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3월 8일, 빵과 장미를 달라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여성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알고 있나요? 그날 이후 우리 사회 여성 인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충북인뉴스는 '3·8 여성의날 투쟁 충북기획단'이 3·8 여성의날 115주년을 맞아 기획한 연재물 6편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세계 3.8 여성의 날을 앞두고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성평등한 노동현장을 만들어가고자 여성조합원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 및 일터 괴롭힘 사건을 계기로 금속노조 조합원이 되신 이수정 님의 인터뷰 내용을 기고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앞에 계약직 신분의 20대 여성이 얼마나 무력할 수밖에 없는지, 또 용기를 내 관계 기관에 시정을 요구한 피해자가 얼마나 좌절할 수밖에 없는지를 여실히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목소리를 낸 여성에게는 함께 할 노동자들, 지역사회가 있기에 용기를 내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다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합시다!

정리 : 김현이(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총무부장)

# 일용직, 파견직, 계약직으로

저는 올해로 만 27세 된 이수정이라 하고요. 금속노조 조합원입니다. 자동차 부품회사 품질경영팀에서 사무직으로 일했어요. 저희 팀은 중년남성이 15명 정도 함께 일했는데, 그 분들의 일을 서포트하는 사무 보조 일을 했어요. 주로 보고서나 체크시트를 정리하고, 총무 업무를 맡아서 했어요. 처음에는 일용직으로 채용돼서 1년 일하고, 그 다음에는 파견직으로 2년, 그 다음에는 계약직으로 1년 일했어요.

법적으로 문제가 돼서 고용신분을 바꿔가며 저를 채용한 것 같아요. 제가 알기로는 사무직으로 채용된 여성들 중 80%는 저처럼 비정규직에 박봉을 받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 ‘여자라서’

입사 초기부터 듣기 불편한 말을 많이 들었어요. 친구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거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면서 옷차림에 대해 평가를 하거나, 제가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여자애가 있어서 좋겠다는 등의 말을 들었어요. 또 여성은 섬세해서 이런 걸 잘한다면서 저한테 문서를 글씨로 직접 쓰는 걸 요구하기도 했거든요. 저 글씨 진짜 못 쓰는데, 너무 이상했어요. ‘여자라서’를 붙이며 커피 타라고 시키고, 사람 접대하는 일을 시키면 정말 싫거든요.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여자한테 떠넘기는 거 같기도 하고,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지만 너무 불쾌했어요. 특히 사수랑 팀장이 좀 집요하게 그랬어요. 물론 전반적으로 다 그런 분위기이기도 했고요. 좀 생각이 괜찮다 싶은 분도 있었는데 이런 문화를 못 버티고 결국 퇴사하시더라고요.

시간이 점점 지나니까 운전면허가 없으면 남자친구 집에서 밤에 어떻게 집에 갈거냐는 둥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말들을 하시고, 여성들에 대한 이상한 소문도 막 내시고 성적 농담도 서슴지 않으시더라고요. 또 남자직원들이 모여서 종종 회사 홈페이지 사내 게시판에 새로 온 여성 직원들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거든요. 그거 보면서 외모품평에 남자친구 있는지 물어보라고 시키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자리에 있어도 저는 사람 취급을 안 했어요. 아니면 제가 있어도 그런 행동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 같기도 해요. 여성을 함께 일하는 동료가 아니라 그저 ‘여성’으로 성적대상화해서만 생각한다는 게 정말 별로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문제를 제기한건 제가 처음이에요. 다른 팀들도 여성들이 소수고, 여기와 비슷한 처지라고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여성들도 본인은 원래 당했으니까.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남성분들처럼 행동을 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저를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도 하더라고요. 그 문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들 스스로 변해버린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 변화의 시작, 폭발

처음에는 사회 초년생이라서 불편하다, 하지 말라는 말을 잘 못했어요. 그런 의사를 표현하면 나한테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 혼자 여자니까, 불리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남성들끼리 편들어서 저만 나쁜 사람으로 만들 것 같다는 불안감이 있더라고요. 또 한 번은 회식 때 2차 가자는걸 싫다고 명확하게 의사 표현했는데도, 그래도 가자면서 억지로 끌고 간 적이 있거든요. 그때 ‘여긴 내가 뭐라고 말해도 내 말을 듣지 않겠구나’하고 마음을 접었던 것 같아요. 그만두더라도 조금 더 당당하게 이야기 했어야 하는데 아쉽기도 해요.

그런데 그때 당시엔 이거라도 해야지, 이거 아니면 돈을 못 번다고 생각했어요.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이미 자존감이 바닥인 상태여서 여기 아니면 또 어디서 직장을 구하겠나 싶었거든요. 이렇게 4년을 버티고 나니 제 성격도 많이 변했어요. 자존감도 낮아지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남들에 대한 경계심도 커진 것 같아요. 그러다 결국은 폭발하더라고요. 남성들에게 성희롱, 갑질을 당하면서 스트레스, 우울증도 심해지고 더는 못 참겠다 싶어서 노동부에 신고를 하게 됐어요.

또 남성 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지내다보니 자연스레 여성혐오, 페미니즘 이런 부분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거든요. 그래서 여성 인권이 좀 더 나아졌으면 생각했고, 여성들이 계속 당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해서 대표로 나선 것도 있거든요. 남자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얕잡아보고 갑질하는 것들을 경계하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금속 마스크로 시작된

처음에는 노동부에 진정을 넣고 나서 지인 소개로 음성노동인권센터에서 상담을 받았어요. 상담을 받고나서 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님이 저한테 마스크를 주셨는데 거기 ‘금속’이라고 써져있더라고요. 사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게 또 있지 않을까 해서 알아보다 노동조합에도 관심이 생겼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금속’이 쓰여 있는 마스크를 받으니 바로 가입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바로 전화해서 가입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속에 힘든 일이 더 많은데, 노동조합과 함께하니 마음이 놓였어요. 저 혼자라면 그냥 흐지부지했을 사건들이 세상에 알려졌고, 저를 지지하고 함께 해주는 분들도 만날 수 있었어요. 새로운 경험도 됐고 남들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싸워주시는 구나, 세상에 좋은 사람도 있구나 싶더라고요. 저도 연대할 수 있을 때 연대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물론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이 사건이 어떻게 해결이 될지 몰라서 좀 착잡한 기분도 들어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남아있고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정리 된 생각은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고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누구편인지 모르겠는 노동부

음성노동인권센터랑 금속노조의 도움을 받기 전에 저는 당연히 노동부가 저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고 진정을 넣었어요. 사실 그냥 개인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노동부뿐이잖아요. 그런데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노동부가 사측이 제출한 자료를 가감 없이 증거로 받아들였다는 거예요. 사측이 제 개인 블로그 내용 중 일부를 캡처해서 증거자료로 제출했거든요. 제 사생활을 파고들은 것 같아 그 부분도 기분이 나빴는데, 그 내용을 근거로 제가 평소에도 남성혐오가 있었다고 주장했다는 거예요.

사실 여성근로감독관이 사건을 맡았기 때문에 내심 안심했는데, 그 내용을 믿고 증거로 받아들였을 때 정말 어이가 없었고 분했어요. 정말 복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여성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넣으려는 행동이 너무 비열하다고 생각해요. 성희롱의 피해를 여성에게 묻는 일은 정말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 연대의 힘, 일상의 회복

저는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요즘은 자면서, 고양이들과 놀면서 무료한 생활을 보내고 있어요. 가끔 음성노동인권센터에도 들려서 일도 도와드리고, 음성 개별조합원 모임도 한 번씩 나가고 해요. 이제 책도 읽고 좀 활동적인 걸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 사건이 마무리되고, 건강도 회복되면 일상으로 돌아가서 일자리도 새로 구해야 되겠죠. 제가 이 일 그만두면 인사팀에서 일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인사팀은 노동조합에 가입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원래 했던 것 중에서 색다른 일을 도전해보고 싶어요. 체력이 되려나 모르겠지만 현장직도 한번 해보고 싶네요.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중에 저처럼 직장 내 성폭력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다면 정말 도와드리고 싶어요. 처음에는 목소리를 내는 게 너무 어렵잖아요. 그런데 목소리를 내면 분명 함께 연대할 분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조금만 더 힘을 내주시면 좋겠어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해주세요.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사건 경과

- A사에서 일하며 지속적인 일터 괴롭힘과 성희롱으로 고통 받던 여성노동자가 지난해 6월 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하였고,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8월 금속노조 개별조합원으로 가입하였다.

- 금속노조는 음성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 꿈틀과 함께 이 사건을 공동으로 대응하였다. 고용노동부 충주지청을 상대로 기자회견과 결의대회 및 매주 출근 선전전 등을 진행하며, 충주지청장 면담을 통해 충주지청의 사측 편향 조사 결과를 강하게 문제기 하여 사건을 재심 청구할 수 있었다.

- 이후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피해노동자 산업재해 인정 촉구 기자회견, 부서 담당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피해자 중심의 조사와 산업재해가 인정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받아냈다. 또한 퇴직급여조차 지급하지 않겠다던 자본을 상대로 지역 투쟁을 통해 퇴직급여를 받아내는 성과도 이뤄냈다.

- 결과적으로 가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책임을 묻지 못했지만, 이러한 투쟁을 통해 이 사건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전체 노동자의 문제로 의식하고 함께 투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사건으로 정신 건강이 손상된 피해 노동자가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근로복지공단 충주지사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여 산업재해가 인정되도록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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