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육·치료기관 및 장애·비장애 통합학교 탐방
배움에 어려움 있는 시민지원…이용자 100% 무료
18세 이상 양육시설 떠나야 하는 우리나라와 대조적
독일 지원시스템 넘어 약자 보호하는 국민성 눈길

묶음기사

‘전 국민 10명 중 1~2명’, ‘느린학습자’, ‘사각지대’, ‘장애·비장애의 중간’, ‘은둔형 외톨이’.

지능지수 71~84인 경계선지능인을 일컫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살펴보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유아시절부터 성인 이후까지 우리사회 곳곳에 있는 차별과 편견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 들어 일부 지자체에서 경계선지능인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와 지원센터가 생겨나고, 인식 또한 확산되고 있지만 한계는 여전합니다.

충북인뉴스는 8회에 걸쳐 경계선지능인들의 학교생활과 성인이후 삶을 조명해보고, 문제 개선 및 대안을 마련해보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독일 취재기>

인생 처음 독일엘 갔다. 인천공항에서만 해도 경계선지능인들을 지원하는 독일의 시스템과 교육환경을 열심히 취재하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무려 20시간 넘는 시간동안 비행기를 타고 독일 브란덴부르크 공항에 도착할 무렵에는 솔직히 ‘취재의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당장이라도 쓰러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럼에도 다시 취재의욕이 다시 되살아난 이유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번 취재 목적과 딱 맞아 떨어지는 장애인들의 ‘배려’문화를 공항 입구에서부터 눈으로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충북에서는 보기 드문 저상버스가 도처에 깔려 있었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아무런 불편 없이 버스와 에스반(S-Bahn, 광역전철을 의미)을 타고 이동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독일 사람들의 ‘특별한 시선’은 그야말로 1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배려라고 굳이 표현할 것도 없고,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조차 하지 않는 느낌이랄까.

 

독일의 첫인상은 그렇게 우리나라와 사뭇 달랐고, 독일 사회와 국민성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면서 취재의욕은 다시 되살아났다. 그리고 취재 내내 그 의욕은 유지됐다. 물론 취재를 하며 독일사회 또는 독일의 국가시스템을 막연히 ‘동경’하는 기사는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기관 한곳 한곳을 방문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부러움’은 배가 됐다.

이번 취재의 당초 취지는 경계선지능인 지원과 관련해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외국의 선진 사례 소개다. 하지만 막상 기관 한 두 곳을 취재하다 보니 기관 소개만으로는 독일 정부의 경계선지능인(또는 장애인) 지원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스템이나 법을 넘어선 무언가, 예를 들면 독일의 독특한 국민성, 약자를 보호하는 독일의 배려문화가 그 근간에 깊고 두텁게 깔려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6박 8일간의 짧은 기간 동안 이 또한 깊이 있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했다. 다만, 취재를 하며 느낀 것은 지원 시스템 자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독일 국민의 국민성과 인식이고, 그것이 전제되었을 때 비로소 국가의 지원시스템은 유기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베를린 돈보스코 전경.
베를린 돈보스코 전경.

 

치료와 교육, 두 마리 토끼 다 잡는 ‘베를린 돈보스코’

먼저 경계선지능 청년의 자립을 지원한다는 돈보스코(Don Bosco)를 찾았다. 돈보스코는 가톨릭 살리시오 수도회를 창립한 이탈리아 보스코(Bosco) 신부 이름으로, 독일 전역에 여러 곳이 있다.

기자가 찾은 곳은 베를린 돈보스코로, 16~25세까지 청소년 또는 청년들 중 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더라도, 배움에 힘듦을 느끼는 이들이 이용할 수 있다. 즉 베를린 돈보스코는 지능이 낮아 배움에 어려움이 있거나, 심리적인 어려움 또는 복합적인 장애가 있어 공립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학교다. 독일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교육기관으로 베를린 청소년청과 고용노동지원센터, 돈보스코 재단으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는다. 이용자는 물론 100% 무료다.

이곳은 교육과 치료를 목표로 가정방문 상담과 교육, 직업체험을 비롯해, 숙박도 제공한다. 숙박은 1년 정도 머무를 수 있고, 또 다른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다른 기관과 유기적으로 연계한다.

우리나라 양육시설에 거주하는 경계선지능 청년들이 만18세 이상이면 시설을 떠나 ‘자립’을 해야 하는 현실과 크게 대조적이다.

한 반에 30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 담당교사는 4명이다. 모든 학생이 수강해야 하는 과목은 독일어, 영어, 수학 등 3과목이고 나머지 시간엔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교과를 개설해 운영한다. 지리일 수도 있고, 기후위기나 환경과 관련된 사회적인 이슈일 수도 있고, 학생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참여하며, 다양한 교과를 넘나드는, 이른바 ‘융합수업’이 진행된다.

 

베를린 돈보스코의 직업체험실. 학생들은 이곳에서 본격적인 직업교육 이전에 자신의 적성을 알아볼 수 있다.
베를린 돈보스코의 직업체험실. 학생들은 이곳에서 본격적인 직업교육 이전에 자신의 적성을 알아볼 수 있다.

 

베를린 돈보스코의 직업담당 교사가 취재진에게 학생들이 만든 '금속장미'를 선물로 건네고 있다. 
베를린 돈보스코의 직업담당 교사가 취재진에게 학생들이 만든 '금속장미'를 선물로 건네고 있다. 

 

직업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되는데, 현재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목공·미술·금속 분야 등 3가지다. 4~5년을 주기로 변경되는 이 프로젝트는 본격적인 직업교육 이전에 학생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탐색해볼 수 있는 기회다. 개방적인 장소에서 여럿이 공동작업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위해 1인 작업실도 마련되어 있다. 학생이 직접 만들었다는 ‘금속 장미’를 선물이라고 건네며 직업체험 담당교사는 환하게 웃었다.

특히 이곳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학생들이 낳은 아이들도 함께 돌본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아이를 위한 유치원도 같은 건물 안에서 함께 운영되고 있는 것. 어려움이 있으면 아이 낳는 것을 꺼려하고, 육아는 오로지 가정 또는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우리나라 현실과 극히 대조적인 풍경이다.

 

베를린 돈보스코의 마르쿠스 보로비 교사가 교육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베를린 돈보스코의 마르쿠스 보로비 교사가 교육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마르쿠스 보로비(Markus Borowy) 교사는 취재진에게 학교 구석구석을 보여주며 소개했다. 교실은 물론 식당, 학생이 머물 수 있는 침실, 상담실, 휴식 공간, 직업교육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작업장까지, 보로비 교사는 설명하는 내내 지원의 필요성과 베를린 돈보스코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한 청년 자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보로비 교사에 따르면 독일에서의 자립은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자립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독일에서의 자립은 ‘각자도생에서 성공한 삶’ 또는 ‘번듯한 직장을 구하는 것’, ‘국가지원을 받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아니라 국가 지원시스템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홀로서기다. 마르쿠스 보로비 교사는 “베를린 돈보스코를 졸업했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가 또 발생하면 그 연령을 지원하는 기관의 도움을 또 받으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독일정책은 개개인이 어떤 삶을 만들어갈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모두가 100점을 향해 갈 필요는 없습니다. 강요하거나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만족하면서 살 수 있도록 동기를 제공해주고 천천히 도달할 수 있도록 시스템 속에서 지원해주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프리데나우어 공동체학교(Friedenauer Gemeinschafts schule) 간판.
프리데나우어 공동체학교(Friedenauer Gemeinschafts schule) 간판.

 

독일의 통합학교⓵ - 프리데나우어 공동체학교(게마인샤프트슐레)

우리나라에서 경계선지능 아동·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하는 곳은 어디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은 바로 교육현장, 학교다. 경계선지능 아동·청소년들은 학교에서 갖가지 상처를 받고, 이 상처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트라우마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학생의 인권과 개성을 존중하고, 특히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의 본고장으로 알려진 독일의 경계선지능 청소년들의 학교생활은 어떨까? 독일의 교육환경이 궁금해졌고, 그래서 장애·비장애 통합학교인 프리데나우어 공동체학교(Friedenauer Gemeinschafts schule, 이하 공동체학교)와 프라이에 발도르프슐레 크로이츠베르크(Freie Waldorfschule Kreuzberg, 이하 발도르프슐레)를 찾았다.

2012년부터 통합학교로 운영되고 있는 공동체학교는 초·중·고 통합학교로 사회·정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 지적·신체장애 학생 뿐 아니라 독일로 이민을 와 독일어가 미숙한 외국인 학생, 심지어 영재교육이 필요한 ‘특별한’ 학생들도 함께 한다. 이른바 수월성 교육의 수혜자로 불리며 ‘특별대우’를 받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프리데나우어 공동체학교(Friedenauer Gemeinschafts schule)의 다니엘 돌레잘(Daniel Dollezal) 통합부서 담당교사가 교육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프리데나우어 공동체학교(Friedenauer Gemeinschafts schule)의 다니엘 돌레잘(Daniel Dollezal) 통합부서 담당교사가 교육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는 이 많은 영역의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하는 걸까?

다니엘 돌레잘(Daniel Dollezal) 통합부서 담당교사의 설명은 놀라웠다. 우선 공동체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의 입학년도와 졸업년도가 동일하지 않다. 즉 학년의 경계를 허물었다고 표현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1학년으로 같이 입학했더라도 어떤 학생은 1학년에 더 머무를 수도 있고, 또 어떤 학생은 1학년에서 3학년으로 건너뛸 수도 있다. 또 1학년부터 8학년까지 이수한 학생 중 상위단계에 진급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는 일자리를 소개해주고 일주일 중 3일은 직장으로 출근하고, 2일은 등교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결국 공동체학교의 운영방식은 입학년도에 학생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수준과 단계에 맞추고 있었다. 물론 무한정 졸업을 유예시킬 수는 없다. 교사들은 학생이 졸업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돌레잘 교사는 “게마인샤프트슐레(공동체학교)의 이러한 방식은 학교 목표에 부합하는 시스템”이라며 학교목표를 소개했다.

공동체학교의 목표는 △스스로 하는 공부 △개인의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 △동등한 기회 △민주적인 운영 △천천히 공동체와 함께하는 교육 △서로 인정하고 존경하는 교육이다.

또한 학생들이 돌발(?)행동을 할 경우, 공동체학교에는 특수교육 전문가, 보조교사, 학생을 도와주는 도우미,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 다양한 직군의 종사자들이 함께 한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번 씩 회의를 열고 어떻게 하면 수업이 잘 진행될 수 있을지를 논의한다. 또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팀을 꾸려 집중적으로 대안을 마련하고 단일한 방식으로 실천한다. 예를 들어 수업 중에 학생이 의자를 집어 던지는 행동을 했다면, 교사는 부모, 의사, 상담사, 보조교사, 사회복지사 등이 참여하는 팀을 만든다. 이들은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학생이 의자를 던진 원인을 분석하며 해결방안을 도출한다. 그리고 결정된 의견을 실천한다.

다니엘 돌레잘 교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논의하다 보면 좀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고 하나의 방향으로 실천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교사는 다른 학생들에게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도록, 문제의 원인을 장애에 두지 않고, 철저히 태도에 두는 자세를 취한다.

 

프라이에 발도르프슐레 크로이츠베르크 간판.
프라이에 발도르프슐레 크로이츠베르크 간판.
프라이에 발도르프슐레 크로이츠베르크 전경.
프라이에 발도르프슐레 크로이츠베르크 전경.

 

독일의 통합학교⓶ - 프라이에 발도르프슐레 크로이츠베르크

발도르프슐레 또한 장애 학생이 전체학생의 10%정도 있는 통합학교다. 사립학교인 이 학교는 발도르프 철학에 맞게 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면서 다양한 발달이 이뤄질 수 있도록 맞춤형 교육을 한다. 전교생은 720여명이고 교직원은 100여명에 이른다. 수십여 명의 교직원들은 세분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데, 예를 들어 미술교과 하나만 해도 조각, 목공, 금속, 회화 등 4~5개로 나눠져 있다.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집’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한 달 동안 만드는 것인데, 재료와 구성이 모두 제각각이다. 코로나로 실내에 있는 집이 싫다며 학교 운동장에 집을 만든 학생도 있다. 교사가 학생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프라이에 발도르프슐레 크로이츠베르크 3학년 학생이 만든 집. 학생은 한달동안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만들어보는 활동을 한다.
프라이에 발도르프슐레 크로이츠베르크 3학년 학생이 만든 집. 학생은 한달동안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만들어보는 활동을 한다.

 

통합교육,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육을 하는 이유와 장점을 묻는 질문에 베아테 운터보른(Beate Unterborn) 특수교사는 “다양한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일반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죠”라고 답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왜 하냐고, 뭐가 좋으냐고 물었으니 그야말로 우문현답이다.

발도르프슐레 역시 공동체학교처럼 다양한 직군의 종사자가 학교에 근무하고 있어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팀을 꾸려 문제에 대응하고 실천한다.

특히 발도르프슐레는 사립학교임에도 부모가 없는 학생, 외국학생도 함께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쟁을 피해 독일로 온 우크라이나 학생들과도 함께 하고 있다고.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사립학교라면 분명 학부모의 자부담이 있을 텐데, 그렇다면 부모가 없거나,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들은 이 학교를 다닐 수 없다는 건가? 이에 대해 베아테 운터보른 교사는 뜻밖의 이야기를 한다.

“돈이 많은 학부모에게는 더 받고, 돈이 없는 학부모에게는 덜 받습니다. 학부모단체에서 이를 결정하죠.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지역에 있는 청소년청이 후견인이 되어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또 학교에 있는 여유 돈으로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약자를 배려하는 독일인들의 인식은 학교운영에도 녹아 있는 듯했다.

 

데어 슈테그 비영리법인(DER STEG gGmbH) 사무실 전경.
데어 슈테그 비영리법인(DER STEG gGmbH) 사무실 전경.

 

데어 슈테그 비영리법인…일상생활 복귀와 통합이 목적

치료가 더욱 필요한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도 있다. 바로 테라포이티쉐 유겐드 본 그룹(Therapeutische Jugend wohn gruppe)이 운영하는 데어 슈테그 비영리법인(DER STEG gGmbH, 이하 데어 슈테그)이다.

학교에 대한 공포증, 강박, 우울증, 자살충동, 조현병, 경계선인격장애 등으로 힘들어 하는 14살~21살 청소년들이 이곳을 이용한다. 독일정부로부터 교육기관으로 인가받은 곳이고, 청소년청의 재정지원을 받는다.

 

치료가 필요한 청소년들을 위한 시설(일종의 그룹홈). 배움에 어려움이 있는 14살~21살 청소년들을 위한 양육시설.
치료가 필요한 청소년들을 위한 시설(일종의 그룹홈). 배움에 어려움이 있는 14살~21살 청소년들을 위한 양육시설.
독일 청소년들의 교육, 치료를 위한 거주시설. 
독일 청소년들의 교육, 치료를 위한 거주시설. 

 

이곳은 청소년 교육·치료 거주시설로, 쉽게 말해 병원은 아니지만 정규학교에 가기 힘든 학생들을 위한 치료공간이자 일종의 그룹홈이다. 정규 프로그램 이외의 기타 프로그램이나 자유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 학생들과 함께 논의해 결정·운영한다. 특히 일상복귀, 사회통합이 이 학교의 목적이다 보니 그룹홈 내에서의 생활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청소년들이 머물 수 있는 거주시설 내부. 1인 1실로 개인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청소년들이 머물 수 있는 거주시설 내부. 1인 1실로 개인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청소년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거실(주방).
청소년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거실(주방).

 

우선 그룹홈이라고 표현했지만, 방 하나를 4~5명이 함께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시설과는 전혀 딴판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단독주택의 모습을 닮았고, 1인 1실이며 철저히 개인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한 집에 4~5명이 거주하는데, 이들을 돌보는 사회복지사, 보조교사, 심리치료사 등도 함께 생활한다. 무엇보다 4~5명의 청소년들을 돌보기 위해 함께 생활하는 이들의 인원이 놀랍다. 무려 14명. 8명은 낮에 근무하고, 6명은 밤에 근무하며 청소년들을 돌본다. 일대일 관리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근무자들은 일주일에 한번 씩 만나 회의를 하고 슈퍼비전을 받는다.

 

홀게르 슈테터(Holger Staedter) 과장.
홀게르 슈테터(Holger Staedter) 과장.

 

법인의 홀게르 슈테터(Holger Staedter) 과장은 “일상으로 복귀, 사회통합이 목표이기 때문에 (시설에서의)생활이 매우 중요합니다. 담당자들은 각각의 역할에 충실하고 유기적인 연계를 위해 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데어 슈테그에는 심리상담사, 보조교사, 사회복지사가 있는데 심리상담사는 가족상담, 변증법적 치료, 행동치료 등을 하면서 보조교사를 코칭한다. 보조교사는 청소년들이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도록 장보기, 식사준비하기, 주말에 무엇을 할지 결정하기, 부모와의 소통이 잘되고 있는지 파악하기 등 일과를 점검하고 관리한다. 그리고 사회복지사는 청소년청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관련 서류를 작성하고 청소년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정보를 제공한다.

홀게르 슈테터 과장은 “청소년에게 필요한 정보와 기관이 무엇인지 찾고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청소년이 직업교육을 받고 싶다고 하면 직업교육 기관을 찾아주고, 대학에 가고 싶다고 하면 대학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청소년들이 오랫동안 관리가 안 되고 고립되어 있고 방치되어 있다면 나중에 국가가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더 커집니다.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의 적절한 지원이 중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100% 무료라는 점이고, 부모가 없는 청소년일 경우에는 청소년청이 후견인이 된다는 점이다.

각자도생의 시대, 가정에서 인내와 희생만으로 감당(?)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경계선지능인 상황을 전하며 한국에 해주고 싶은 말은 없는지 홀게르 슈테터 과장에게 물었다. 그는 “독일이 좋고, 한국이 나쁘다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은 경계선지능인이나 장애학생을 사회적인 문제이기 보다는 가정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문화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좋은 부모를 둔 청소년도 장애로 태어날 수도 있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할 수도 있고, 마약을 할 수도 있고, 자폐스펙트럼을 갖고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로만 국한시키지 말고 (국가가)개입을 해서 논의하고 대안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독일에서 배움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지원하는 기관, 네 곳을 둘러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교직원들의 표정이었다. 힘들거나 지쳐있는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었고, ‘예산이 없어 힘들다’, ‘인력이 없어 힘들다’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개인정보 보호를 지극히 중시하는 탓에 학생 또는 청소년들과 직접적인 인터뷰는 할 수 없었지만 마주친 청소년들의 얼굴에선 그늘진 구석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불편한 것이 별로 없고, 문제가 있으면 토론과 협의를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것이 국가의 당연한 역할이라고 여기고 있었고, 국가 지원시스템을 신뢰하고 있었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독일인의 투철한 인식, 공동체 의식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독일어를 몰라 통역사에게 100%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한계였고, 평소 공부가 적은 탓에 현재로선 이 질문에 분명한 답을 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독일어를 배워 다시 한 번 독일을 취재해야겠다는, 어쩌면 지키지 못할 약속을 스스로에게 했다. 그때는 청소년들과 그들의 부모, 정부 관계자들도 직접 만나리라.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지금 나는 독일이 부럽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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