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문제 해결엔 성평등한 노동환경이 전제돼야"

1908년 3월 8일, 빵과 장미를 달라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여성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알고 있나요? 그날 이후 우리 사회 여성 인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충북인뉴스는 '3·8 여성의날 투쟁 충북기획단'이 3·8 여성의날 115주년을 맞아 기획한 연재물 6편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글 : 이상민 (진보당 충북도당 성평등위원장)

저는 애 낳을 생각은 없지만 우려가 되어 몇 자 써봅니다.

저는 96년생 여성입니다. 남녀 성비(여자 100명당 남자 수)가 111.5명이던 해이자, 보건소에서 무료로 낙태 시술을 해주던 마지막 해였습니다.

작년에 우연히 포털에서 본 기사 제목은, “‘저출생 탈출’ 마지막 기회…90년대생에 달렸다”였습니다. 80년대에 비해 90년대는 비교적 태어난 여아의 수가 더 많으니 출생율이 증가할 것이라 기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나라는 한때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여아 낙태가 성행했습니다. 특히 백말띠의 해인 1990년엔, 태어난 아이들의 성비가 무려 116.5명이였습니다. 백말띠의 여아들은 ‘남편도 잡아먹을 팔자 드센 년’들이라 하여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자연 상태에서의 성비는 107.0명이라고 합니다)

그랬던 나라가, 불과 3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매해 매달 기록적으로 낮은 합계출생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년은 OECD 평균의 절반도 못 미치는 0.78명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 많은 여아를 죽였던 과거는 뒤로 하고, 또래의 여자 친구들과 자매들을 잃고 ‘간신히’ 태어나 자란 여성들에게 ‘희망’이나 ‘마지막 기회’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듣고 있자니 솔직히 ‘이제 와서 감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서 비수도권 지역에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든가, 수도권 지역의 집값을 낮춰야 한다든가 하는 얘기보단, 제가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얘기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다른 여성들도 집값이나 일자리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해, 직장갑질119에서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산전후 휴가(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문항에 직장인 3명 중 1명(35.9%)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습니다. 특히 비정규직(54.3%), 5인 미만(59.9%), 월150만 원 미만(65.3%)으로 일터에서 약자일수록 출산휴가를 못 쓴다는 응답이 높았습니다. 육아휴직 역시, 응답자의 43.1%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여성(50.2%), 비정규직(56.0%), 5인 미만(66.7%), 월 150만 원 미만(62.9%) 등 일터에서 약자일수록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 응답률이 높았습니다.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부의 느슨하고 소홀한 관리·감독 아래,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직/간접적 압박을 받고, ‘자진 퇴사’의 외피를 쓰고 해고당하는 등 쫓겨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출산과 양육을 병행하는 것에 적대적인 분위기를 가진 노동환경에서는, 당연히 누구라도 아이를 낳는 결심이 쉽지 않겠지요.

우리나라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2005년에 처음 남학생의 대학 진학률을 추월한 이래로 쭉 앞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용률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 고용률은 20대 초반만 남성을 약간 앞지를 뿐, 20대 초반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 걸쳐 남성보다 낮은 고용률을 보입니다. 특히, 한창 경제활동이 왕성할 30대 초중반에는 출산·육아기와 겹쳐 경력 단절이 발생하고, 결국 여성은 정규직, 고임금 직장에서 멀어집니다. 40대 후반부터 다시 여성 고용률이 회복하지만 역시나 남성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습니다. 또한 경력 단절 이후 여성이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는 경우, 높은 확률로 질 낮은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립니다.

또한 OECD가 발표한 2022년 한국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자녀가 있는 남성은 자녀가 없는 남성보다 고용될 가능성이 높지만, 자녀가 있는 여성은 없는 여성보다 고용될 가능성이 낮았습니다.

성차별적인 노동시장 역시도 저출생의 주범인 셈입니다. 결국, 결혼과 출산을 한 여성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경력 단절, 저임금 단순직, 비정규직, 일·가정 이중 노동입니다. 누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싶어 할까요. 사실상 여성들에게 결코 유리한 선택이 아닌데 말이죠.

이런 와중에, 충북도에서 출산가정에 1000만 원 가량의 출산육아수당을 5년간 나누어 지급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저출생의 근본 대책은 현금성 지원이 아닌, 성평등한 노동환경이라고 우리끼리만 비밀로 쉬쉬하고 있었나 봅니다. 오늘도 저는 어쩔 수 없이 비출산을 다짐합니다.

‘이런 나라라면 차라리 망하는 게 좋아’라고 생각한다면, 제가 너무 극단적이고 이기적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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