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증거 USB에 담긴 북 지령·보고문…그 자체론 증거 못돼

2017년 서울고법, 목사간첩단 사건 “북 공작원에 전달했다는 직접 증거 있어야 효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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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간첩단’이라 불리며 세상을 떠들썩 하게 했던 일명 ‘자주통일충북동지회 사건’. 이들이 구속된지 40일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언론의 관심도 이제는 조용해졌다. 수사를 통해 진전된 사항도 없다. 유일하게 구속을 면한 피의자에게 다시 영장을 청구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혈서를 쓰고 북의 지령을 받아 국가기밀을 건넸다던 무시무시한 간첩 사건 치곤 너무 쉽게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간첩이라고 하기엔 이들의 활동이 너무 어설퍼서 일까?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이들은 국가보안법 제4조 ‘목적수행’죄에 해당하는 간첩일까? 간첩죄가 적용될 수 있을까?

간첩죄가 적용이 되지 않으면 간첩이 아니다. 간첩단 사건도 아니다. 그러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

현재 간첩단 혐의를 받고 있는 4인과 그의 변호인은 ‘간첩죄’에 대해선 무죄를 자신한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수사중인 사안이라 말 할 것이 없다. 우리는 오로지 증거로 말할 뿐이다. 수사결과를 보면 알 것”이라고 말했다.

본보는 현재 수사중인 동지회 사건에 대해 쟁점과 의문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주)

 

일란성쌍둥이 사건 있었다.  2016년 A목사간첩사건

지난 2017년 6월 13일 서울고법제12형사부는 이른 바 ‘목사간첩사건’으로 피소된 A목사에 대한 항소심(사건번호:2017노23)에서 국가보안법 상 통신연락 및 편의제공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반면 국가보안법상 금품수수와 자진지원, 찬양고무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A목사 사건은 여러모로 자주통일충북동지회(이하 동지회) 사건과 겹친다. 겹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유사하다.

우선 두 사건 모두 북한의 대남공작기관인 225국(현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 ‘리광진’이 등장한다.

A 목사 판결문과 동지회간첩사건 피의자 구속영장청구서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리광진과 해외에서 접촉해 포섭됐다.

스테가노그래피란 암호화 프로그램을 통해 지령과 보고문을 주고 받은 것도 동일했다. 북으로부터 금품을 주고받은 사실도 동일했다. 금액도 엇비슷하다.

이 정도면 일란성은 아니어도 이란성 쌍둥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동지회, 간첩단이 될 수 있을까? 기준은 국가보안법 4조 목적수행

간첩혐의를 받고 있는 자주통일충북동지회 구성원 1인시위 장면
간첩혐의를 받고 있는 자주통일충북동지회 구성원 1인시위 장면

북의 지령을 받고 스텔스전투기 F-35A 도입반대 운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사건.

지난 8월 2일 영장실질심사에서 3명은 구속되고 1명은 불구속됐다. 언론은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청주 간첩단’ 사건이라 지칭했다.

간첩이라고 규정하려면 ‘간첩죄’라 부르는 ‘국가보안법 4조 목적수행’죄가 적용돼야 한다.

국가보안법 4조의 목적수행 혐의는 반국가 단체의 지령을 받은 사람이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활동을 수행할 때 적용된다.

동지회 사건을 수사중인 국정원과 경찰청국가수사본부는 구성원 4인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국가보안법 4조를 적시했다.

구속영장청구서에 따르면 동지회 구성원들은 중국과 캄보디아 등 해외에서 북한의 대남공작기관인 문화교류국 소속 리광진등 3인을 만나 지하당을 만들라는 지령을 받았다.

동지회 구성원들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USB 저장장치에서 스테가노그라피란 프로그램을 통해 암호화한 파일로 저장된 지령문과 보고문등을 확보했다며 증거로 제시했다.

국정원과 국가수사본부는 이를 바탕으로 동지회 구성원의 혐의에 대해 대해 국가보안법 4조를 적용했다.

 

쟁점 1. USB에 저장된 지령문과 보고문은 증거가 될 수 있을까?

국정원과 국가수사본부는 동지회 구성원들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이들이 북과 주고받은 지령문과 보고문이 들어있는 USB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국정원과 국가수사본부는 동지회 구성원들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이들이 북과 주고받은 지령문과 보고문이 들어있는 USB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국정원과 국가수사본부는 구속영장청구서에 동지회가 북과 주고 받았다는 지령문과 보고문은 상세하게 적시했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방법으로 북의 누구와 지령문을 주고 받았는지에 대해선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국정원과 국가수사본부는 대부분 ‘불상의 장소에서 성명을 알 수 없는 자로부터’라거나 ‘불상의 장소에서 성명을 알 수 없는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에게’ 등의 표현을 썼다. 어떤 방법으로 주고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제시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동지회 구성원들은 국정원이 날조한 조작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을 변호하고 있는 변호사 B씨는 “USB가 동지회 것이라는 증거가 먼저 제시돼야 한다”며 “이들(동지회)은 자기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압수수색 당시 수십명이 참여했는데 이들이 놓고 간 것인지 누가 아냐?’라고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보고문과 지령문을 어떤 방식으로 주고받았는지, 주고 받았다면 상대방이 북한 공작원인지 증거로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USB 안에 저장된 지령문과 보고문만 있는 상황.

쌍둥이 서건인 A목사 국보법 위반 사건에서 법원은 어떻게 판결했을까?

A목사 사건 재판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먼저 판결문에서 “통신연락으로 인한 국가보안법위반의 죄가 성립하려면 피고인이 북한 225국 소속 공작원과 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해 위 이광진 등 공작원에게 파일을 전달했다는 점이 입증되어야 할 것”이라고 전제했다.

검찰은 A목사의 신체와 자택 등에서 압수한 SD카드를 증거로 제시했다.

SD카드에는 A 목사가 북한 공작원과 주고받았다는 지령문과 보고문 파일이 담겨 있었다.

이 파일은 동지회 사건과 마찬가지로 스테가노그라피라는 암호화 프로그램으로 제작 생성됐다.

또 A목사의 중국 이메일 계정에서 취득한 파일과 중국포털사이트에 올린 게시물을 증거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먼저 SD카드에 저장된 지령문과 보고문에 대해서는 “(이것 만으로) 북한 공작원에게 전달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A목사의 중국계 이메일에서 나온 파일에 대해서는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 위법한 증거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먼저 “대상물이 해외에 존재해 대한민국의 사법관할권이 미치지 않는 해외 이메일 서비스 제공자의 해외 서버에 소재하는 디지털정보에 대해 압수수색 검증 영장의 효력이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사법관할권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 대하여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한 것이므로 다른 사정이 없는 한 피고인의 이메일 계정에 대한 압수 수색은 위법하다고 보아야 한다”며 “이런 방식으로 취득된 이메일 내용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위 방식이 설사 적법하다고 하더라도 위 이메일 계정이 북한 225국 소속 공작원과 공동으로 사용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USB에 들어 있는 보고문만으로 위 메일 계정이 북한 공작원과 공동으로 사용했다는 점을 인정하기는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판결했다.

A목사 판결에 따르면 현재 상태에선 동지회 구성원들의 압수수색을 통해 국정원이 확보했다는 USB에 저장된 지령문과 보고문 자체는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A목사 사건 판결에 따르면 국정원과 국가수사본부는 앞으로 USB외에 동지회 구성원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보고문과 지령문을 주고받았는지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

동지회 변론을 맡고 있는 B변호사에 따르면 현재 국정원과 국가수사본부는 동지회 성원들이 사용한 해외 이메일 회사의 계정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해외 이메일서비스 회사의 계정에서 나온 자료가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던 만큼 국정원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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