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4일 청주지역 박물관 돌아보는 첫 행사 가져
충청리뷰·참여연대 월1회 주최…연말 자료집 발간

2013 청주역사문화기행①

<충청리뷰>와 충북참여연대가 주최하고 서울고속이 후원하며 충북참여연대 문화위원회가 주관하는 ‘2013 청주역사문화기행’이 시작됐다.

이번 청주역사문화기행은 시민들에게 도내 청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의식을 일깨워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취하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과 문화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하는 데 그 첫 번째 목적이 있다.
이와 더불어 지역의 문화유산 보전과 전승 방안을 모색하고 지역의 문화를 시민의 눈높이에서 평가하고 더 좋은 대안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청주역사문화기행은 선사·삼한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9개로 시대를 나눠 이달 3월부터 매달 한 달에 한 번씩 모두 9번에 걸쳐 답사를 진행한다. 또 답사를 모두 마무리 한 뒤 오는 12월에는 충북참여연대 동범실에 모여 답사에 대한 소기의 성과작업으로 책자를 발간 할 예정이다.

답사는 대부분 청주 시내 여러 박물관들과 인근 유적지 등에서 진행하며 특별히 4월과 10월에는 태백산백 문학관과 이병주 문학관도 답사 할 계획이다.

▲ 강태재 충북참여연대 상임고문이 충북대박물관 앞에 놓여 있는 고려견상의 사연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충북대박물관·부모산성 등 답사

지난 24일 오전 9시, 답사단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기대와 설렘으로 상기된 표정인 시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제 막 걸음을 뗀 아이를 비롯해서 가족 단위로 오는 참가자, 최근 정년을 앞두고 교편을 내려놓은 전직 교사까지 연령도 다양했다.

이날 해설사로 재능기부를 해 준 강태재 충북참여연대 상임고문은 “오랜 기간 이 지역에 살면서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관심을 가지니까 공부하게 되고 그러면서 더욱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강 고문은 이어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나온 문장을 예로 들며) 관심을 가진(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고 언급 한 뒤 “지금까지 역사는 오랫동안 임금, 수도 중심이었다. 이번 답사에서는 민중의 시각과 풀뿌리 지역 중심에서 설명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날 ‘동굴에서 하천으로’이란 제목으로 진행한 프로그램에서 답사단 일행은 충북대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 정북동토성, 부모산성 등을 차례로 답사했다.

충북대박물관에서 일행은 흥수아이 1호를 비롯해 흥수굴 석기, 동굴곰, 쌍코뿔이, 단양수양개 유적, 남한강 유역의 여러 구석기 유적 등에 대해 박물관 오욱진 조교를 통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답사단 한 참가자가 유적지는 어떻게 발견되고 보존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오 조교는 “도로가 놓이거나 산업단지가 세워지기 전에 지표조사를 한다. 이를 통해 유적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부분적으로 시굴을 해 본다. 이후 유물이 나오면 발굴 지역을 보존하고 유물은 박물관 등에 보존한다”고 답했다.

충북대 박물관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여러 석상 앞에서 역사 강의가 짧게 진행되기도 했다. 강 고문은 “여기 있는 김학응 충북지사 송적비는 충북대가 이곳에 터를 잡을 수 해 준 감사의 표시에서 새워진 비석이다. 하지만 김 지사가 친일파인 것이 밝혀지고 난 후, 땅에 파묻히기도 했다가 다시 꺼내 세운 것”이라고 밝혔다.

고고히 서 있는 고려견상에 대해서도 “옛날 남석교에서 발견된 이 고려견상은 가치를 당국 관계자들이 몰라 구석에 쳐 박혀 있다가 이렇게 가장 잘 보이는 것에 위치하게 됐다”며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지역에 숨겨져 있는 문화재를 가치 있게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 ‘2013 청주역사문화기행’답사단 일행이 충북대박물관에서 박물관 오욱진 조교의 설명을 듣고 있다.

내 고장에 대한 애정 더욱 커져

답사단 일행은 청주국립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답사단 일행은 강 고문의 해설을 통해 선사시대부터 철기 삼한 삼국 시대로 이어지는 흐름을 발견해 나갔다.

충북지역은 기원 전후한 시기부터 마한의 여러 소국이 있었다. 이후 점차 백제 고구려 신라의 치열한 접전과 교류 속에서 삼국의 문화가 중층적으로 남아 다양하고 독특한 문화를 이뤘다. 삼국시대 말부터 신라문화가 빠르게 퍼졌으며, 충주 국원소경(중원경), 청주에 서원소경(서원경)이 설치되는 등 정치 군사 행정적인 면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됐다.

강 고문의 ‘백제 덩이쇠’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강 고문은 “다른 지역의 무덤에서는 보통 10~20매씩 일정한 묶음 양식으로 출토되는 특징을 보이는데, 우리 지역의 탄금대토성에서만 5매씩 8묶음으로 40매의 덩이쇠가 출토됐다”고 말했다. 그만큼 우리 고장에서 철이 많이 발견되었거나 사용했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백제의 덩이쇠에 관해서는 ‘일본서기’ 신공기에 언급되어 있다. 4세기 중반 근초고왕이 왜에 보낸 물품에 덩이쇠 40매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덩이쇠는 화폐와 같이 사용되었고, 그 유통단위가 5매, 10매, 40매 형식으로 사용했음을 추정하고 있다.

국가지정 사적 제 415인 정북동토성은 한국초기의 토성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는 곳이기도 하다. 강 고문은 “풍납토성, 위례토성 등 국내에 여러 토성들이 있지만 그 모양을 지금까지 완벽하게 갖춘 곳은 정북동토성 뿐”이라고 강조했다.

강 고문의 설명을 들으니 더욱 삼국시대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이 토성을 잘 보전하고 사랑하는 것이 후세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처럼 느껴졌다.

▲ ‘2013 청주역사문화기행’답사단 일행이 첫날 일정인 24일 오후 정북동토성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이 토성은 미호천의 남쪽 평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금강유역에 있는 유일한 네모꼴 토성이다.  둘레 675m 크기이며 1.6~1.7m의 간격으로 성벽의 안팎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사이를 나무판자로 구분하여 흙과 진흙을 교대로 다져 쌓은 판축 기법으로 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벽의 중앙에는 문을 두었는데, 특히 남문과 북문은 성벽을 어긋나게 만들어 옹성의 구실을 하도록 했다. 네 모서리에는 높고 넓은 각루터가 있고, 문터와 모서리 사이마다 치성을 하나씩 만들어 방어력을 높였다. 성벽 바깥에는 너비 25m의 해자를 만들어 물을 채웠다고 한다.

정북동토성에서 강 고문의 설명을 통해 남서남북으로 나있는 청주의 산맥을 둘러보니 새삼 내 고장에 대한 애착이 더욱 생기는 것만 같다고 한 참가자는 말하기도 했다.

강 고문은 “보통 성은 산에 위치해 있는데, 이 토성은 평지에 있다”며 “그 이유에 대한 평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아마도 첫째 물이 가까운 곳이고, 당시 상당현의 전초기지로 이 길(오늘날 19번 국도)로 가야국까지 갈 수 있는 길이라서 성이 세워지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고 덧붙였다.

이어 답사단 일행은 이날 마지막 답사 일정으로 부모산성을 찾았다. 강 고문은 부모산을 오르며 이 산의 비화를 들려주기 했다. 부모산은 본래 아양산이라고 부르던 산으로 산봉우리와 동쪽 계곡을 감싸고 돌로 쌓은 산성이다. 고려 말기 몽고 침입 때 고을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했는데, 성안에서 샘물이 솟아 나와 모두 살아났다고 전해진다. 이후 그 은혜가 부모와 같다는 마음에서 부모산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샘은 어머니의 젖과 같다 해서 모유정이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이 산성은 미호천변의 넓은 평야지역을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청주지역을 통치하는 한편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백제의 성이다. 발굴조사 결과 산성이 축조되기 이전의 삼국시대 초기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백제시대에는 토성으로 축조되었다가 통일신라시대에 석성으로 개축되었고 고려시대 이후에는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성의 둘레는 1135m, 높이는 6m, 너비는 6.4m다.

강 고문은 “부모산에 묘가 너무 많고 통신시설이 시민들의 발걸음을 막고 있다”며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 할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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