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도, “생활임금조례안 재의요구 안하지만 시행도 안한다”
“지방계약법·재정법 위반소지 있다…법제처 유권해석 따를 것”
비정규직운동본부, “충북도민 우롱하고 있다” 비판
2017년 법제처 내부서 생활임금제도 도입 보고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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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근 충북도 경제통상국장이 10일 비대면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충북도 제공)
신형근 충북도 경제통상국장이 10일 비대면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충북도 제공)

 

1만 3천여 명의 충북도민이 동의하고 충북도의회 의원들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생활임금 조례안을 두고 충북도가 또다시 딴지를 걸고 나섰다.

10일 충북도는 생활임금 조례안과 관련, 입장문을 발표했다. 입장문에서 충북도는 “위법소지가 있음을 이유로 동 조례안에 대해 재의 요구함이 마땅하나, 법제처의 유권해석에 따라 위법소지가 있는 조항은 시행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재의요구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도의회는 동 조례가 공포되더라도 위법소지가 있는 조항은 어차피 시행될 수 없으므로 적법성을 따질 실익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동 조례안을 통과시켰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조례시행과정에서 법제처의 유권해석에 따라 합법적인 조항에 한하여 시행하되, 이를 위해 이해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생활임금 조례안과 관련해 더 이상 논란이 확산되는 것은 도민화합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도민화합을 강조했다.

이상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충북도와 충북도의회가 생각하는 생활임금 조례안은 위법소지가 있기 때문에 어차피 시행되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굳이 재의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또 조례안과는 별개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생활임금심의위원회를 통해 생활임금 적용 대상자를 정하자(사회적합의)는 것이다.

충북도의 입장문을 두고 조례 제정을 요구한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이하 비정규직운동본부)는 물론 충북도의회에서도 반발하고 있다. 비정규직운동본부는 “충북도의 발표는 지방자치의 참뜻을 부정하고 160만 충북도민과 의회를 무시하는 반민주적 행정 태도로, 도민들의 분노만 살 뿐”이라고 비판했다. 또 “조례공포를 직전에 두고 ‘재의요구는 하지 않되 시행도 하지 않겠다’는 발표로 충북도민을 우롱하고 있다”며 “이시종 지사는 생활임금조례 시행을 절대 할 수 없다는 개인의 철학을 지키고자 한다면 남은 임기를 굳이 채우지 않아도 된다”고 비난했다.

충북도의원들도 “너무 답답하다”, “이시종 지사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최경천 충북도의회 대변인은 “이시종 도지사가 이 정도로 소통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도민들이 정말 바랬던 조례를 이렇게 해야 하나. 특히 의회가 크게 잘못한 것처럼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상정 도의원은 “도의회가 위법사항을 인정한 것처럼 표현했다. 우리가 보기에 위법한 것은 없다. 그나마 재의를 안 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도에서 면피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충북인뉴스DB.
충북인뉴스DB.

 

위법소지 있다는 법률, 정말 위법한가?

충북도가 생활임금 조례안에서 위법소지가 있다고 밝힌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지방재정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도와 위탁·공사·용역계약을 맺은 기관 또는 업체에 소속된 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개인보조’에 해당돼 지방재정법 제17조 제1항을 위반한다는 얘기다.

둘째는 생활임금을 적용한 계약체결은 계약상대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지방계약법 제6조를 위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캡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캡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캡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캡처. 

 

충북도 한 관계자는 “만약에 앞으로 국가에서 법을 개정해서 민간부분까지 해야 한다고 한다면 하겠지만 지금은 조항이 없어서 할 수가 없다”며 “충북도의 입장은 법제처 유권해석대로만 하겠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2016년 1월 민주정책연구원이 주관한 ‘한국형 생활임금 표준모델 개발을 위한 실태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충북도가 '걱정'하는 두 가지 법률에 대해 서울시 성북구는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 성북구에서는 우선 지방재정법 제17조 제1항 위반 여부에 대해 대법원 판례를 들며 “주민의 편의와 복리 증진에 관한 내용을 법률의 개별적인 위임 없이 조례로 정하는 것은 개인에 대한 보조에 해당하지 않음”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또 지방계약법 제 6조 제1항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생활임금 조례가 기본적으로 공공조달계약의 상대방 결정기준과 계약조건의 문제이며, 계약상대방에게 추가 재정 부담이 발생한다는 점만으로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은 아님"이라고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의견은 법제처 정용복 법령의견제시과장이 2017년 10월 발표한 ‘생활임금 관련 법적 쟁점 연구’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충북도는 사법적인 구속력도 없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다른 지자체에서는 문제없이 시행되고 있는 생활임금조례와 제도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한다는 법제처에서도 생활임금제도 인정

물론 상당수 지자체가 상위법 위반 논란과 법제처 유권해석 등으로 생활임금제도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생활임금제도를 도입하고 제대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의견은 노동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됐고, 그 결과 243개 자치단체 중 115개가 생활임금조례를 제정하고 제도를 도입 또는 준비하고 있다.

특히 충북도가 생활임금제도 정착의 '걸림돌'로 지적하고 있는 법제처에서도 2017년 이미 생활임금제도의 도입 필요성과 그에 따른 문제점, 개선점을 내놓은 바 있다.

법제처 정용복 법령의견제시과장은 2017년 10월 ‘생활임금 관련 법적 쟁점 연구’ 보고서에서 “생활임금 제도의 도입 흐름은 전 세계적으로 더 이상 막기 어려운 추세라 할 것인바 이러한 현실을 수용하고 해당 제도에 대한 법적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매우 절실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또 “조례의 해석문제, 조례간 충돌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법제처의 자치법규 의견제시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갈등문제를 신속히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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