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청주경실련 성희롱 사건 ④] 성급하게 마침표 찍고 싶지 않아 문제 제기 

‘피해자 지우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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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청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충북청주경실련) 성희롱 사건 피해자들이 6일(월)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할 시민사회단체 내에서도 여성 활동가들이 위계에 의한 폭력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과 자신들이 받아야 했던 부당 대우들을 공론화하기 위한 글 2편을 공개했습니다. <충북인뉴스>는 진실을 알리는 데 전문 공개가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피해자 대리인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전합니다. - 편집자 주 

  • 전문 1 

피해자 A 씨 "진실이 흐려지지 않도록 초점을 맞춰 달라"

 

사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을 때도, 우리를 지켜주리라 생각했던 사람들로부터 폭언을 들었을 때도 이렇게 괴롭지는 않았는데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본인의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선택을 기다리며 사과하는 것이 그리도 힘든 일이었을까요?

집중을 해야 하는 조용한 순간이 찾아오면 내가 당했던 일들이 불쑥 생각납니다. 친목 도모를 가장한 성희롱과 거절할 수 없었던 강제적인 추행, 법대로 하라던 고함, 이게 다 너를 위한 것이니 가만히 있으라던 말들. 존경하던 사람이, 언제까지고 함께 소속되고 싶었던 조직이 거대한 가해자가 되어 나를 압박한다는 사실에 저는 이렇게 짧은 글을 쓰는 것조차도 힘에 부칩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을 성급하게 마침표 찍지 않은 것은 이것이 비단 경실련만의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많은 활동가들이 나도 너와 같은 사건을 겪었고, 혹은 지금도 겪고 있다고 얘기해주었습니다. 아마도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부당함을 겪었으나 ‘좋은 일을 한다는 명분이 만들어낸 폐쇄적 분위기’가 피해 사실을 말하기 더 어렵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저는 이런 구조를 어떻게 타파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낸 용기에 많은 분들이 화답해주신 만큼 열심히 버텨보겠습니다.

논점이 아닌 것들에 무게가 실리지 않도록, 진실이 흐려지지 않도록 함께 초점을 맞춰주세요. 감사합니다.

6일(화) 열린 충북청주경실련 피해자 지지 모임의 기자회견 모습 ⓒ 김다솜 기자
6일(화) 열린 충북청주경실련 피해자 지지 모임의 기자회견 모습 ⓒ 김다솜 기자

 

  • 전문 2

피해자 B 씨 "이 사건으로부터 최종적으로 생존하고 싶었다"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사회 운동이 유행이 아닌 시대이지만 꼭 있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일을 제가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활동'을 업으로 삼았습니다. 미약한 목소리들이 모여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순간들이 보람 있었습니다.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이 귀했습니다. 힘들고 답답한 순간조차 의미 있었습니다. 어쩌다 저는 이 글을 쓰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요. 너무나 슬픕니다.

일은 행복했지만 한편, 경실련이라는 오래된 조직이 가지고 있는 위계적, 낮은 성인지 감수성, 성차별적 문화는 괴로웠습니다. 특히 지난 5월 있었던 성희롱이 있던 날, 저는 더 이상 이 곳에 있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만큼 힘들었습니다. 불쾌한 성적 언동을 들어야 했고, 원치 않는 포옹을 다수와 나누어야 했습니다. 이에 대해 그 자리에서 거절할 수 없다는 제 위치를 인지했습니다. 괴로웠습니다. 일을 그만두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용기 냈습니다. 더 이상 이 곳에 있지 못하겠다는 마음을 보류하고 꾹꾹 눌러왔던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처음 문제 제기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입 닫고 관두기엔 제게 이 곳은 소중했습니다. 저의 발화로 충북·청주경실련이라는 조직이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할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아니, 사실 무엇보다 가장 원했던 건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저는 저의 '활동'이라는 일터가 제게 안전한 장소가 되길 바랐습니다. 그렇게 저는 '성희롱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충북청주경실련 성희롱 피해자 지지 모임 정미진 씨가 피해자를 대리해 기자회견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 김다솜 기자
충북청주경실련 성희롱 피해자 지지 모임 정미진 씨가 피해자를 대리해 기자회견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 김다솜 기자

하지만 피해는 멈추지 않고 계속 커질 뿐이었습니다. 저는 사건 초반, 제가 이 사건을 문제 제기한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바로 가해자에게 알려졌습니다. 제가 없는 공식 석상을 통해 가해자로부터 원치 않는 사과를 받아야 했고 합의를 종용받았습니다. 사과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희롱을 가해자의 성인지 부족으로 인한 잘못이 아닌 세대 간 인식 차이로 치부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거절하자 한 책임직 임원은 사과를 받지 않는 피해자의 탓이라며 "못 봐주겠다", "법대로 하라"며 위협적으로 폭언을 가했습니다. 이후에도 다수의 가해자들이 성희롱 현장의 상황을 sns에 멋대로 유포하였습니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폭력적 상황에 정신 차릴 수 없었습니다. 이는 모두 여성가족부에서 배포한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사건 처리 매뉴얼>에 명시되어있는 '2차 가해'에 해당하는 일들이었습니다.

비밀유지·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 등 피해자로서 요청한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저는 계속해서 이 문제를 조직 차원에서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활동'이라는 일터에 돌아올 수 있다면…….  작은 가능성이 있다면 그 희망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진상조사위원회를 충북·청주경실련 집행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구성할 것을 요청하였고, 조사가 진행됐습니다.

이 역시 쉽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여전히 2차 가해를 한 주요 임원은 그 자리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해결하려 노력했던 사무처장의 징계위원회가 열렸습니다. 피해자 보호조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다렸습니다.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권고안이 나오면 제대로 된 사건 해결을 위한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중앙)경실련이 개입하면서 이는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중앙)경실련 조직위원회가 조직 점검을 하겠다며 실사를 왔습니다. 이는 피해자가 아닌 집행위원회의 요청이었습니다. 저는 실사 자리에서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기다려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 김다솜 기자
ⓒ 김다솜 기자

하지만 실사 이틀 뒤, (중앙)경실련 상임집행위원회에서는 피해자를 비롯한 모든 충북·청주경실련의 활동가, 임원의 직무를 정지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라는 일방적인 공문이 발송되었습니다. 아직 진상조사위원회의 결과보고서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피해자의 의사와는 무관한 결정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직장내 괴롭힘법>·<남녀고용평등법>은 성희롱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에게 신분 상실에 해당하는 불이익 조치 역시 2차 가해로 규정하며 금지하고 있습니다.

공문이 나온 날부터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제가 공개하지 않은 피해 사실이 함부로 공개되었습니다. 허위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무실 앞으로 많은 기자들이 찾아왔습니다. 개인 핸드폰으로 수없이 많은 전화가 왔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이 사건을 공개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내가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유로 나의 성희롱 피해가 언론에 보도되는 것이 당연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경실련은 피해자인 저를 보호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경실련과 비상대책위원회는 피해자의 손발을 모두 묶어 놓은 채 언론으로부터 생기는 피해를 방치하였습니다. 오히려 비상대책위원회는 피해자와 협의 없이 언론과 인터뷰하였습니다. 

 피해자들은 공문 이후 경실련과 비상대책위원회에 두 차례의 입장문과, 세 차례의 공문을 발송하였습니다. 입장문을 통해 피해자와 논의 없는 일방적 개입을 중단하고, 언론에 왜곡되어 보도된 부분에 대해 공식적으로 해명하며, 피해자 보호 대책을 마련할 것 등을 요청했습니다. 공문을 통해서는 진상조사위원회의 결과보고서와 비상대책위원회의 진행상황 공유를 요청하였습니다. 공식적인 답변은 일체 없었습니다.

단 한 차례, 비상대책위원회 일부 위원과 면담하였으나, 요청사항에 대한 조치는 없었습니다. 사무실 출입을 금하라는 강력한 요구를 받았을 뿐입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조직 갈등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모든 과정에서 피해자를 배제하였습니다. 저는 비상대책위원회의 무응답에 마치 피해자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니, 오히려 제가 조직을 해치는 가해자가 된 듯합니다. 제가 이 조직에 소속된 '활동가'라는 이유로, 경실련의 '피해자 지우기'라는 잘못된 행동에 입 닫고 기다려야 하는 건가요? 

어느 순간, 경실련이 사건을 해결하겠다며 한 모든 과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안전하게 '활동'이라는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 하나로 조직 내 절차를 통한 해결을 기다렸지만 그 어디서도 제대로 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그 어떤 피해자의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업무 특성상 쉽게 언론에 노출되었지만 아무도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은 피해자에 대한 존중과 제대로 된 해결이 아닌 '무시'와 '배제'로 돌아왔습니다. 경실련에게 피해자는 없고, 말 안 듣는 직원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분노했습니다. 좌절을 느꼈습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슬펐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외치던 '정의'가 무엇을 말했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경실련이 끊임없이 잘못된 선택을 하여도 저는 최선을 다해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사건이 다시 반복되어 또다시 누군가가 이러한 고통을 받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 용기를 내기로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생긴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하기로 하였습니다.

대리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피해자의 글을 올려 <충북청주경실련 직장 내 성희롱 사건 및 위계에 의한 2차 가해와 언어폭력 사건>과 <경실련에 의한 부당 처분>을 해결하기 위해 피해자 지지모임을 모집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일어난 피해를 드러내기로 하였습니다. 이것이 경실련에게, 시민단체에게 자정의 기회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 김다솜 기자
ⓒ 김다솜 기자

피해자의 글을 올리고 며칠 뒤, 드디어 비상대책위원회로부터 공식적인 첫 답변이 왔습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피해자들에게 여전히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진정인의 진상조사위원회 결과보고서는 피해자에게 통지할 수 없고, 결과가 나오면 이행할 것이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을 통한 사무처 실무자는 임금은 지급하되 활동은 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피해자의 업무 정지는 부당한 처분이 아니고, 진정인들에게 활동가로서 조직의 내규 등에 규정하고 있는 내용을 따를 것을 요청한다'는 것이 그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그토록 기다렸던 첫 번째 공식 답변을 통해 비상대책위원회에게는 '진정인'만 있을 뿐 '피해자'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편 비상대책위원회의 답변 이틀 전, 저에게 폭언으로 2차 가해를 했던 임원이 진상조사위원회 결과보고서에 대한 반론서를 sns에 공유한 바 있었습니다.

2차 가해자의 자술서와 반론서 공유를 통한 또 다른 가해는 차치하고서라도, 피해자들이 그렇게나 요청했던 진상조사위원회 결과보고서가 가해자에게만 무려 한 달 전에 공유가 되었다는 사실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성가족부의 <직장내 성희롱 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에는 '성희롱 고충사건조사 진행사항을 피해자에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지난한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되뇌인 문구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미투 피해자들에게 보내온 메시지입니다. '당신 탓이 아닙니다.' 이 문구는 저를 살렸습니다. 죽고 싶을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닙니다. 저는 한없이 도덕적인 조직을 죽이기 위해 나온 가해자라거나 악당이 아닙니다. 지난 불만을 해결하겠다고 성희롱이라는 프레임을 끌고 온 음모의 주인공도 아닙니다. 단지 저를 살려 달라고 외친 한 피해자일 뿐입니다. 안전한 일터를 바란 그저 평범한 활동가일 뿐입니다. 

사건 초반, 한 친구에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 친구는 제게 말했습니다. "모든 활동가가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운동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야." ……다 내려놓고 그만두고 싶을 때가 수없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선택을 할 수 없었습니다. 피해자의 생존은 우리 조직과 우리 사회를 살리는 일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저의 희생으로 눈감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으로부터 최종적으로 '생존'하고 싶습니다. 진정한 '생존'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생존에 대해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조차 제겐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해결 방법을 택할 때에만 비로소 제대로 된 해결, 진정한 반성, 피해자의 생존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4개월 간 상처가 너무나 큽니다. 그래도 여전히 소망하고 있는 저를 봅니다. 오늘의 기자회견을 시작점으로 경실련이 이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길, 사건의 끝에 피해자가 생존해 있길, 그렇게 자정 할 수 있는 조직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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