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진의 잡식생활] 독립기념일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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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진의 잡식생활] 독립기념일을 꿈꾸다
  • 김미진
  • 승인 2020.04.2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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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에 대하여

자취 3년 만에 이사를 준비 중이다. 처음에는 '원룸 이거 뭐 평생도 살겠다' 싶었지만 막상 살아 보니 3년이라는 삶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 무게를 담기에 원룸은 턱없이 작은 그릇이었다. 비록 대출의 힘을 빌리지만, 적어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본가에서 옷을 옮겨 나르는 일을 하지 않으리라. 상상만 해도 내가 하나의 개체로서 제대로 서있는 기분이 든다. 나만의 공간을 새로 꾸리는 과정을 통해 서 있는 땅을 더 단단히 다지는 중이다.

혼자 사는 내게 사람들이 종종 하는 놀라운 말이 있다.

"어떻게 젊은 여자 혼자 살아요?", "우리 애는 결혼할 때까지 내가 끼고 살 거예요." 

이 말이 더 쇼킹한 까닭은 이 말을 놀라워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자식을 끼고 살 것이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부모들을 보면 그들의 자식이 서있는 본연의 자리가 몇 평이나 될까 상상하게 된다. 청년세대가 독립하지 못하는 원인을 질 좋은 일자리가 없어서라고 쉽게들 말하지만, 캥거루족을 만드는 건 비단 청년에게 불리한 경제 상황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나 자식을 자신에게 종속시키고, 스스로 역시 자식에게 의존하는 말을 아무 부끄럼 없이 할 수 있는 곳이 이 사회라면 말이다.

탯줄을 절대 끊지 않으리라, 이를 악물고 서로를 구속하는 부모 자식 간의 견고한 약속이 느껴진달까. 심지어 인간이 경험하는 두 번째 사회 시스템인 '학교'는 한 개체를 사회에 스스로 서있게 도움을 주는 존재라기 보다 사회에 종속시키려 하는 존재에 가깝기까지 하다. 서로가 서로의 캥거루가 되어 구속하는 문화 속에서 설사 미래당의 <청년 마음껏 3년법>과 민중당의 <캥거루 탈출법>이 적용된다고 한들 그 효용성이 있을까 고찰하게 된다. 

'독립'이라는 말을 위키(사용자 참여 방식 온라인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 '독자적으로 존재함' 등으로 정의한다. 특히 부연으로 쓰인 문장이 인상 깊었는데 '권위와 힘에 얽매이지 않고 그들의 간섭을 거부하는 행위'라는 설명이었다. 오늘날이 과거에 비해 꼰대를 혐오하는 사회가 된 배경에는 서로 종속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더욱 강해진 까닭이 아닌가 추측해보았다.

많은 이들에게 당연한 것이지만 나로서는 납득이 안 가는 이상한 제도도 있다. 바로 '결혼'이다. 경험 한 적 없는 일을 섣불리 독단하면 안 되겠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는 결혼은 인간의 독립 개체성을 부정하고 서로를 소유하는 걸 당연시하는 제도일 뿐이다. 선택 공동체일 뿐인 관계를 운명공동체라 포장하고 있는 것 같달까.

최근 JTBC에서 방영 중인 인기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서로를 칼질하고 있다. 그 드라마와 이 세계에는 대전제가 있다. 그것은 '불륜은 죄'라는 공식이다. 두 인간의 사회적 구속력을 공식화하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되고 나면, 다른 누군가에게 느끼는 '사랑'이라는 숭고한 감정은 배우자를 대상으로 하는 감정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한 순간 죄가 되어버린다. '사랑'이란 아름답고 절대적인 진리라고 배워온 나로서는, 이 감정을 '죄'로 만들어버리는 결혼이 전 세계가 함께 활용하는 제도라는 게 이상하기만 하다. 막스 베버가 결혼을 '고도의 사회학적 행위'라 정의했다던가. 그렇다면 나는 결혼을 '고도의 비인권적 행위'라 정의하겠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타인에게 의존하지 말고 완전한 독립을 하라 요구할 수야 없다. 하지만 서로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자신의 존재감을 타인의 존재로부터 증명하려는 행위를 끊임없이 정당화하고 강요하는 건 폭력적이다. 우리 사회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핑계로 서로를 독립체로 인정하지 않는 행위를 용인한다. 자식을 독립시키지 않고, 부모를 독립시키지 않고, 배우자를 독립시키지 않고, 연인을 독립시키지 않고 쥐고 흔든다. 심지어 사회제도의 잘못으로 독립하지 못한 계층, 예를 들면 청년과 장애인과 경력단절 여성 등을 위한 정책은 그들이 독립할 수 있는 사회를 형성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지원금'이라는 제도에 '의존'시키는 정책뿐이다. 게다가 이러한 정책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가난을 증명하게 하는 폭력적 상황으로 유도하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발달장애인 동생 장혜정 씨를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장애인 인권 운동을 하고, 영화를 만들고, 이제 모두의 독립을 위해 권력을 가지고자 한 장혜영 감독(곧 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된다)의 한마디를 쓴다.

"장혜정 한 사람의 시민, 장혜영 또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빨리 만들고 동생보다 먼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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