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배의 틈] 비집고 오르는 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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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배의 틈] 비집고 오르는 힘에 대하여
  • 이성배
  • 승인 2020.06.15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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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사이를 비집고 돋아난 채송화 한 줄기처럼

「꽃의 家系」라는 제목의 시를 퇴고하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문장이 있다. '꽃은 스스로 낸 길을 꺾거나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힘을 풀지 않는다.' 꽃 하나가 그러한데 나는 여태껏 얼마나 엄살을 부리며 살았을까? 

내가 사는 골목의 바닥 벽돌은 완강하고 가지런해서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골목 사람들의 생활을 제법 품위 있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주변에 늘어선 고층 아파트들의 내려다보는 시선 앞에서는 빈틈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바닥 벽돌 틈으로 개망초, 민들레, 심지어 대추나무 순까지 비집고 올라와 광합성을 하고 있으니 사소한 일로 벌어진 말다툼을 들킨 것처럼, 정돈되지 않은 집 안을 들킨 것처럼 계면쩍다.

더군다나 대추나무 순은 서로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듯한 바닥 벽돌을 불쑥 밀어 올리고 있다. 우리 집 마당에 대추나무가 있는 것은 골목 사람들이 모두 아는 사실이니 대추나무 순을 정리하는 것은 언제나 나의 의무다. 

작정하고 노루발장도리까지 챙겨 불쑥 솟은 바닥 벽돌을 어렵사리 제쳐 보았다. 그리 굵지 않은 뿌리의 한 지점에서 얼마나 많은 움이 돋아 뭉쳐 있는지 흡사 팽이버섯이 한껏 돋은 것 같다. 머리 위로 틈이 나올 때까지 수없이 움을 틔운 모양이다. 똑똑 끊기는 콩나물 같은 움들이 꽉 맞물린 벽돌을 들어 올린 힘이라니!

차 밑의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남녀노소 주변 사람들이 달려들어 차를 들어 올리는 힘, 억울하거나 분노를 일으키는 사건에 대해 삽시간에 수십만 명의 사람이 청원 글에 반응하는 힘, 조금 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내는 투표의 힘. 

꽃이 같은 방향으로만 피지 않듯 우리 사회도 하나의 대상이나 사건을 두고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존재한다. 그런데 꽃이 해를 향해 공중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길을 내는 것과 달리 우리 사회는 애초부터 힘들게 낸 길을 꺾으려 하거나 응집된 하나의 방향을 자꾸 혼란스럽게 하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국민의 행복, 안전, 자부심,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 불법적 국가 권력에 대한 통렬한 반성 등. 하나의 길로 나아가는 가치를 살피기보다 곁가지의 쌩이질로 시작해 이슈의 핵심 가치를 왜곡하고 사회를 분열시키려는 시도를 볼 때마다 도대체 이 나라가 얼마나 더 한국(恨國)이어야 하는지 안타깝다. 

과거 암울했던 恨國의 현대사는 국민 통합이라는 미명 아래 정권이나 정부 정책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국민에게 붉은색을 칠하고 국가 발전 저해 행위로 규정하면서 국민을 오히려 분열시켰다. 경찰과 검찰, 심지어 군대까지 '정의구현'에 군말 없이 동원되었으니 국민은 그저 콩나물시루 속의 콩처럼 성실할 의무와 책임만 있었다.

벽돌로 꾸민 마당에 실오라기 같은 붉은 줄기의 채송화 몇 돋아나고 있다. 작년에 채송화 화분이 놓여있던 자리 근처다. 채송화의 줄기를 보면 뙤약볕에서 일하느라 빨갛게 그을린 사람의 목덜미 생각이 난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식구들을 위해 수박 한 통, 통닭 한 마리 사 들고 귀가하는 부모의 마음. 그 마음이 노랑 채송화꽃처럼 밝고 환하지 않았을까.

권력기관이나 일부 집요한 언론을 통해 국민이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어느새 우리 국민은 노란색이 잘 어울리는 어느 대통령의 말씀처럼 "깨어있는 소비자를 거쳐서 깨어있는 시민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벽돌 틈을 비집고 오르는 뭇 생명의 부드럽지만 강한 힘이 바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시민의 모습과 너무 흡사하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힘. 장마나 폭풍에 잠시 쓰러지는 일이 있더라도 꽃은 잠시 공중을 부여잡고 버티다가 기어코 하늘 방향으로 몸을 일으켜 세울 것이다. 

많이 배우거나 덜 배우거나 돈이 많든 적든 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나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나 더불어 행복한 세상, 사람이 중심인 세상을 위해 가야 할 길이 더 남았지만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딱딱한 세상의 대지를 뚫을 수 있을 것이다. 목덜미 따가워도 같이 가면 좀 수월하지 않겠는가! 노란 채송화꽃 한 송이가 마음을 열 듯 당신 때문에 나는 오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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