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시간, 19일 오전 오송읍 서평리와 동평리 경계에 있는 한 마을을 찾았다. 골목 입구에서부터 오물냄새와 쓰레기 냄새가 진동했다.

이 골목에는 20여 가구가 있다. 집집마다 문 앞에 이불가지며 옷가지, 가전제품, 가구, 뜯긴 장판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주민들은 물에 잠긴 물건을 꺼내고, 닦고, 쓸고, 정리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한 집에 들어서자 한 50대 남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전기공사를 업으로 삼고 있는데 이번 수해로 기계에 물이 들어가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 짜리를 다 버리게 생겼다고 한탄했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그야말로 처참했다. 그날 가슴까지 차올랐던 물은 빠졌지만, 아직도 곳곳에 그 흔적은 남아있다. 옷가지는 물에 젖은 채로 널려 있었고 물을 잔뜩 먹었던 나무 문짝은 쩍쩍 갈라져 있었다. 몰딩은 떠서 가볍게 손을 대기만 해도 떨어져 나갔다.

“이 골목에는 옛날 집들이 많아요. 옛날 집들은 문과 몰딩을 나무로 많이 만들었는데 다 망가졌어요. 가구가 있어야 하나씩 넣어가면서 정리를 하는데 가구가 다 망가지고 어떻게 정리를 할 수가 없어요.”

또 다른 집, 가족으로 보이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가구와 옷가지, 가전제품을 내놓고 쓸고 닦았다. 할머니 혼자 살았는데 이번 수해를 맞아 외지에 나가 있던 자식들이 와서 대신 청소와 정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50대 여성은 “건질 게 하나도 없어요. 이런 일은 정말 처음이에요”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옆집에는 86세 노인이 겨울 옷가지를 햇빛에 말리고 있었다. 자식들은 버리라고 하는데 너무 아까워서 말려서 입을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보상이라도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불이라도 지르고 싶어요”

수마가 휩쓸고 간 자리, 오송 주민들은 처참한 터전을 보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또 분노하고 있었다. 100% 인재이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사회지도층이 문제라고도 했다.

“이거는 100% 인재에요. 정말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천재지변으로 집이 떠내려갔다면 차라리 말을 안 하겠어요. 그건 나라님도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그런데 이건 말이 안돼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인데 터져버렸잖아요. 뉴스에서 신나로 불 지르고 분신을 하는 게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이해가 되요. 정말 불이라도 지르고 싶어요.”

A씨는 집안을 청소하면서도 격앙된 목소리로 화를 참지 못했다.

사고 이후 청주시의 대처도 분노스럽다.

“구호물품을 받으러 읍사무소에 오라고 하는데 지금 치우기도 바빠 죽겠는데 언제 가서 받아와요. 시에서 나와서 나눠줘야지 가져가라니. 그리고 시장이고 구청장이고 코빼기도 못 봤어요. 아무도 나와 보지도 않아요.”

A씨는 아직 피해신청도 못한 채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3일째 ‘여관 살이’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송복지회관에서 만난 신유승 씨(74)도 이번 수해로 터전을 잃었다. 책을 출판하기 위해 무려 5년여 동안 준비해온 자료와 각종 책들을 한순간에 모두 잃었다.

“8년 전에 글을 쓰고 싶어서 서울에서 내려왔어요. 이번 수해로 전 생활터전도 날아가고 돈보다 더 귀한 정보도 다 날아가고…. 이제는 정말 답이 없어요.”

신유승 씨는 오송복지회관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며, “사회지도층이 이렇게 했다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우리나라는 사회지도층이 문제에요. 착한 사람들만 맨날 피해를 보잖아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