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기사

 

어린 시절 옆집에는 커다란 밤나무가 있었고 다른 옆집에는 오래 묵은 옹아나무가 있었다. 가을밤 알밤 떨어지는 소리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옹아가 진보라색으로 익는 여름에는 누가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 뒤안으로 뛰어갔다. 우리 집으로 떨어진 옹아를 주워 입에 넣으면 온몸에 퍼지던 달콤함이란! 우리 집 뒤안에는 개나리와 장미 넝쿨만 있었으므로 참을성을 기르기에는 좋은 환경이었다. 

동네 아이들 집에는 대추나마, 살구나무, 앵두나무, 감나무 등 과일나무 한 그루씩은 다 있었다. 찔레순이나 옥수수 대공을 질겅거리거나 칡을 캐 먹다가 아이들 손에 들려 있는 달콤한 과일을 보면 참지 못하고 젊은 엄마를 졸랐다. 장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많아졌다. 

대청마루에서 엄마가 고추, 들깨, 마늘, 콩 등속을 장 보따리에 꼭꼭 여미고 있으면 조바심이 심해졌다. 오후 내내 장고개를 서성거리다 나무 그늘에서 설핏 잠이 드는 날도 있었다.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장에서 돌아오는 엄마의 앞뒤를 강아지처럼 겅중거렸다. 빨리 보따리를 풀어보고 싶었다. 맥이 탁 풀려 세게 투정을 부릴 찰라, 엄마 말씀. “사과 장사 죽었어!” 다음 장날에는 배 장사가 죽었고 그렇게 장날마다 과일 장사들이 죽어 나갔다. 

배고팠던 시절 이야기다. 애나 어른이나 동네 사람들의 궁리가 모두 먹을 것이었던 시절. 삶은 단순했고 노동은 정직했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고 사람들의 궁리는 이제 밥이 아니다. 그런데 새롭게 생긴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사람들이 떠나는 골목에서는 사람들의 복잡한 궁리를 체감하기 힘들다. 스마트 폰으로 세상의 이슈를 살펴보니 부동산 문제와 검찰 개혁에 관한 이야기가 눈에 띈다. 그런데 그 뉴스의 모양새가 험악하기 짝이 없다. 

집, 아니 아파트는 안락한 집인 동시에 유용한 돈벌이 수단이다. 주변에도 로또 아파트라며 아파트 분양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여럿이다. 이 정도면 국민 모두의 궁리가 맞겠다. 왜 우리에게 아파트는 돈벌이 수단이어야 하나. 투자나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주거 형태의 하나일 뿐이고 조금 더 쉽게 살 수 있는 대상이 되면 안 될까?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불만을 가질 것이고 가격이 내리면 아파트를 가진 사람들이 불만을 가질 것이다. 형국이 이러하니 어느 정권에서든 부동산 정책은 쉽지 않다. 하지만 비싼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더 많이 행복하고 삶의 기쁨으로 충만한 지 궁금하다. 부동산 정책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언론의 모습은 진정 집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동반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어찌 되었든 개각으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어떻게 될지, 으르렁거리며 빈틈을 노리고 있는 들개 무리 같은 언론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자못 궁금하다.

아파트를 위시한 부동산 문제가 전국민적 궁리와 맞닿아 있다면 검찰 개혁의 문제는 기득권층의 궁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얼마나 편리했으며 그 힘은 얼마나 막강했는가. 대한민국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검찰을 견제할 장치나 조직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어느 누가 감히 검찰과 대적을 하겠는가. 왜 하필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은 “그놈 목소리”로 검찰을 사칭해서 선량한 국민에게 피 같은 돈을 빼앗아 갔을까?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쌀값이 서러워 농민들이 수만 명씩 모여 집회를 해도 뉴스 한 줄 나오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정론직필을 부르짖으면서도 기사 한 줄 내주지 않던 기자들은 요즘 검찰총장이나 검사들의 반응을 실시간 중계하듯 기사화하고 있다. 검찰 개혁에 대한 필요성이나 취지는 없고 마치 막장 싸움을 부추기는 듯한 기사로 국민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언론은 유용하다. 하지만 이런 언론이 권력이나 돈에 골몰한다면 정말 춥고 배고팠던 시절 식구들에게 따듯한 먹거리가 되어 주었던 ‘시래기’가 서러울 일이다. 

세상에 중심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돈과 권력,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불빛이 강한 것은 알겠다. 그러나 6411번 버스를 타고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처럼 소박한 희망이 하나하나 밝힌 눈부시지 않은 빛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비추리라 믿는다. 지금까지 힘겹지만 느리게라도 사람이 조금 더 살만한 세상으로 바꾸어 왔듯 그렇게 또 세상은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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