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기사

지난해 말 불거진 한국전기공사협회 청소노동자들의 해고 문제가 해를 넘겨 진통을 겪고 있다. 교섭에 난항을 겪은데 이어 집회와 천막농성, 급기야 25일부터는 고령의 청소노동자와 공공운수노조 충북본부장이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최강한파 속, 그들은 왜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서 단식을 선택했을까?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는 이번 한국전기공사협회 사안에 △고령노동 △용역 △하청 △비정규직 △노조법 2·3조 등 그동안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가 모두 녹아있다고 주장한다. 기고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편집자 주>

 

2년 전부터 한국전기공사협회(이하 협회)에서 미화 노동자로 근무한 김옥자 씨(가명·66세).

매일 협회 화장실, 교육실, 사무실을 쓸고 닦았다. 특히 ‘화분에는 물을 잘 줘야 한다’는 협회 상무이사 비서의 지시에 따라 화분 물주기는 섬세히 신경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신규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김옥자 씨는 ‘노동조합을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용이 승계되지 않았다. 김옥자 씨가 속한 노동조합은 원청인 협회에 교섭과 면담을 요구했으나 협회는 단칼에 노동조합 요구를 거절했다.

‘우리와 당신들과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당신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정말 협회는 미화 노동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김옥자 씨는 하청의 재하청 노동자였지만, 협회 비서의 지시에 따라야 했다. 협회의 과업 지시서에는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인 청소 방법과 주기가 적혀있다. 협회의 용역업체 입찰 공고 내용에 따라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이 요동친다. 아무리 옥자 씨가 하청 업체에게 임금 인상과 고용 승계를 요구해도, 하청 업체는 ‘그것은 원청의 권한’이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해 대답할 뿐이다.

옥자 씨는 윤석열 대통령이 노란봉투법을 거부했기 때문에 본인이 답답한 상황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은 협회가 옥자 씨의 ‘진짜 사장’이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즉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정의를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하는 내용(2조)을 담고 있다. 만약 노란봉투법이 효력을 발휘했다면, 협회가 이토록 쉽게 옥자 씨의 면담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당한 쟁의행위를 방해하는 손해배상청구

집단해고 위기에 내몰린 옥자 씨와 동료들은 파업에 나섰다. 2023년 12월 27일, 1층 본관 로비 점거 농성을 시작했고 해고자 신분이 된 지금도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정당한 쟁의행위지만 협회는 노동조합 때문에 업무가 방해받고 있다며 가처분을 신청했다.

그러자 옥자 씨 마음에 한 가지 불안감이 깃들었다.

‘협회가 업무방해금지가처분 신청뿐만 아니라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어떡하지?’

옥자 씨의 걱정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수많은 회사가 노동자들의 정당한 쟁의행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거액의 손해배상을 무분별하게 청구해왔기 때문이다. 옥자 씨는 노란봉투법을 거부한 윤석열 대통령이 또다시 원망스러워졌다. 노란봉투법은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의 책임을 개인별로 엄밀히 따져 사용자의 무분별한 손배·가압류 남용을 막는 내용(3조)도 담겨있기 때문이다.

 

다시 노란봉투법 운동이 필요하다

옥자 씨는 업무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이나 손해배상 청구 등이 옥자 씨의 정당한 행동을 방해하기 위함이란 걸 알고 있다. 따라서 옥자 씨는 협회가 아무리 위협적으로 나오더라도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시야가 더욱 넓어졌다. 옥자 씨의 투쟁이 협회를 상대로 한 고용 안정 투쟁에 머무르지 않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 운동으로 확대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실제로 옥자 씨처럼 노란봉투법의 필요성을 인지한 사람이 많다. 국민 중 10명 중 7명은 노란봉투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론조사전문기관 서던포스트가 전국 만 18세 이상 1013명을 대상으로 ‘노란봉투법 개정 관련 국민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 69.4%는 ‘노란봉투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매우 필요한 개정이었다’는 응답이 27.7%, ‘대체로 필요한 개정이었다’는 응답이 41.7%로 나타났다.

만약 노란봉투법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옥자 씨는 원청인 협회에게 더욱 당당하게 면담을 요구하고, 협회도 사용자로서 더욱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에서 보장하는 단체행동권도 더욱 자신감 있게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수많은 옥자 씨는 2024년에도 노란봉투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사장’, 한국전기공사협회가 고용 안정 보장하라

노조법 2‧3조가 개정되지 않았으나, 협회 미화 노동자의 진짜 사장은 한국전기공사협회이다. 협회는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지금이라도 미화 노동자의 대화 요구에 나서고, 고용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 평균연령 66세 고령의 노동자지만, 미화 노동자들은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합할 권리를 쟁취하고, 고용 안정을 보장받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