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지역 이재민 39명 복지회관에 머물러
“긴박했던 순간, 구급대원은 오지 않았다”
“70평생 이런 일 처음…집에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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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리 마을의 한 비닐하우스 안, 농기구들이 뒤집어져 있다. 

 

‘꿀럭꿀럭’ 화장실에서 이상한 소음이 들려왔다. 강둑이 터져서 변기 물이 역류하고 있었던 것. 잠귀가 밝은 아내 덕에 물난리를 남들보다 몇 분 더 빨리 알아챈 이 씨는 집 밖으로 서둘러 나왔다. 부랴부랴 강아지와 가족을 챙겼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이 씨는 지병이 있는 이웃 주민들을 떠올렸다.

집 밖에 물이 넘치는 줄도 모르고 자고 있던 이웃집 김 씨는 이 씨의 부름에 깨어났다. 문을 열자 집안에 물이 쏟아졌다. 핸드폰도 챙기지 못하고 몸만 간신히 건사한 채 마을을 빠져나왔다고 궁평리 주민 김 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집 밖을 빠져나와 2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가슴께까지 물이 차올랐다. 119에 전화를 해 아직 대피하지 못한 노부부를 구해 달라 요청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구급대원들은 오지 않았다.

응급구조학과를 졸업한 이 씨의 아들은 옆집 노부부를 구하기 위해 다시 물살을 헤치고 나섰다. 두 노인의 손을 꼭 잡고 이들을 구해온 모습은 어느 구조 요원, 소방관 못지않았다.

“119에 신고를 해도 안 와. 다른 곳에도 요구조자가 많아 여기(궁평리)에 올 여력이 없다는 거야. 아무도 나서질 않는데 우리 아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을 끌고 같이 나왔어.”

오송읍 복지회관 임시 거주시설에 머물고 있는 이 씨는 당시 15일 수해현장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이 씨는 “두 어르신이 ‘절대 이사 가지 말라’더라, 옆집에 살며 은혜를 갚겠다며 아들의 두 손을 꼭 감쌌다”고 말했다.

수해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한 건 방송도 재난문자도 아닌 마을 주민 간의 관심과 애정이었다.

 

궁평리 마을에 인접한 공사장 가림막에 물이 차오른 자국이 남아있다.

 

가슴까지 차오른 물...'아수라장'

이 씨와 김 씨를 따라 찾아간 궁평리 마을은 그야말로 쑥대밭이었다. 온갖 기자재와 가구가 떠내려와 길목에 쌓여있었다. 성인 남자 가슴높이의 빗물 자국이 채 마르지 않은 공사장 가림막, 주택 외벽과 마당에 높이 쌓인 진흙 자국이 당시 상황을 보여줬다.

이 씨의 자택엔 진흙이 가득했고 냉장고와 TV, 가전제품이 바닥에 누워있었다. 이 씨는 “마당에 있던 장독대가 왜 싱크대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지 마치 도깨비가 장난을 친 것 같다”고 실소를 터트렸다.

 

이 씨의 자택 모습. 냉장고가 누워있다.
이 씨의 자택 모습. 냉장고가 누워있다.

 

궁평리 주민들은 수해를 키운 원인에 인근 오송역세권 개발공사를 짚었다. 400여 미터가량 마을과 인접한 ‘오송역세권개발현장’의 차단벽이 순식간에 들어찬 강물의 배수를 막았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개발로 인해 인근 논을 다 돋우고(흙을 채워) 건물을 세우니 넘친 물을 수용할 곳이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공사 관계자는 “공사 계획에 따라 흙을 보강해서 역세권 공사 구역과 기존 마을의 높낮이 차이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을 인접지는 사업지구 밖으로, 기존 배수관과 사업단지 내 배수로와 연결만 되어있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개발 계획으로 인한 공사 경계와 마을의 높낮이 차이가 배수를 막아 인접 마을의 침수 피해를 키웠다고 추측할 수 있다.

 

 

“머리털 나고 이런 일은 처음”

오송에서 50여 년째 살고 있다는 A 씨. 그는 지난 15일 오전 순식간에 불어난 물로 어찌해볼 도리도 없이 몸만 간신히 빠져나온 상황을 전했다. 오전 7시경 거센 빗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와 보니 상황이 심각했고 발목에 차던 물이 종아리까지 차는 데는 불과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갑자기 물이 차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양파, 고추, 마늘, 장독들이 너무 아깝고. 당장이라도 가서 뭐라도 하고 싶지만, 다리가 아파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하수구가 역류해서 냄새도 나고.”

 

17일 점심에 제공된 이재민 식사. 

 

이재민들은 오송읍 직원들이 건네는 식사에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도 “저걸 또 먹어야 되나”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B 씨는 “여기 계신 분들 대부분이 60~70대예요. 그런데 도시락 메뉴가 돈가스 같은 튀김 종류더라고요. 소화도 안 되고…. 아무래도 죽을 배달시켜 드셔야 할 것 같아요. 어른들에게 적합한 메뉴를 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전했다.

C 씨는 “어른들 대부분이 너무 놀라서 힘들어하세요. 시에서 청심환이라도 하나씩 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15~16일 이틀간 폭우가 휩쓸고 지나간 오송리 마을은 처참했다. 물에 잠겼던 논들이 일부 모습을 드러냈지만, 밭과 비닐하우스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D 씨가 참깨 농사를 지었던 비닐하우스에서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진흙 덩어리가 뒤덮여 있었다.

오송읍 복지회관을 벗어난 상황도 심각했다. 강내면 탑연삼거리에서 한국교원대 후문까지 침수되면서 인근 식당가의 피해가 컸다.

 

강내면 일대 침수피해 수습이 한창이다.

 

지지부진한 미호천 공사가 불러온 '인재'

한편 수재민들은 이번 사고를 ‘인재’라고 표현했다. 지지부진한 미호천교 공사가 일을 키웠다는 것. “미호천 공사를 6~7년째하고 있는데, 공사만 일찍 끝났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건데”라며 지나가던 주민이 말을 얹었다. 대피소 주민들은 몇 년 전에 끝날 공사가 예산 부족으로 장기간 소요되면서 결국 재난을 키웠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궁평고가차도 옆 가교에 부유물들이 걸려있다.

 

궁평·오송리 마을 주민들을 비롯해 오송읍 복지회관에는 39명의 이재민(17일 12시 기준)이 돌아가지 못하고 머물고 있다.

대다수가 고령의 노인으로 머리가 새하얗게 샌 이들이 다수다. 거동조차 어려운 노인들에게 열악한 대피소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들은 지자체의 신속한 지원과 관심을 호소했다.

 

오송리 한 과수원 모습, 과수들이 잠겨있다.
오송리 한 과수원 모습, 과수들이 잠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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