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기사

조개탄 난로 위로 아이들의 알루미늄 도시락이 켜켜이 쌓여 있던 국민학교 교실. 선생님으로부터 생활조사표를 받아 든 아이들은 골똘했다. 나열된 전자 제품 중 집에 있는 것을 표시하고 생활 정도는 상, 중, 하 중에서 한 곳을 골라 동그라미를 그리면 되는 단순한 조사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에게 물어볼 기회도 없이 가정 사정을 숨김없이 표시해야 하는 상황에, 아니 빈칸으로 두어야 하는 곳이 많다는 사실 앞에 교실은 장난치는 아이 없이 조용했다.

전화, 전축, 냉장고, 텔레비전, 자동차... 필자는 아버지가 짐을 산더미처럼 싣고 언덕을 거침없이 오르던 리어카를 ‘자동차’ 란에 표시해야 할지를 두고 오래 고민했다. 하지만 뒷줄부터 걷으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텔레비전’ 한 곳에만 동그라미를 그리고 생활 정도는 ‘중’으로 표시했다. 선생님이 나중에 생활 정도를 잘못 표시했다고 꾸지람을 할 것 같았고 부모님에게는 정직하지 못했다고 혼이 날 것 같아서 학교에서 어떤 조사를 했는데 어떻게 작성했노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피라미 떼처럼 몰려다니는 사이 부모들은 새벽부터 들로 나가 별이 떠서야 지친 모습으로 돌아왔다. 누에를 치고, 연탄 화덕에 고추를 말리고 가을에 벼를 수매해서 겨우 농협 빚을 갚았지만 손에 쥐는 돈은 없었다.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새마을 운동을 하고 퇴비 증산을 하고 아이들은 둘만 낳고 쥐를 잡고 수시로 반상회를 해서 마을 발전에 힘썼지만 그렇게 놓인 개울의 다리를 건너 부모들은 고향을 떠나 도시의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정직하고 성실했던 그러나 손에 쥐는 것이 없었던 부모의 자식들은 부모의 바람대로 성실하게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성실하게 일하고 성실하게 소비하는 착한 국민이 되었다.

착한 국민은 국가를 혼란스럽게 하는 데모를 하면 안 되었고 나라가 어려우면 줄을 서서 각종 성금을 내고 금을 모았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남들처럼 겨우 집 하나 장만하기를 꿈꾸었다. 하지만 국가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더 성실하게 일할 것을 독려했다. 그러는 사이 국민은 민주 시민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개, 돼지라니! 그저 주인이 주는 먹이에 만족하고 더 큰 꿈을 꾸거나 생활을 개선할 능력도 없는 무리라니!

그러고 보니 국민은 정신없이 바쁘다. 일하고 성실하게 세금을 내고 선거철에는 이유 없이 집요하게 부름을 당하고 교회에도 나가야 하고 용하게 병을 고치는 병원을 찾아다녀야 하고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찾아 달리고 허겁지겁 맡겨둔 아이를 데려와 대형 마트에 가서 소비 진작도 해야 한다. 노년에 감당하기 힘든 치료비가 걱정돼 부지런히 산에도 올라야 한다. 살림에 쨍하고 볕 들기를 바라며 주식시장에서 빵 쪼가리를 입에 물은 개미들은 허방을 깨무는 바람에 어금니만 금이 갔다. 

그런데 압수수색 현장에서 맞짱을 뜨는 검사들과 불만이 있으면 과감하게 사표를 날리는 검사들의 사표 신공, 코로나 19 여파 속에서 숨 쉬는 것도 조심하는 국민 보란 듯이 의료 현장을 떠나 무더기로 사직서를 던지는 의사들의 사직서 신공 앞에서 말더듬이가 되는 국민은 정말 개, 돼지가 된 느낌을 받는다.

한 곳을 바라보고 똘똘 뭉쳐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국민의 자긍심으로 알았건만 일단의 사람들은 그동안의 정직, 성실은 사기라며 코로나 19 진단 검사를 거부하는 등 방역 활동에, 코로나 19 종식을 염원하는 국민에게 왕소금 뿌리기 신공을 선보이고 있다. 국민은 숨이 차다. 힘들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생산의 도구, 사회 유지를 위한 소비의 도구로 취급할 때. 권력을 가진 자들이 개, 돼지로 취급할 때 스스로 존엄을 지키는 방법은 끊임없는 반성과 외침, 나아가 함성이다. 국민은 단지 가족들과 가끔 외식을 하고 갚아야 할 은행 빚이 있더라도 그만하면 잘 살았다는 위로를 받고 싶다. 서로 말없이 안아주고 싶을 뿐이다.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돈과 권력 그리고 정치여! 우리를 더 이상 국민이라 싸잡아 부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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