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3월 8일, 뉴욕의 루트거스 광장에는 방직공장 여성노동자 1만 5천명이 몰려와 빵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습니다. 악취 가득한 지하실에서 출입문도 잠긴 채 먼지를 들어 마시며 지옥 같은 악조건 속에서 하루 14시간 일해야했던 가난한 여성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트라이앵글이라는 한 피복회사의 여성노동자 146명이 화재로 타죽는 처참한 사건을 목격하면서 열악한 노동조건에 분노해 일어섰던 것입니다.

여성노동자들은 “노조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 “임금을 인상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무장한 군대와 맞섰습니다. 이들의 외침은 노동자로서뿐 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피맺힌 절규였습니다.

당시 미국의 여성들은 정치에 참여할 권리조차 없는 완전한 무권리 상태였습니다. 때문에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는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없으며 특히 여성노동자들은 기업주의 착취와 억압을 저지할 길이 없음을 자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성들이 성별, 종교, 민족의 차별을 두지 않는 보통선거권을 주장하였다는 것은 노동자의 권리와 여성의 인간다운 권리를 찾기 위해서 선차적인 과제였습니다.
1910년 전세계적으로 성장한 진보적인 여성노동자들은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미국 섬유노동운동의 기폭제가 된 3·8시위를 매년‘세계여성의 날’로 기념할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매년 3월 8일이 되면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집회를 갖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거리를 행진하며 여성의 정치적 자유와 평등을 외쳐오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1920년대부터 3·8기념행사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중지됐다가 해방 뒤 부활됐으나 1948년 정부수립 후 다시 맥이 끊겼다 30여 년이 지난 1985년 여성단체들이 연대하여 ‘민족자주, 민중과 함께 하는 여성운동’이라는 주제로 제1회 여성대회를 개최한지 올 해로서 스무 해를 맞았습니다.

충북에서는 1997년 여성단체주관으로 기념행사를 시작한지 올 해로서 8회 째를 맞았습니다. ‘3·8충북여성한울림’은 민주노총과 공동으로 5일 청주 철당간 광장에서 3백여 명의 여성들이 참석,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올해의 캐치프레이즈 역시 ‘여성, 주변에서 중심으로! 차별에서 평등으로!’였습니다.

이날의 여성대회 역시 당면한 여성의 현실을 진단하고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중점과제를 선정해 공동실천의지를 모아내는 단결과 연대의 자리였다는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어느 나라이건 인구의 절반은 여성입니다. 남존여비라는 고약한 유교문화의 폐해이지만 우리 나라처럼 여성을 비하하고 천시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은 오히려 여존남비의 전통이 전해오고 있으니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세상은 21세기를 구가하지만 이 땅의 여성들은 아직도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차별 속에 업신여김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성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양성평등입니다. 그런데 그 양성평등은 여성들의 운동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인류 보편의 가치에 입각해 남성이 여성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양성평등은 가능해 질 것입니다. 양성평등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남성들이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여성의 소중함을 알 것입니다. 나의 부모를 낳아준 할머니도 여성이요, 나를 낳아준 어머니도 여성이요, 사랑하는 아내도, 딸도 여성이지 않느냐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렇게 어렵습니까.

우리의 아내들이, 딸들이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차별 받지 않고 눈물짓지 않는 세상, 그리고 여성의 날이 필요 없는 세상은 바로 우리 남성들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 본사고문 kyh@cb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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