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스쿨미투 잔혹사] 2부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② '나 홀로' 가해 교사 변호사 상대하는 피해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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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여중 성폭력 가해 교사들이 지난 2월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 및 법정구속, 벌금 300만 원과 관련 기관 취업제한 3년을 각각 선고받았습니다. 두 교사는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학생들이 입은 2차 피해는 심각했습니다. 가해 교사의 협박이 담긴 음해 편지, 동료 교사와 가족의 협박과 회유까지. A를 비롯한 학생들은 2차 피해를 감당하며 재판에 임해 승소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교사 한두 명 처벌받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고 말합니다. 여전히 자신들이 고발한 교사가 아무런 처벌 없이 '선생님'으로 교단에 서 있다고 전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교직사회와 학교, 교육청의 방관과 묵인이 학교를 '그래도 되는 곳'으로 만들었다고 학생들은 말합니다. <충북인뉴스>가 충북 스쿨미투 잔혹사 '1부-교복을 벗고 법정에 서다' 후속으로 '2부-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를 연재합니다.

지난 기사 보기 ▶내 나이 열다섯, 증인소환장을 들고 벌벌 떨었다

재판에 피고인으로 선 충북여중 교사 2명은 지난 2월 열린 1심 선고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다. 2018년에 스쿨미투가 번진 또 다른 학교인 충주여고 교사 2명도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오는 4월 29일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 재판부의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지난달 25일 있었던 1심 공판에서 검사는 두 교사에게 각각 벌금 500만 원을 구형했다.

학생들이 지난 2년 전 고발한 교사들의 유무죄를 다투는 일은 2020년인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그 사이 피해 생존자 중 일부는 학교를 떠났고, 일부는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성인이 됐다. 학생 개개인의 상황과 모습은 변했지만 선생님의 잘못된 언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만은 변하지 않았다.

재판에 간 모든 사건은 공교육 현장에서 교사가 학생을 상대로 저지른 (성)폭력이다. 그런데도 피해 생존자들은 재판 과정을 긴 시간 동안 오롯이 혼자 감당하고 있다. 재판 동행, 법률구조공단 연계 등의 내용이 담긴 교육부의 피해 지원 가이드라인이 있었지만, 충북교육청은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다.

전문가는 지원의 부재가 재판 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조력자 없이 홀로 재판에 참여하다 보니 새로운 주장이나 적극적인 반론을 펼치기가 힘들다는 설명이다. 가해 교사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펌이 보호하는 가해교사, 미투 생존자는 '나 홀로'

<충북인뉴스> 취재 결과, 스쿨미투 피해 생존자의 대다수는 재판 준비를 하지 못했다. 신문 내용을 예측하지 못한 학생들은 상대 변호사의 날 선 추궁에 오래전 기억을 더듬었다. 가끔은 중요한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일도 있었다.

충북여중 재판에 참여한 학생은 "듣기 거북한 질문도 있었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다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충주여고 재판에 참여한 졸업생도 "재판에 대해 주변에 물어볼 곳도 없어서 준비를 아예 하지 못했다. 그냥 가서 묻는 말에만 기억대로 진술하고 왔다"고 말했다.

충주여자고등학교 교사 2명에 대한 1심 재판이 열리고 있는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 ⓒ충북인뉴스 계희수
충주여자고등학교 교사 2명에 대한 1심 재판이 열리고 있는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 ⓒ충북인뉴스 계희수

반면, 교사 측은 무죄를 받거나 형량을 낮추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 자기방어를 위해 변호인 도움을 받는 건 피고인의 권리다. 빠르면 경찰 조사 단계부터 교사 옆에 변호사가 대동했다. 재판 진행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로펌과 변호사를 수차례 바꾼 교사도 있었다. 교사 개인당 적게는 1명, 많게는 4명의 변호사를 선임해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했다.

일부 가해 교사 측 변호사들은 피해자로 법정에 선 학생들을 흠집 냈다.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려는 시도다. '대학 입시 스펙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혹은 '인권단체의 사주를 받아서' 스쿨미투 운동을 했다는 주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권 운동(스쿨미투 운동을 지칭)을 하면 대학 입시에 유리한 점이 있느냐고 상담 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가?" - 충주여고 1심 재판, 피고 측 변호사의 피해자 신문 내용

"전수조사에도 (피해 사례가) 나타난 게 없었는데 유독 피고인에 대한 그 내용이 누군가에 대해 사주 받은 듯이 공통적이고(중략) 신빙성이 없다고 본다." - 충북여중 1심 재판, 피고 측 변호사 변론 내용

이런 상황에서 피해 생존자들의 '입'은 없었다. 이들에 대한 근거 없는 모함은 계속됐다. 교사 측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때론 유리한 대로 왜곡하며 학생들을 공격했다. 생존자들은 상대 교사, 변호사의 신문과 변론을 지켜보면서 (성)폭력과는 또 다른 차원의 상처를 떠안았다.

충주여고 졸업생 C씨는 "(대학 입시 스펙을 위해 인권운동을 한 걸로 추측하는 듯한) 변호사의 질문을 받는 순간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었고 정말 불쾌했다. 인권운동가들이 이런 취급을 받겠구나 싶었다. 오히려 스쿨미투 이후 교내에서 불이익을 받았는데, 누구를 통해 이야기가 그런 식으로 전해진 건지 궁금했다"고 털어놨다.

학생들은 교사 측의 주장과 그들이 제출한 증거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다. 교사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추가적인 증거를 제출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생존자 대부분은 자신에게 이를 알 권리가 보장돼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몰랐으니,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재판 기록에 대한 피해자의 열람·등사권을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는 피해자의 재판 진술권도 보장돼 있다.
 

형사소송법 제294조의4 제3항 “재판장은 피해자 등의 권리구제를 위해 소송기록의 열람 또는 등사를 허가할 수 있다”

헌법 제27조5항 “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

법을 알고 있어도 형사 재판 피해자가 담당 검사를 만나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우선 검사를 만나기 위한 진입장벽부터가 매우 높았다. 성폭력 재판이 피해자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건, 우리 형사사법절차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더군다나 스쿨미투 피해 생존자들은 만 18세 이하의 청소년들이다.

사실 충북여중 피해자들에게는 배정된 국선 변호사가 있다. 하지만 국선 변호사에게 세심한 변론과 보호를 바라는 건 무리였다. 청주의 한 법조인은 그 이유를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법원의 일반 국선 변호사는 사선 변호사가 겸하는 구조다. 건당 보수가 지급되는 방식이다 보니 일을 덜 해도 손해 볼 게 없는 데다, 법무부가 국선 변호 보수를 낮게 책정해 양질의 변호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변호사 개인의 선의에 기대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국선 변호사가 붙었어도 현실적으로 도움받기가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충북여중 스쿨미투 운동을 주도하고 지금은 청소년 인권 운동을 하고 있는 A의 경우, 스스로 증거를 찾고도 제출할 방법을 몰라 며칠을 헤맸다. A는 검찰과 법원 양쪽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한 끝에 청주지방검찰청을 직접 방문해 새로운 증거를 낼 수 있었다. 가해 교사 측이 제출한 증거도 A가 법원을 찾아 확보했다.

교육청도 형사사법절차도 스쿨미투 피해 생존자들을 외면하는 사이, 학생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다.

ㅇㅇㅇ청주지방검찰청에 방문해 증거를 제출하고 있다 ⓒ충북인뉴스 계희수
충북여중 스쿨미투 운동 후유증으로 자퇴하고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A가 청주지방검찰청에 방문해 증거를 제출하고 있다 ⓒ충북인뉴스 계희수

 

전문가들 "재판 결과 기대 못 미칠 가능성 커져"

전문가들은 청소년인 스쿨미투 피해 생존자의 '나 홀로' 재판이 판결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학생들의 기대만큼 형량을 이끌어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문가들은 생존자들의 재판 준비나 신문 과정에 전문가의 조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기자와 함께 A의 증인 신문에 동행했던 청주 여성의전화 김현정 소장은 "성폭력 생존자가 피해자로서 조력인의 보호 아래 재판에 참여하는 일은 판결 결과를 결정할 만큼 굉장히 중요하다"고 단언했다.

김현정 소장은 "학교 특성상 범죄 당시 CCTV 등의 물증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는 전문가와 일기나 노트 기록, 정황 등을 떠올리며 증언 내용을 점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에 들어갈 때도 상대 변호사가 법률용어를 써 가며 추궁하면 성인이라도 심리적으로 위축되는데 이런 정보를 알고 조력자와 미리 대비하고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그러면서 "우리나라 법원은 적극적으로 자기가 권리를 찾아서 요청해야 보호받을 수 있어서 전문가가 꼭 필요한데 청소년들은 제도도 모르고 교육청에서도 알려주지 않아 보호받지 못하고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다수의 성폭력 피해자를 변론해온 박아롱 법률사무소의 박아롱 변호사는 "피해자 혼자 재판에 서면 심리적으로 위축돼 하고자 하는 주장을 다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충분히 보호돼야 할 피해자로서의 권리가 있는데, 조력자가 없으면 절차적 보장이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재판 과정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2차 피해에도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는 게 박 변호사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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