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조사(祖師)들의 깨우침과 가르침을 모아 놓은 ‘傳燈錄(전등록)’에는 1701명에 달하는 선사(禪師)들의 입적(入寂)과정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책을 보면 그들 선사들은 대부분 임종에 이르러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견하고 마치 먼 곳에 여행을 떠나듯이 홀연히 열반과(涅槃), 적멸(寂滅)에 들고 있어 숙연케 합니다.

스님들은 마지막 떠날 때 대부분 눕거나 앉아서 숨을 거두지만 서서 눈을 감은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뜰 앞을 거닐다 문득 “오늘 가야겠구나” 독백을 하고 몇 발짝을 옮기다가 선 채로 입적한 이가 있는가 하면 거꾸로 물구나무를 선 채 죽음을 맞은 이도 있습니다.

스님들 중 어떤 이는 “나고 죽음이 없는 세계로 가니 참으로 즐겁다”고 깨침의 열반송을 한 이가 있고 스승에게서 관을 선물 받고는 덩실덩실 춤을 춘 선사, 스스로 장작더미 위에 올라가 소신공양(燒身供養)한 선사, “극락이 보이지만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고 선언한 선사도 있습니다.

중국의 혜안국사는 임종에 이르러 모든 소장품을 제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내가 죽거든 시신을 숲 속에 놓아 들불에 타도록 하라” 유촉(遺囑)하였고 청활스님은 문도(門徒)들을 불러 “내 시신을 벌레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탑이나 부도를 만들지 말라”며 반석 위에서 앉은 채로 열반에 듭니다.

또 조선조 고한희언선사는 “공연히 이 세상에 와서 지옥의 찌꺼기만 남기고 가니 내 살과 뼈는 저 숲 속에 버려 산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하라”고 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바(娑婆)의 대중들에게 죽음이란 삶의 끝이요, 이승과의 이별이지만 수행 득도한 선사들에게 죽음은 헌옷을 벗고 근원으로 돌아가는 기쁨인 것입니다. 치열한 구도 속에 일생을 산 스님들은 헌 옷을 벗어 던지듯 육신을 버리고 자성(自性)의 근원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세속에 때묻은 중생이 큰스님들을 마음속으로 경외(敬畏)해 마지않는 것은 바로 그 분들의 삶에 대한 외경심(畏敬心) 때문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근년에 와 우리 사회의 장례문화는 인식이 많이 달라져 화장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고는 있지만 아직도 매장을 고집하는 유교의 전통적인 관념에는 큰 변화가 없는 듯 합니다. 좁은 국토에 해마다 무덤이 늘어만 가는 현상은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언젠가는 이 나라가 묘지로 뒤덮일 날이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겠습니다.

청주시가 최근 조사한 청주시내의 묘지 총 면적은 66만여㎡로 20만평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는 청주시 전체 면적의 2천 분의1로 축구장 19개를 만들 수 있는 면적이라 하니 묘지문제가 이미 발등의 불이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다행히 청주시가 늘어만 가는 묘지 실태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화장(火葬)을 통해 장례문화를 개선키로 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조처라고 하겠습니다.

때마침 지역의 지도층 인사들간에도 화장을 긍정시하는 인식의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을 감안 할 때 청주시의 장례문화 개선캠페인은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전통을 이어 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좋은 전통과 문화도 현실에 맞지 않을 때 개선을 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 않음을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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