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스쿨미투 잔혹사] 1부 스쿨미투, 교복을 벗고 법정에 서다
③스쿨미투 공론화에 돌아온 말 "중증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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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26일, 한 통의 메일이 왔습니다. "오랜만에 연락해 죄송하다"며, 아주 사려깊고 예의 있는 인사로 글은 시작됐습니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지난해 3월에 제가 인터뷰했던, 충북여중 스쿨미투 SNS 계정주인 A 학생이었습니다. 충북여중 스쿨미투는 지난 2018년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충북지역 학생들의 미투운동입니다. 학생들은 선생님과 학교의 (성)폭력을 낱낱이 고발했고, 일부는 경찰조사를 받거나 직위해제 됐습니다.

A는 법원으로부터 '증인소환장'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재판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막막하다고도 했습니다. 조금 미안했습니다. 여론의 눈이 쏠려있을 때만 찾고, 잠잠해지니 나 몰라라 한 것 같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A와 대화를 이어나갔을 때는 화가 났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받고자 떠오른 사람이 '기자'라니.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당한 일을 용기 내 고발한 학생이 처한 현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A와 재판 전 과정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법정에 선 A와 충북여중 스쿨미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국 '스쿨미투'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모든 일의 집약일 겁니다. 교육현장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충북여중 스쿨미투' 그 이후를 A와 함께 기록합니다. 

【이전 기사 링크】 ①법정에 선 선생님은 아이들을 비난했다
                                    ②미투 교사는 피고인석에서도 제자를 매섭게 다그쳤다

지난해 10월 7일, 청주지방법원이 보낸 증인소환장이 A의 집에 날라 왔다. 한 달쯤 지나서야 아버지는 소환장을 A에게 내밀었다. "네가 증인으로 안 나갔으면 좋겠다"라는 말과 함께였다. 받아 든 등기 봉투에는 아버지 앞으로 온 두 통의 편지도 들어있었다. 발신인은 익명이었다. 대충 봐도 수 십장은 돼 보였다. A는 첫 장을 대충 훑었다. 이런 내용이 읽혔다.

"충북여중 스쿨미투의 매우 사악한 학생들의 허위진술로 인해 매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시고 계십니다. 그 중심에 아버님의 딸인 00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A의 머리는 생각을 멈췄다. 가족들 앞이라 덤덤한 척 애썼다. 하지만 속은 그렇지 못했다. A 심장이 요동쳤다.

충북여중 스쿨미투 공론화 계정주 A의 아버지 앞으로 익명의 편지 두 통이 배달됐다. 편지를 사진으로 찍은 사진이다. ⓒA씨 제공
충북여중 스쿨미투 공론화 계정주 A의 아버지 앞으로 익명의 편지 두 통이 배달됐다. 편지를 사진으로 찍은 자료 ⓒA씨 제공

편지봉투 발신인 자리는 비어있었지만 본문에는 신분을 밝히고 있었다. 발신인은 스스로를 충북여중 김00 교사의 제자들이라고 했다. 김 모 교사는 A를 비롯한 학생들이 성추행 가해자로 고발한 교사다. 김 교사는 퇴직 후, 현재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강제추행)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편지를 받았을 당시 A는 피해자 신분으로 김 모 교사 재판의 증인 출석을 앞두고 있었다.

발신인은 자신들이 "대단히 바쁜 고3 학생들"이라고 밝혔다. 무고한 선생님을 돕고 싶어 편지를 보낸다고 했다. 두 통의 편지 분량을 합치면 17페이지나 됐다. 일부는 발신인이 A의 아버지에게 전하는 말을 워드로 타이핑한 것. 일부는 스쿨미투가 '허위'라는 걸 입증해준다는 자료들이었다. 편지글은 고3 학생이 썼다고 보기에 다소 어색한 표현이 많았다. 혐오적 언어가 차고 넘쳤다.

거기에 스쿨미투를 기획한 마녀가 있었다

발신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A의 아버지를 청자로 삼았다. "딸이 얼마나 죄질이 나쁜 아이인지 알려주겠다"고 했다. 발신인은 충북여중 스쿨미투가 철저히 '기획'됐다고 주장했다. 기획을 맡은 주인공으로 트위터에 충북여중 스쿨미투 공론화 계정을 만든 A가 지목됐다. 오해를 막기 위해서 편지 본문을 기사에 그대로 옮겼다. 

"아버님께서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충북여중 스쿨미투 기획, 연출, 선동의 총 책임자는 000아버님의 딸입니다. (중략) 트위터 두 개의 계정을 만들어 학교를 농락하고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교사를 조롱하고 충북여중 학생회를 무력화 시키고 멋대로 공론화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허위 강령까지 만들기 위하여 페미니스트 외부 단체를 끌어들이고,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트위터에 올려 우리 모교인 충북여중을 완전히 남자선생님들이 강제 추행하는 학교라는 것을 전국에 인식시킨 대단히 죄질이 나쁜 아이입니다."

편지는 A에 대한 비방으로 가득했다. "대단히 죄질이 나쁜 아이", "16살 밖에 안 된 학생의 영혼이 그렇게 타락할 수 있는지", "양심이라고는 없는 철면피" 같은 모욕적 표현들이 빼곡했다.

충북여중 스쿨미투 공론화 계정을 만든 A의 아버지 앞으로 배달된 익명의 편지.  ⓒA씨 제공
충북여중 스쿨미투 공론화 계정을 만든 A의 아버지 앞으로 배달된 익명의 편지 내용 ⓒA씨 제공

비방뿐만이 아니었다. 편지에는 A를 겁박하기 위한 허위사실도 다수 포함됐다. '충북여중 교내 성폭력 공론화' 계정을 캡처한 사진에는 SNS 상에서 전개된 스쿨미투 고발이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메모를 달아 놓았다. A가 경찰에 거짓을 말했다는 근거 없는 내용들이 편지를 통해 A의 가족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자신이 사활을 걸고 모든 책임을 질테니 재학생, 졸업생 제보를 받는다고 해 놓고 제보가 없자 자신과 주변 친구들을 선동하여 경찰에 허위 진술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페미니즘은 '질병'

A가 '페미니스트'라는 점은 그가 스쿨미투를 '기획'했다는 근거가 됐다. 발신인은 A를 "극심한 페미니스트"라고 명명했다. 그리고는 거짓 미투를 진실로 생각하는 것이 A를 비롯한 "중증 페미니스트의 공통된 증상"이라고 진단했다. 발신인은 페미니스트를 일종의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로 인식하는듯 했다.

"아직도 자신이 한 행동이 진실이라고 믿고 생활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적어도 SNS상에서는 그렇게 생활하고 있어 보입니다. 그건 중증 페미니스트의 공통된 증상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10월에 충북지방경찰청에서 진술하는 것을 보셨죠? 원래 페미니스트들이 특징이 연기를 그렇게 잘 한다는 겁니다."

발신인은 A가 페미니스트 단체로부터 사주를 받아 스쿨미투를 꾸몄다고 믿고 있었다. 발신인이 A의 '배후 세력'이라고 믿는 곳은 청소년 페미니스트 인권 단체 <위티(WeTee)>이다. 스쿨미투를 계기로 만들어진 <위티>는 전국의 스쿨미투를 연쇄적으로 촉발시킨 주목받는 청소년 단체다. A는 충북여중 스쿨미투 운동 이후 <위티>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충북여중 스쿨미투 공론화 계정을 만든 A의 아버지 앞으로 배달된 익명의 편지.  ⓒA씨 제공
충북여중 스쿨미투 공론화 계정을 만든 A의 아버지 앞으로 배달된 익명의 편지 내용 ⓒA씨 제공

발신인은 A의 SNS에서 <위티> 활동 흔적을 찾아냈다. 익명의 편지는 <위티>를 불순한 단체로 규정했다. <위티>에서 활동하는 A의 사상도 당연히 불량한 것으로 취급됐다. 이 단체가 유해하다는 근거로 양지혜 <위티> 공동대표가 했던 소수자 인권 활동과 연대들이 언급됐다. 

"스스로 자신이 트위터 계정주라 밝혔고 심각한 페미니스트인 것을 아버님은 알고 계신지요. 또 다른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대표(위티) 22살 양지혜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성소수자(동성애자, 양성애자, 게이...)들의 축제에 자주 참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지요?"

"자신의 그런 몹쓸 행동으로 고통을 겪는 선생님과 학교에 대한 반성은 없이 그런(페미니스트, 인권단체) 집단에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는 정신상태는 저희들이 생각할 때는 도저히 양심이라고는 없는 철면피라고 느껴집니다."

편지를 보낸 목적은 결국 A가 바른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A가 김 모 교사 스쿨미투 사건의 피해자로서 증인석에 서는 일을 겁먹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당사자(A 학생)가 진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협박성 발언이 편지 곳곳을 메웠다.

충북여중 스쿨미투 공론화 계정을 만든 A의 아버지 앞으로 배달된 익명의 편지 내용 ⓒA씨 제공
충북여중 스쿨미투 공론화 계정을 만든 A의 아버지 앞으로 배달된 익명의 편지 내용 ⓒA씨 제공

"충북여중 스쿨미투에서 저지른 엄청난 행위는 범죄이고 용서받지 못할 것"

"증언에서 매우 많은 진실을 밝혀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법원의 증인은 경찰청의 진술과는 다르겠죠."

편지의 발신인은 누구일까. '마녀사냥'이나 '빨갱이 사냥'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었다. 열여섯 A가 지은 죄는 단 하나. 교사에게 당한 성추행 피해 사실을 고발하고, 친구들과 함께 스쿨미투 운동을 주도했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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