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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의 교육을 말하다>

오는 9월 말 충북교육청의 제천고교평준화 여론조사를 앞두고 여론이 뜨겁습니다. 공교육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교육환경 개선이 시급하다, 또는 제천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교육이 변해야 한다는 절실함까지 그 의견이 분분하고 다양합니다.

충북인뉴스는 고교평준화와 관련, 제천지역 교육 전문가들의 글을 연속해 싣습니다.

 

문정웅 운트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문정웅 운트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문정웅 운트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저는 제천에서 27년째 살고 있고, 2019년부터 ‘청소년 자치활동 교육플랫폼’ <운트>의 대표로서 청소년 교육과 지역상생을 고민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이 아이를 제천에서 낳아서 키우기도 했고, 또 오랫동안 제천을 포함한 지역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지냈습니다.

제천에서 산다는 것이 여러 가지 좋은 점도 있지만, 또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 바로 교육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 동안 만난 학부모님들의 가장 큰 고민 역시 자녀의 교육문제였습니다. 때로는 안타깝게도 자녀 교육 때문에 제천을 떠나시는 분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길은 무엇일까?

최근 고교 평준화에 대한 여러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목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평준화 문제 이전에 자신들의 삶 자체를 힘겨워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학원에 가야하고, 이유도 모른 채 더 좋은 고등학교,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또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 채 입시라고 하는 큰 파도 속에서 떠내려가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어느 것 하나 선택하지 못하니 자존감도 점점 더 낮아집니다.

제천 지역의 중학생들은, “힘들다”, “갑갑하다.”, “잘 모르겠다.”, “심심하고 지루하다.”, “어떻게 해야 친구를 잘 사귀지?” 대개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습니다. (2020년 운트 자체조사자료) 마음껏 놀고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해보라고 해도 혼자 선택하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그러니 어떤 활동을 주도하는 것은 더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주 “선생님, 그냥 시켜주세요” 라고 말하곤 합니다. 우리 어른들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질문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스스로 자기 삶을 살아가는 것

2025년부터는 고교학점제가 시행됩니다. 이 교육과정의 목적은 자기주도적, 창의적, 혹은 자치적인 청소년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기업이나 대학에서 가장 원하는 인재상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기준은 명확합니다. 고교학점제를 하든, 고교평준화이든, 비평준화이든 상관없습니다. 대학과 기업이 원하는 것은 자기가 스스로 주도해서 자신의 삶을 경영해가는 자치적인 학생을 선발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보다 더 자기주도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지금 아이들에게는 시간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학원에 가고, 중학생 때부터 입시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주도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자기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느냐의 차이라고 봅니다. 나의 스토리를 갖는다는 것은 스스로 선택의 주체가 되고, 다양한 만남을 주도해보는 ‘경험’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진학을 위해 학원에서 혹은 누군가가 대신 써 주는 자기소개서가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나의 이야기”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나 의견이 없이 그저 친구들의 말을 듣고 선택하는 아이들은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는 “나의 이야기”가 있을 수 없습니다.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택의 주체가 되어보고, 다양한 만남들을 주도해보는 경험의 기회 말입니다. 자신을 탐색하고,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보며, 스스로 진로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만 되면 벌써 치열한 입시 경쟁을 해야만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어른들이 평준화냐 비평준화냐 하며 논쟁하는 사이에, 아이들은 정작 필요한 것은 경험해보지 못한 채 세상을 직면해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해야하고, 어떤 것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지 여전히 아이들은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평준화, 비평준화에 대한 것에 있어서도 아이들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혹시라도 이렇게 논쟁을 하는 것이 정말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혹 어른들의 이해관계와 자존심 때문은 아닌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평준화가 옳으냐 비평준화가 옳으냐 하는 논쟁은 그런 점에서 매우 지엽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아이들이 충분히 자신을 탐색하고, 선택할 줄 알고, 다양한 만남을 주도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삶의 여백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을 탐색하고, 다양한 만남들을 주도해보는 경험을 통해 자치적인 아이가 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가 힘을 쏟아야 하는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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