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으로부터 한 유기묘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 집 앞마당에 침범한 작은 고양이가 있는데, 사람만 보면 머리를 비비며 인사를 한단다. 사냥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집고양이가 분명해 보이는데 자신이 키울 순 없어서 키워줄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올해 마지막 태풍이 도착하기 바로 전 날이었다. 내 동생이 스물다섯 살이니 25년 만에, 우리 집에 새 가족이 생겼다.

‘다래’라고 이름 붙였다. 음식 이름으로 지으면 오래 산다기에 그렇게 지었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땐 많이 허약한 상태였다. 병원에 데려가 보니 5살 정도 되는 성묘라는데, 원체 몸이 작은 데다 하도 오래 굶어 몸무게가 1.5kg도 채 되지 않았다. 등뼈가 잡혀 뾰족뾰족했다. 항문에는 똥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설사를 많이 해서 집이 똥냄새로 가득했다. 냄새도 잘 못 맡고, 눈도 좋지 않아 벽에 머리를 쿵쿵 부딪쳤다. 이 작고 허약한 고양이를 온 가족과 친구들은 반겨주었다. 스크래쳐와 모래, 고양이 장난감, 간식 등 다래를 위한 선물을 주었다. 제 선물인 줄 알았던 걸까? 다래는 배를 까고 눈을 맞춰주었다. 사람들을 향해 사랑을 뿜어주는 다래에 모두가 자지러졌다. 다래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고양이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달달한 다래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달콤하게 있어주는 시간은 나와 단 둘이 있을 때이다. 다래의 가장 편안한 자리는 내 옆자리이다. 내가 식탁에 앉아있으면 식탁 다리 옆이 다래의 의자이고, 내가 거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옆 방석이 다래의 침대이다. 색색 소리를 내며 한참 잠을 자다가 일어나면 조용히 나를 쳐다본다. 그러곤 배 위에 올라와 내 코에 자신의 코를 부딪친다. 기분이 한껏 좋아진 다래의 목에서 가르릉 소리가 난다. 그러면 나는 안정제를 먹은 것처럼 이완된다.

사랑을 주변에 뿜어주는 다래도 큰 기쁨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기쁨은 다래의 건강이 회복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젠 살이 붙어 제법 성묘 같다. 꼬질꼬질했던 털이 복슬복슬해졌다. 설사가 잦아들어 이젠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고구마’를 캔다. 눈곱이 껴있어도 닦지 않던 다래가 그루밍을 한다. 얼굴이 말끔해졌다. 엉거주춤 이상했던 걸음걸이는 옛일, 달릴 수 있다. 사냥놀이를 한다. 몹시 용맹하다. 10cm도 되지 않던 점프력이 50cm로 늘어났다. 정리를 더 잘해야겠다는 공포감과 함께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 왜였을까.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했던 걸까. 동물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마음을 상상하지는 못했다.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교감은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알 수 없는 소통영역이었다. 이젠 안다. 우리 가족이 된 한 고양이에게 보이는 나의 소통방식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거짓말이 없고, 가림막이 없다. 그리고 바라는 게 없다. 그저 존재 자체로 감사한 존재이다. 거기 어디에도 인간의 언어는 없다. 비로소 알 수 있다. 눈빛과, 냄새와, 숨소리로 감정을 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신을 온전히 보여주고 드러낸다는 것을 알게 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렇게 다래는 나의 세계를 한 겹 넓혀준다.

어느 날 덜컥, 범이 내려왔다. 짐승 한 마리가 내려와 얼숭덜숭 털을 날린다. 양귀 쭉 찢어지고 머리 흔들며, 코를 “치!” 푼다. 쇠낫 같은 발톱으로 등허리를 찍는다. “야! 아파!” 소리를 지른다. 가르릉 허는 소리를 낸다. 심장이 덜컹.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진다. 하품할 때 짝 잘만 벌리는 주홍 입은 약 먹을 땐 천근만근 무겁게 닫혀있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제목과 마지막 문단은 이날치 밴드 수궁가 중 '범 내려온다' 의 제목과 가사를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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