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준의 위태로운 하루] 직장 내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기
상태바
[박윤준의 위태로운 하루] 직장 내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기
  • 박윤준
  • 승인 2020.11.02 1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상담에서 만난 노동자들을 통해 알게 된 현실과 느낀 점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것’이었다. 그것은 때론 암초에 부딪힌 유조선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양의 기름이 번져나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봐야 하는 참담한 것이었고, 어떤 경우는 끝 모르는 캄캄한 동굴을 걸어가며 시간과 함께 누적되는 부담감을 견뎌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이후 일련의 절차를 마치고 사업장에 복귀한 내담자가 관리자로부터 또다시 냉대를 받고는 내게 전화를 걸고 자신을 응급실로 데려다 달라며 구조를 요청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요즘 나는 그 참담하고, 부담스럽고, 아찔한 그 ‘어떤 것’을 말로써 규명해내고 활동을 통해 바꾸어내는데 관심을 옮기고 있는 것 같다. 상담과 법률지원을 통해서 한 노동자가 입은 손상의 일부를 구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그들의 인격과 권리를 침해받을 수 있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도 결국 소진되어버릴 것 같은 위기감이 어느 순간 들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것’ 중 하나는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상시적으로 경험하는 ‘가스라이팅(Gas lighting)’이다. 가스라이팅은 상대방과의 친밀한 관계나 상대방의 약점(혹은 자신의 우월한 지위)을 이용해서 정신적으로 지배하려는 기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정신적인 지배를 통해 가해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피해자를 조종하고 피해자는 자신의 감정과 판단을 스스로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심리적으로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피해자의 인격과 권리는 침해당하기 쉬운 환경에 내쳐진다.(로빈스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The Gaslight effect)』, 2007 참고)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삶이란-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불안정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경제적․사회적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불평등하게 기울어진 구조 속에서 노동을 ‘감내’해야하는 무엇이다. 제조공장 조회 시간에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인격 모독을 듣는 일은 다반사고 CCTV감시와 중간관리자의 상습적인 고성, 폭언, 욕설을 숨죽여 들어야 하는 일도 많다. 노동법상 권리를 침해하는 근로계약서에 대해 제대로 항변하지 못하고 사인해야 하는 일도, 아예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일도 많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일자리를 몇 개 창출했는지, GDP(국내총생산)가 얼마나 올랐는지, 몇 퍼센트 경쟁 성장을 했는지 등에만 조명을 비춘다. 이곳 음성만 하더라도 산업단지 조성을 많이 했고, 청년 취업률이 높은 것에 대해서만 자랑하지 이 지역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대량 임금체불과 중대재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정부가 외면한 불평등한 삶의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무거운 몸과 마음으로 성실하게, 부단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경제적, 사회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사업주 편에 서고, 사업주의 앞날을 걱정하고, 사업주가 이룬 성과를 우러러보고, 사업주를 대변하는 현실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상담실에서 나는 권리를 주장한 이후 받게 될 수 있을 폭력에 공포감을 느끼는 내담자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그들은 권리구제를 요청하면서도 ‘후환이 두렵다’, ‘해코지당할 것 같아 무섭다’라고 내게 얘기했다. 그리고 권리를 찾으려고 하는 게 잘못된 행동이 아닌지 자신의 판단과 감정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권리 찾기를 주저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실제로 이러한 이유에서 권리구제가 중단된 사례도 있었다.

반대로 임금체불 등 문제로 사업주에게 연락을 시도하면 대다수 사업주는 ‘내가 피해자다’, ‘사업주의 권리는 도대체 누가 찾아주냐’, ‘내가 그 사람에게 얼마나 잘해줬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그 사람 참 이상하다’등의 답을 한다. 모두 가스라이팅을 가하는 말들이고 태도다. ‘상담자인 내게도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현장에서는 어떨까’하는 생각에 미치면 정신이 아득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이러한 ‘직장 내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로빈스턴이 책에서 밝힌 내용을 토대로 어느 상담심리센터가 제시한 1. 문제를 확인하기 2. 스스로를 동정하기 3. 희생을 각오하기 4. 자신의 감정과 통하기 5. 자신에게 힘 부여하기 6, 한 걸음 내딛기 등 일련의 가이드라인은 참고할 법하다.(blog.naver.com/yeddlecenter; [집단상담]가스라이팅 차단하기, 심리 조종자에게서 벗어나는 법 참고)

그러나 직장 내 가스라이팅 문제에 있어 –과거와 달리- 요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자신에게 문제가 없음을 잘 안다. 이는 노동단체들이 노동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차원의 것임을 알리고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활동한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원인을 알지만 그 구조적 폭력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는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을 누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현행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탓이 크다. 노동조합을 만들면 곧바로 사업주의 공격 대상이 되고, 쟁의행위를 하면 손해배상청구, 징계 등등의 후환을 당하도록 내버려두는 제도의 공백 탓이다.(그런데 현 정부는 사업장 쟁의행위 금지, 산별노조 활동 제한,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 노조활동에 더 제약을 주는 방향으로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사업주에게 문제가 있으면 그만두고 이직하면 될 문제이지만, 구직급여(실업급여) 조건이 까다로운(제 발로 나가는 경우 웬만하면 못 받는 게 현실이다) 등등의 사정으로 실업 기간 동안 생계를 보장받지 못하는 부실한 사회안전망의 탓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직장 내 가스라이팅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격하되지 않도록 제도적 권리를 단단하게 확보하는 데 뜻과 힘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 직장 내 가스라이팅이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과제로 남겨선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의 가이드라인의 마지막 단계는 한 걸음 내딛기로 끝난다. 부연 설명에 따르면 ‘어떤 것이라도 일단 행동하기’다. 행동을 할 때 우린 연결될 수 있고, 뜻하지 않게 손상 입은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만든 승자 없는 게임에서 벗어나 연대하고 서로 보살피고 살리는 길은 열려있다. 이제 같이 그 길을 만들 일만 남았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