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평동 매달 열리는 벼룩시장, 기부문화 실천의 장
중고용품 기증하거나 수익금 모아서 불우이웃돕기

1942년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탄생한 ‘옥스팜’은 영국 옥스퍼드 주민들이 나치스 치하에서 신음하는 그리스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만든 구호단체로 전쟁이 끝난 뒤에도 난민구호에 발벗고 나서면서 80여개 국가에, 3만명에 가까운 자원봉사자들이 일하는 국제적인 빈민구호단체로 성장했다.

옥스팜은 영국과 유럽 내 840여곳에서 운영하는 자체 중고품 점포에서 나오는 수익이 재정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가정에서 쓸모를 잃은 중고품을 기증받은 뒤 이를 손봐 되파는 방법으로 ‘나눔과 자원의 순환’이라는 생활혁명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에 옥스팜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2002년 3월에 문을 연 ‘아름다운 가게’가 있다. 아름다운 가게는 현재 전국에 60여개 매장을 열었으며, 매주 토요일 뚝섬유원지에서 벼룩시장을 열고 있다.

아직 아름다운 가게 지역본부가 설립되지 않은 충북지역의 경우에는 지난해 11월부터 청주시 흥덕구 산미분장동 주민자치위원회와 청주환경운동연합 등 7~8개 주민조직, 환경단체가 힘을 모아 분평동에서 매달 한차례 ‘아름다운 장터’를 열고 있다. 용암동, 개신동 등 청주시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아름다운 장터를 취재했다. [편집자]

3월25일 오후 1시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 분평지구대 옆 빈터에서는 일대 난장이 벌어졌다. 장이 선 시간은 2시간여에 불과했지만 1000여명이 넘는 주민이 다녀갔으니 웬만한 시골장터와 견줄 바가 아니었다.

여느 장터와 다른 점이 있다면 흥정에 능수능란한 장꾼들이 아니라 평소 가지고 놀던 장난감과 인형을 들고나온 조무래기에서부터 쓸모를 잃은 가재도구를 싸들고 나온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이 손수 마련한 ‘벼룩시장’이었다는 것이다.

매달 한차례 열리는 분평동 벼룩시장의 공식 명칭은 ‘아름다운 장터.’ 줄여서 부르는 이름은 ‘아장터’다. 아장터는 2005년 11월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분평 주공 6단지 주민들이 자전거 거치대에 방치된 고장난 자전거 130여대를 수거해 동사무소에 기증하면서 100대는 고철로 처리하고 30여대는 수리해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나눠준 것이 그 시초였던 것.

매달 네 번째 토요일에 장터를 연다는 원칙에 따라 12월24일 열린 두 번째 장터에는 산미분장동 주민자치위원회와 아파트 입주자대표 연합회, 자연환경보전협의회, 자원봉사대, 청주환경운동연합, 자원순환시민연대 등이 함께 참여해 ‘그린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으로 장터를 열었다. 기증받은 물품을 판매해 얻은 수익금과 장꾼들이 내놓은 기부금은 모두 85만원에 달했으며, 전액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사용됐다. 설 명절 때문에 한 달을 쉬고 2월25일에 열린 아장터에는 700여명이 다녀갔다. 2월 아장터에서는 특히 기증품에 대한 경매가 열려 전기 전골냄비, 인덕션 레인지 등이 1만원 이상의 고가(?)에 팔려나가기도 했다. 청주환경운동연합 함선녀(32) 자원순환부장은 “2월 아장터는 ‘새학년 학생용품 나눔장터’라는 주제로 열려 초등학생들이 대거 참여했다”며 “분평동 지역 초등학생들이 교육적인 측면에서 장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학교와 협의를 마쳤다”고 말했다. 용암동 등 거점지역으로 확대
분평동에서 성공을 거둔 아장터는 용암동과 개신동 등 아파트가 밀집돼 있는 청주시내 거점지역으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4월8일 아장터를 여는 용암1동은 새마을부녀회에서 벼룩시장을 준비하는 과정에 환경운동연합이 결합해 함께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용암1동은 앞으로 매달 두 번째 토요일에 장터를 열 계획이다. 이밖에 개신주공 1차아파트 주민들도 앞으로 정기적으로 아름다운 장터를 준비할 예정이다.

참가자들은 이처럼 아장터가 자연발생적으로 확산되는 것에 대해 ‘유익하면서도 즐겁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헌 물건 기부하기, 재사용하기 등을 통해서 환경의 중요성과 나눔의 문화를 몸소 체험하는 것은 물론, 어린이들은 비즈니스에 대한 산교육의 기회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분평동에 사는 윤미경 주부는 환경련 홈페이지에 “아장터가 집에서 안쓰는 물건을 판다고 해서 깨끗하지 않으면 사가지 않더라”면서 “아이들이 작아서 쓰지 못하는 모자를 정리해두고, 분갈이를 마친 화분도 잘 닦아두어야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또 현장에서 만난 중학생 임종범 군은 “작년에 보던 참고서인데, 동생이 없어 후배에게 주려고 가지고 나왔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거래되는 물품은 옷, 책, 그릇, 가방, 신발, 인형 등이 주류를 이루지만 간혹 러닝머신, 청소기 등 고가의 제품이 등장하는데,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초특가임에도 다시 한번 흥정이 가능하다. 기부방식은 주최 측에 아예 물건을 기부하거나 판매수익 가운데 원하는 만큼을 희사하면 된다.
함선녀 부장은 “장터가 거점이 되는 동네로 계속 확산돼 주민들 누구나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장터의 경매사’ 김승구씨이벤트 회사 운영하며 환경련 궂은 일 도맡아“유명 인사들의 애장품 기증을 기다립니다”
아장터에서 깜짝 이벤트로 ‘경매’를 진행하는 김승구씨(36·가나이벤트 대표)는 10년 동안 청주환경운동연합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특기와 적성을 살려 그동안 환경련의 각종 행사를 독점해(?) 왔다.

독점이라고 하지만 틈나는 대로 자원봉사를 하거나 실비만 받기 때문에 ‘밑지는 장사’를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씨가 이벤트 회사를 운영하게 된 것도 충북대 재학 시절 노래패와 춤패에서 활동하면서 메가폰 선동 등으로 다져진 실력이 밑바탕이 됐다. 또 정외과 선배인 염형철씨, 과 동기인 박창재씨 등이 내리 청주환경련의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환경운동연합의 회원이 됐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계기로 청주에 눌러앉게 된 김씨가 아장터 사업에 발을 담그게 된 것은 상경길에 우연히 ‘아름다운 가게’에서 운영하는 뚝섬 벼룩시장을 구경하게 되면서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벼룩시장을 통해 초등학생 때부터 시장경제에 대한 체험적인 이해를 높이게 되고 나눠쓰는 마음, 돕는 마음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또 경매를 통해 기증품을 처분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장터에 나온 주민들에게 웃고 돌아갈 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김씨는 “철저하게 깜짝 이벤트로 진행되는 행사인 만큼 지역의 명사들이 애장품을 기증해준다면 행사가 더욱 빛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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