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배의 ‘틈’] 우린 어항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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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배의 ‘틈’] 우린 어항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 충북인뉴스
  • 승인 2020.07.1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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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극도의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원인을 애써 외면하고 버텨보는 중이다.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세계와 사건에 대해 반응하는 ‘나’는 조금 더 외부 충격에 준비할 시간을 벌거나 그 충격이 점진적일 가능성이 높다. 실시간으로 인지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나’의 감정, 그 속도에 대해 자주 버거움과 피로감을 느낀다. 

새로 들어선 고층 아파트와 세련된 거리의 상가들, 줄지어 반짝이는 자동차들, 산과 하늘까지. 내가 보고 있는 풍경들은 과연 내가 속한 세계일까? 아니면 투명한 유리 벽면 너머의 세계일까?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을 접할 때마다 필자는 몇 년 전 고위 공직자가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고 했던 말이 자꾸 생각난다. 소수 몇몇 사람들 혹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카르텔의 구성원들은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국가를 움직이는 것은 소수 엘리트라고 믿는 것은 아닐까? 우리 국민도 이미 그들에 의해 오래전부터 개·돼지로 규정된 것은 아닐까? 며칠 필자의 몸과 마음이 지쳤기 때문인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세계 최대 규모라는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에 대한 한국 법원의 결정에 대해 우리 국민은 묘한 좌절감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한국 법원은 미국 연방 대배심이 요구한 범죄인 인도 요청을 불허하는 결정을 하였으며 운영자는 간단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 사회에는 정말 국민이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으며 세상은 그 세계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법관 또는 사법부의 양심을 판단하거나 의심할 수는 없기에 국민은 더 허탈해하고 분노하고 있다. ‘아프다.’, ‘고통스럽다.’, ‘죽고 싶다.’ 등의 단어를 모를 리 없으니 감수성의 정도 차이 또는 정말 인식의 문제인가?

오래전부터 ‘대한민국에 피해자의 인권은 없고 피의자의 인권만 있다.’는 불만이 있었다. 피해자 앞에서 사과를 거부하던 가해자들이 “그럼 법대로 하던가!”라고 목청을 높이는 드라마 속 상황은 피해자를 더 절망하게 만든다. 돈과 권력이 함께 있다면 말할 것도 없고 최소 돈이 많은 대상에게 법은 별반 불리하지 않다는 배짱은 아닐까? 

여성, 노인, 어린이는 사회적 약자라며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는 것은 유행가의 가사처럼 오래된 이야기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이들을 대상으로 한 파렴치하고 잔인한 범죄자들은 일벌백계로 다스려져 더 안전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국민 열망에 부응했을까?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에 대한 최종 판결 기사에서 가장 흔하게 기억되는 단어는 “집행유예”, “심신미약(감형의 근거)”이다. 국민은 법에 무지하고 사법시험에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장삼이사(張三李四)이기 때문에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요목조목 옳고 그름을 가려내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 정도의 인간의 도리는 잘 알고 있다. 역설적으로 법의 위세가 대단하지만 법 또한 사람의 도리에 함의되는 작은 부분 아니겠는가. 

거듭 국민을 분노하게 하는 이 완강하고 투명한 벽 또는 틈에 대해서 국민은 체념만 하거나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의를 제기하고 함께 외치고 결국은 새로운 길을 낼 것이다. 남은 거리가 표시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현재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연대하고 행동할 것이라 믿는다. 그 연대의 행동이 국민청원에 동의 표시를 하거나 투표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정도라도 이것은 작은 힘이 아니다. 

맨몸으로 공중을 기어오르는 저것! 달팽이를 닮은 듯 느릿느릿 위로 오르는 저 부드러운 힘. 함께 하자고 다그치지 않고 홀로 유리 벽을 오르며 그 존재를 알려주고 있는 사람. 단내나게 일하고 적당한 돈을 받고 소비할 것을 권유받으며 살 것인가. 아니면 함께 유리 벽을 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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