 삼년산성은 현존하는 삼국시대의 성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할 뿐만 아니라 축성의 비밀이 아직도 다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의 성이다. 우선 성벽을 보면 그 단단한 모습에 감탄하
오피니언
임병무 고문
2005.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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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스스로 제 목숨을 끊는 자살의 옳고 그름에 관해서는 윤리관과 종교관에 따라 여러 의견이 제기 되어 왔습니다. 자살 긍정론자들은 인간은 누구든지 자기의 생명에 관해서 절대적 선택의 권리를 가진다는 윤리적 입장을 주장하는 반면 부정론자들은 신에 대한 의무를 포기하는 행위라고 종교적인 관점에서 죄악시하고 있습니다. 자살의 원인에 대해 프랑스의 사회학자 E·뒤르켐은 자살에는 이기적(利己的)자살, 애타적(愛他的)자살, 아노미적(anomi·무규제상태)자살의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개인과 사회와의 결합력이 약할 때, 사회적 의무감이 지나치게 강할 때, 사회정세의 변화 또는 도덕적 통제의 결여에 의한 자살 등이 그것입니다
오피니언
김영회 고문
2005.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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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용품 중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은 역시 그릇이다. 밥그릇, 국그릇, 접시, 된장찌개 뚝배기, 술잔, 항아리 할 것 없이 주방의 모든 질그릇은 인류의 생활과 호흡을 같이했다. 갓 시집온 새 색 씨의 한숨소리조차 받아 간직한 배달의 질그릇이다. 미호천의 질그릇 문화는 바닷가나 타지방의 토기문화와 비슷하나 이와 또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주둥이가 널찍하고 배부른 항아리의 모습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성질이나 생활양식도 넉넉히 받아들인 듯 하다. 날렵하거나 화려한 장식은 많지 않아도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삶은 투박한 질그릇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미호천 물을 길어 이웃집에도 나눠주는 베풂의 미덕을
오피니언
임병무 고문
2005.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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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국에서는 나라의 중책을 맡을 인물을 고를 때 ‘관인팔법(觀人八法)’에 합당한가, 아닌 가를 놓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관인팔법이란 인물을 고르는 여덟 가지 기준으로 오늘날의 관상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첫째가 위(威)입니다. 권력과 명성에 어울릴 만큼 위엄이 있느냐는 것인데 그것은 은연중에 사람을 누르는 힘, 말하자면 카리스마입니다. 둘째는 후(厚)입니다. 도량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입니다. 좀스럽고 옹졸하기만 해 너그럽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청(淸)입니다. 깨끗한 정신의 소유자여야 합니다. 그래야 사심 없는 정치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오피니언
김영회 고문
2005.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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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한해의 마지막 밤을 하얗게 새우고 검은 빌로드가 펼쳐진듯한 밤하늘을 바라본다. 세월이 빠르다는 말은 인생이 유한하여서만은 아닐것이다. 삶의 중반을 훌쩍 넘어선 지금까지 활활 타오르지 못하고 하루하루 젖은 솔잎 태우듯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매사에 자신없어하는 나약함과 지난날 소망했던 것들에 대한 집착으로 무의미한 삶을 살아온 회환과 새로 싹트기 시작하는 작은 희망속에서 한밤중 제야의 종이 울리는 시각에다 금을 그어놓았다. 그리고 그 안쪽과 바깥쪽에다 무수한 의미를 부여하며 생각했다. 가슴 가득 차있는 욕망과 애증 . 비움으로 찾아드는 평온함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었던 그들과 이별준비를 하고 종소리를 들으며 가슴속에 깊게 갈아앉아 있던 그들을 떠나 보냈다. 언제까지 닿
오피니언
정명숙
2005.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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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화의 일반적 전파 루트는 북방에서 남방으로, 대륙에서 반도로, 섬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을 타는 ‘기마 민족 일본열도 정복설’도 그렇고 백제문화가 일본문화의 뿌리가 된 점도 그렇다.그러나 문화는 간간이 일방통행을 거부한다. 신석기 유럽 농경문화의 예를 들면 페르시아에서 지중해 발칸반도를 거쳐 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의 문명은 ‘뭍에서 바다로’가 아니라 ‘바다에서 뭍으로’라는 반대 현상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지중해의 그리스, 로마 문명은 오늘날 유럽 문명의 모태가 되고 있다.우리나라의 신석기 문화는 해안선이나 강을 따라 남진한다. 해안선이나 큰 강가에 빗살무늬토기가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것은 바로 이들이 살다 간 흔적이다.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를 한 신석기인 들도 산
오피니언
임병무 고문
2005.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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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한 가장 고전적인 정의(定義)를 내린 사람은 공자입니다. 공자는 정치의 요체는 바로 ‘올바름’이라고 설파했습니다. 어느 날 노(魯)나라의 대부인 계강자(季康子)가 “정치는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공자는 ‘정자정야(政者正也)라고 간단히 대답합니다. 공자는 정치(政治)는 정치(正治)이지 정치(征治)나 정치(情治)가 아니라는 말로 정치의 요체는 올바름(正)에 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를 더 설명하자면 정치의 근본은 올바름에 있지, 권모(權謀)나 술수(術數), 당리당략(黨利黨略)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에도 정치 권력을 비뚤어지게 행사하는 제왕 군주들이 많았기에 공자의 입을 빌어 교훈으로 삼지 않았나 싶습니다.오늘 2천여 년의 시공을 넘어 새삼 정치의 요체를 상기하는 까닭은
오피니언
김영회 고문
2005.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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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군이 청주 청원통합을 주장하는 학자들을 어용교수로 내몰았다. 이들이 청주시의 사주를 받아 통합 쪽으로 여론을 호도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전제가 청주시로부터 용역을 받는 교수에 국한되지만 통합론자들에 대한 청원군의 반감은 듣기에 살벌하기까지 하다. 어용교수라는 말이 언제부터 나왔는지 자세히 알지 못해도 과거 이승만 독재를 예찬하고 협력한 교수들에게 어용의 딱지가 붙었었고, 5·16과 12·12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와 전두환에게 전략적(?)으로 영입된 교수들도 어용으로 불렸다. 어용교수를 나름의 미천한 식견으로 정리한다면 일제시대 일본에 빌붙은 친일학자, 권위·독재권력에 용비어천가
오피니언
한덕현 기자
2005.01.0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