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기사

 

우리는 정확하지 않은 사실들과 신념들을 붙잡고 오늘 하루를 불분명하게 살아가고 있다.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접하는 뉴스들은 이젠 어디서부터 진실이고 거짓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최근에 접한 황당한 기사는 <한국경제>에서 내보낸 ‘[단독] 하룻밤 3300만 원 사용...정의연의 수상한 술값’이란 제목의 기사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이 하룻밤 만에 3300여만 원을 행사가 열린 술집에서 사용했다는 보도였다.

보도를 접한 네티즌들은 시민단체가 기부금을 흥청망청 쓴 것으로 받아들이고 분노했다. 해당 기사에는 1만여 개의 비난성 댓글이 달렸다. 해당 기사는 지난 5월 11일에 보도된 이후 2개월 20일 뒤인 7월 31일에 최종 수정되었다. 기사 맨 아래 단락에 짧은 [정정보도 및 반론보도]가 (조용히) 달린 것.

  • ‘…그러나 정의기억연대는 하룻밤에 3,300만 원을 술값으로 사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어 이를 바로 잡습니다. 또한 정의기억연대는 “국세청 신고 시 2018년 모금사업비 총액의 대표 지급처 1곳만 기재해서 오해가 발생한 것일 뿐이며 3300만 원은 2018년 정의기억연대 모금사업비 지급처 140여 곳에 대한 지출총액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한국경제>는 한 시민단체가 1년간 사용한 지출 총액을 단 하루 술집에서 사용한 것처럼 보도했다. 해당 단체가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반박하자 <한국경제>는 별도로 정정보도를 내지 않고 기존 기사의 마지막 단락에 첨부하였다. 그때 당시 보도를 읽었던 네티즌들 중 대다수는 아마도 이 사실을 모른 채 지나갔을 터였다. <한국경제>는 여기에 대해 어떤 책임을 졌을까?

공교롭게도 정정보도일 바로 전날은 <한국경제>가 해당 기사를 쓴 기자에게 열심히 취재했다며 사내 기자상(賞)을 수여한 날이었다.(참고로 정의연은 재단 운영과 둘러싼 각종 의혹을 다룬 13개 기사에 대해 정정보도 신청을 했고 그 가운데 11개가 정정보도로 조정이 되었다.)

조금 지난 일이지만 <한국일보>는 2016년 10월 시인 A씨가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기사와 사설, 카드뉴스로 보도한 적이 있었다. 당시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불 붙었던 시점이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시인 A씨의 신상과 그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폭로가 SNS상에서 이어졌다. 그러나 해당 의혹은 법원 판결에 따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일단락되었다.

<한국일보>는 2년이 지난 어느 날 정정보도문을 인터넷 신문판에 올렸다. 각각 “확인 결과, 위 보도 내용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 잡습니다”로 끝나는 4가지 보도에 대한 정정이었다. <한국일보>가 해당 정정보도문을 올린 시각은 많은 사람이 잠든 00시 00분이었다.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시인 A씨에 대한 일말의 사과도 없었다.

일부 언론매체의 이러한 보도 행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언어’의 지위를 무참하게 떨어뜨린다. 속고 속이는 공간에서 언어는 믿을 만한 것이 아니게 된다. 지난 6월, 21대 국회에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개념을 반영해 악의적 보도에 대해 실제 손해배상액의 최대 3배 금액을 명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정정보도·반론보도·추후보도의 분량과 위치를 법으로 정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서 ‘표현의 자유’를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한다. 언론이 가진 파급력을 생각해 볼 때 자유만 달라고 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정보도는 사과문과 함께 신문 제1면에 게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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