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공작원 실체, 남파간첩 김동식 입 말고 추가증거 있을까?
A목사 사건 공작원 리광진 증거, 부여간첩단 김동식 증언이 유일
김동식 행적 의문…생포당시 우리경찰 2명 사살했지만 기소조차 안돼
이후 국정원 산하기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
1995년 김동식 말 한마디에 이인영·우상호 등 줄줄이 체포돼 곤혹
과거 ’김동식·안기부 커넥션‘ 의혹까지 제기돼

묶음기사

<자주통일충북동지회 사건 기획보도>

① USB에 저장된 지령문과 보고문은 증거가 될 수 있을까?

② 공작원, 리광진 실체…1995년 부여간첩단 김동식의 입이 유일한 증거?

③ 공작금 2만달러…국정원이 알았는데, 공항검색대 무사통과?

④ 변호인 주장 “이렇게 어설픈 공작원도 있나?”

청주 간첩단’이라 불리며 세상을 떠들썩 하게 했던 일명 ‘자주통일충북동지회 사건’. 이들이 구속된지 40일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언론의 관심도 이제는 조용해졌다. 수사를 통해 진전된 사항도 없다. 유일하게 구속을 면한 피의자에게 다시 영장을 청구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혈서를 쓰고 북의 지령을 받아 국가기밀을 건넸다던 무시무시한 간첩 사건 치곤 너무 쉽게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간첩이라고 하기엔 이들의 활동이 너무 어설퍼서 일까?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이들은 국가보안법 제4조 ‘목적수행’죄에 해당하는 간첩일까? 간첩죄가 적용될 수 있을까?

간첩죄가 적용이 되지 않으면 간첩이 아니다. 간첩단 사건도 아니다. 그러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

현재 간첩단 혐의를 받고 있는 4인과 그의 변호인은 ‘간첩죄’에 대해선 무죄를 자신한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수사중인 사안이라 말 할 것이 없다. 우리는 오로지 증거로 말할 뿐이다. 수사결과를 보면 알 것”이라고 말했다.

본보는 현재 수사중인 동지회 사건에 대해 쟁점과 의문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주)

1995년 부여간첩단 사건으로 생포된 남파간첩 김동식의 기자회견 장면. A목사 사건과 청주 스텔스기 반대운동 간첩단 혐의 사건에서 김동식의 입이 북한 공작원 리광진의 실체를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95년 부여간첩단 사건으로 생포된 남파간첩 김동식의 기자회견 장면. A목사 사건과 청주 스텔스기 반대운동 간첩단 혐의 사건에서 김동식의 입이 북한 공작원 리광진의 실체를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 리광진(여권명 : 김동진, 1960,9.21생. 여권번호 : 836220504)은 1990년대 모자(母子)공작조·부부(夫婦)공작조로 수차 국내 침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웅칭호’를 받은 인물로, 미상시기 부과장을 거쳐 과장 이상 직급으로 승진하였다.”(동지회 구속영장청구서)

“2017.5.21. 피의자 박○○이 중국 북경에서 조○○(1969.4.9.생. 여권번호 : 92×××××××)이라는 북한 여권명을 사용하는 ‘문화교류국’ 공작원과 접선할 당시 사전 정찰 임무를 수행하였고, 2018.4.28.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피의자 ***을 만나 검열하였다.” (동지회 구속영장청구서)

국정원과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리광진은 영웅칭호를 받은 고위공작원이다. 동지회 관계자를 만나 지하당인 ‘동지회’를 만들도록 포섭한 공작조의 우두머리다.

국정원과 국가수사본부가 구속영장에 적시한 리광진이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이 사실이라면 동지회에 대해 국가보안법4조 목적수행죄가 적용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두 가지 사실이 먼저 전제돼야 한다. 먼저 리광진이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이라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두 번째는 동지회 구성원들이 중국과 캄보디아에서 만났다는 사진속의 인물이 리광진이라는 것이 입증돼야 한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한 의문은 2017년 A목사 사건에 대한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판결문을 통해 찾을 수 있다.

 

재판부 “리광진의 여권사진은 증거능력 없다”

 

​당시 서울고법 재판부는 리광진의 실체를 인정했다. 그렇다면 리광진의 실체를 입증하는 증거는 무엇일까?

검찰은 증거물로 리광진의 여권사진(복사본)과 1995년 부여간첩단 사건 당시 남파간첩으로 활동한 김동식의 증언을 제출했다.

재판부는 리광진의 여권사진은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국정원 수사관은 재판에서 여권사본 입수경위에 대해 “피고(A목사)의 북한 상부선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리광진의 존재를 파악했다. 그러던 차에 2014년 7월 경 자카르타 공항에 이광진이 출현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이광진의 여권사진을 해외협조망을 통해 입수하게 됐다”고 증언했다. 이어 “출처와 경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정책적인 부분도 있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여권사본을 어떤 절차를 거쳐서 취득했는지 불분명하고 그 원본의 존재 및 원본과의 동일성도 인정하기 어려우며 이를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며 증거를 채택하지 않았다.

 

“남파간첩 김동식의 증언 신빙성 있다” 증거채택

A 목사 측, “증거는 김동식 증언뿐, 국정원산하기관에 속한 사람 말 못믿어”

재판부 “국정원 산하기관 직원 이유만으로 허위진술했다고 보기 어려워”

 

검찰과 국정원은 두 번째 증거로 1995년 부여간첩단 사건 당시 생포된 남파간첩 김동식의 진술과 A목사와 리광진이 회동하는 장면이라며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증거로 제시했다.

A 목사와 변호인은 “피고인이 만난 사람을 북한 공작원 리광진이라고 지목한 김동식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나섰다.

이들은 “피고인이 2012년 5월 31일 만난 사람이 북한 공작원이라는 것에 대해는 남파간첩 김동식의 증언뿐”이라며 “김동식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국정원 산하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자로 국정원이 원하는 증언을 할 수 밖에 없어 객성성 있는 3자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1995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남파간첩 김동식이 소지한 독약앰플 사진(출처 : 대전MBC유튜브 채널 캡처)
1995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남파간첩 김동식이 소지한 독약앰플 사진(출처 : 대전MBC유튜브 채널 캡처)

 

이어 “김동식이 리광진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증언 시점으로 약 21년 전 일인데 사진만으로 위 사람들을 알아보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먼저 “2012년 5월 31일 경 베트남 호치민 채증 동양상 및 사진의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김동식의 진술은 리광진 등을 알게 된 경위와 경력 등에 대한 진술인데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일관성이 있다”며 “국정원 산하기관 직원이란 이유만으로 허위 진술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유일한 증거, 리광진 진술은?

 

A목사에 대한 1심과 2심 판결문에 기재된 부여간첩단 남파간첩 김동식의 진술은 요약하면 이렇다.

김동식은 남파공작원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된 이후 현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공작원 리광진 지도원은 한국에 두 번에 걸쳐 침투해 지하당을 구축해서 간첩을 포섭해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두 번 받은 사람이다.

리광진 지도원은 체제의 보안을 요하는 공작부서의 간부이기 때문에 일반인이나 무슨 사업 목적으로 만날 일은 전혀 없다.

김동식은 리광진에 대해 1995년 남파 당시 자신을 지도했던 요원이어서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남파간첩 김동식은 어떤 사람?

1995년 발생한 부여간첩단 사건 당시 생포

생포 당시 우리 경찰관 2명 사살하고도 처벌은커녕 기소 조차 안돼

김동식 말 한마디에 이인영·우상호·허인회·함운경 긴급체포·구속

 

A목사 사건에서 북한 공작원 리광진의 실체를 인정하는 유일한 증거가 된 김동식은 어떤 인물일까?

1995년 10월 24일 오후 2시경 충남 부여 정각사에 간첩 2명이 출현했다는 안기부 직원의 다급한 전화가 부여경찰서에 걸려왔다.

남파간첩 김동식과 박광남이 정각사에 머물던 고정간첩 일명 ‘봉화1호’를 북으로 데려갈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해 수개월째 현장에 매복했던 국정원(당시 안기부)과 대공요원의 다급한 전화였다.

부여경찰서 112타격대가 급히 현장에 출동했다. 정각사 인근 소류지 앞에서 길목을 차단 중 정각사 방향 오솔길에서 내려오는 간첩 김동식, 박광남과 조우했다.

총격적인 벌어졌다. 무장간첩 중 1명인 김동식은 다리에 총상을 입어 현장에서 검거됐다.

박광남은 길 건너 야산으로 도주해 3일 후인 10월 27일 11시경 부여군 가평마을 인근에서 추가로 투입된 군에 의해 사살됐다.

1995년 부여간첩단 김동식이 소지한 권총. 1995년 12월 8일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은 수사결과 발표 기자회견당시 김동식 일당이 소지했던 장비도 함께 공개했다. (사진출처 : 대전MBC유튜브 채널 화면 캡처)
1995년 부여간첩단 김동식이 소지한 권총. 1995년 12월 8일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은 수사결과 발표 기자회견당시 김동식 일당이 소지했던 장비도 함께 공개했다. (사진출처 : 대전MBC유튜브 채널 화면 캡처)

 

이 과정에서 장진희 순경은 교전 중 김동식이 쏜 실탄에 가슴을 관통하여 현장에서 순직했다. 나성주 순경 역시 김동식이 쏜 실탄에 얼굴의 이마부위를 맞고 1주일간 치료 중 순직했다.

당시 권영해 국가안전기획부장은 부여에서 붙잡힌 무장간첩을 조사한 결과 독침과 소음권총등을 휴대한 점으로 미뤄 내년 총선시기 등을 틈타 요인암살 등 테러임무를 띠고 남파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관 2명을 죽게하고 요인암살 등 테러임무를 띠고 남파된 김동식이였지만 그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김동식을 수사한 당시 안기부는 기소유예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98년 12월30일 서울지검 공안1부에서 공소보류 처분을 받아 사법처리가 종료됐다.

사실상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은 김동식은 2008년 현 국정원 산하기관에 연구위원으로 취업했다.

‘안기부·김동식 커넥션 의혹’ 공안사건으로 확대된 김동식의 입

1995년 10월 24일 검거된 김동식과 박광남의 부여간첩 사건은 파장은 매우컸다. 총기교전까지 발생하면서 국민들을 큰 충격에 빠트렸다.

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공안당국은 김동식 체포 열흘 만에 젊은 재야인사를 줄줄이 연행했다. 이인영 현 통일부장관, 우상호 국회의원, 김태년 국회의원이 연행됐다. 허인회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당무위원, 함운경 전 삼민투위원장, 박충렬 전국연합 사무차장이 줄줄이 연행됐다.

이인영·우상호·허인회·함운경의 연행사유는 국가보안법상 간첩을 만나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불고지죄였다.

당시 안기부는 김동식의 수첩에서 이들을 접촉한 사실이 메모 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건 관련자들은 “‘김동식이 간첩이라는 사실을 몰랐으며 간첩행위를 하지않았다’고 일관되게 부인했다. 허인회씨의 경우 아예 김동식을 만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안기부와 공안당국은 ”김동식의 진술을 그대로 혐의 사실로 인정했다”며 이들을 연행했다.

김동식을 만난 혐의를 받았던 인사들의 진술도 흥미롭다.

이인영 현 통일부장관은 당시 진행된 구속적부심 재판에서 “나는 지금 검찰이 이야기하는 김동식이라는 사진에서 본 안경도 안 쓰고 츄리닝을 입고 있는 남자를 본 사실이 없다”며 “내가 본 사람은 임 모라고 하는 안경을 쓰고 양복을 입은 사람을 본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그가 분명히 과대망상증 환자거나 공안기구의 공작원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나에게 역공작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였기에 신고하지 않았다“며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 그가 이제 막 정신병원에서 나온 사람이 건, 아니면 막 들어갈 사람이 건, 또는 정보요원이 건, 경찰이 건, 미친 놈이 건, 실성한 놈이 건 북한의 ’북‘ 자, 간첩의 ’간‘자만 나와도 무조건 신고할 것이다”고 진술했다.

허인회씨의 경우 김동식이라는 자를 만난 사실 자체가 없다고 부인했다.

함운경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김동식이 찾아와 만난 적은 있지만, 그가 북한에서 왔다고 하는 말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했다.

당시 이들과 함께 활동 했던 한 인사는 “간첩인 줄도 모르고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구속돼 곤욕을 치렀다. 당시 총격전을 벌이다 경찰관을 숨지게 한 무장간첩을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김동식과 안기부 사이에 커넥션이 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고 말했다.

 

<1995년 부여간첩단 사건 일지>

○ 4월 국정원 충남 부여지역에 고정간첩이 활동하고 있다는 첩보 접수 / 매복활동

○ 9월 2일 김동식·박광남 어선 타고 제주해안으로 침투

○ 10월 24일 부여 정각사에 나타난 김동식과 박광남 불심검문 총격전 발생, 당시 안기부와 경찰 대공요원 10여명이 잠복 감시

○ 10월 27일 박광남 총격전 끝 검거, 사망

○ 11월 5일 이인영, 우상호, 함운경 서울경찰청 소속 장안동 대공분실로 연행

○ 11월 8일 새정치국민회의 당무위원 허인회 긴급구속(불고지죄)

○ 11월 9일 서울형사지법 320호법정, 함운경,이인영, 우상호 구속적부심 재판

○ 11월 9일 국회정보위원회 권영해 안기부장 국회정보위 비공개간담회 출석, 사건중간수사결과 보고

○ 11월 15일 전국연합사무차장 박충렬 서초경찰서로 연행

○ 11월 15일 성남미래준비위원회 김태년 대표 구속적부심, 허인회 구속적부심

○ 11월 17일 서울형사지법 박충렬 구속적부심 재판

○ 12월 8일, 국가안전기획부 내곡동 신청사에서 부여간첩 김동식을 공개, 김동식의 기자회견, 공중파 3사 생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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