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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부대 상황과 유일하게 살아 남은 경위는. "초기에는 부식등 보급지원이 최상급이었다. 하지만 작전도 없고 남북관계가 호전되면서 '버려진 존재'로 여기는 것 같았다. 겨율 연료가 없어서 나무를 직접 때기도 했따. 외출, 외박, 편지도 없이 작은 섬에 고립돼 4년간을 지낸다고 생각해 보라. 훈련대원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나는 하루전날 육지로 나갔다가 집안일 때문에 귀대를 못하고 외박을 하는 바람에 부대난동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 훈련의 내용과 성과는 어느 정도였는가. "그때 김신조 간첩단의 무장행군 능력보다 뛰어나다고 평가받았고 섬안에 평양시가지를 축소시킨 모형을 만들어 도상훈련을 실시했다. 사격술은 사건 당시 무장탈취한 달리는 버스안에서 따라오는 교통순경의 이마를 정화하게
기획연재
충청리뷰
1999.12.1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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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특수부대 '난동사건' 생존자 증언 입수 당시 소대장 청주거주, "그들은 역사의 희생양" 지난 71년 8월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민간인을 포함해 수십명이 교전현장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사건의 실체는 28년이 지난 현재까지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해방 50년 특집기획 '한국의 의혹사건’ 등에 ‘실미도 특수부대 난동사건’ 이란 제목으로 이 사건을 다루어왔다. 인천에서 16km 떨어진 무인도인 '실미도' 에서 대북한 특수부대 훈련을 받던 대원들이 집단탈영해 서울로 진입하다 긴급출동한 군 · 경과 교전을 벌였던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교전 중에 살아남은 4명의 대원은 특수살인 등의 혐의로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곧바로 총살형에 처해졌다. 특히
기획연재
권혁상 기자
1999.12.1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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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진상' 알리려던 인사들 신군부에 잡혀 고난의 옥살이 97년 '5 · 18 보상법' 적용으로 청주 김창규목사 등 6명 명예회복 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올해로 5 · 18 광주민주화운동 19돌을 맞았다. 총칼을 앞세운 5공 신군부의 무력 쿠테타에 맨몸으로 맞서 싸웠던 광주, '간첩’ ‘폭도’ 로 매도당한 채 죽어 간 수백명의 영혼들. 하지만 군사정권의 철저한 언론통제로 수많은 동포들은 광주학살극의 신음소리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80년 5월, 대한민국은 눈멀고 귀 멀고 입까지 막힌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해 5월, 충북 청주에서도 신군부의 음모에 맞서 민주화운동의 불길을 당긴 사람들이 있었다.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낸 학도호국단 체제를 깨고 '민주화의 봄
기획연재
충청리뷰
1999.05.29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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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피해자 반성과 용서의 기회 만들어야 진상규명위, 조작의혹 사건 사례집 발간예정 지난 98년은 50년만의 수평적 정권교체와 함께 세계인권선언 50돌을 맞는 의미있는 한 해였다. 해방이후 권위적 독재정권하에서 자행된 각종 인권유린 사례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이루어졌다. 특히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의문사하거나 정치적으로 조작된 시국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빗발쳤다. 새 정부도 이러한 취지에 따라 법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충청리뷰'는 이같은 시대정신에 따라 지난해 10월부터 과거 5ㆍ6공시절 충북지역에서 발생한 의문사ㆍ조작의혹 사건을 집중보도했다. 재야단체 침탈과 재야 인사에 대한 납치폭행, 대학 운동권의 국가보안법 덧씌우기, 전교조 관련 교사에 대한 조작 의혹 사건 등 총 6회에 걸
기획연재
충청리뷰
1999.01.16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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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수사로 초기 시인… 검찰조사부터 부인 일관 취재과정에서 두사람을 함께 사진촬영하는데 실패했다. 청주시민회·충북연대의 핵심적인 일꾼이다보니 서로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이들은 7년전의 ‘자주대오’ 망령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청주의 대표적인 시민단체에서 고단한 사회변혁 운동을 계속하고 있지만 혹시나 ‘레드(RED) 컴플렉스’로 인한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한때 군사독재정권의 직접적인 ‘희생자'였지만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이들의 의지는 여전히 뜨거웠다. - 군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불이익은 없었는가. 송국장 = "18일 동안 매일 조사를 받고 1개월만에 22사단 군감방에서 가족면회를 할 수 있었다. 당시 민변 변호사가 무료
기획연재
충청리뷰
1998.10.10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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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최대 공안조작사건…청대생 17명 무더기 구속 위기정국 속 보안사 수사 앞장…국면전환용 희생양 1991년 5월은 유난히 뜨거웠다. 4월 26일, 명지대 강경대 군의 치사사건으로 정국은 가파르게 요동쳤다. 강군은 시위도중 진압전경들에게 붙잡혀 집단구타당해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강군의 죽음은 지난 87년 6·10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연세대 이한열군의 최류탄 사망사건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나타냈다. 각 대학에서는 연일 정권퇴진 집회가 벌어졌고 안동대·경원대·서강대에서 잇따라 분신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전국 59개 대학이 동맹휴학에 돌입했고 노동계도 단체교섭 시기와 맞물려 5·18 총파업을 결의했다. 대학 교수들까지 '반민주 악법철폐’등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기획연재
권혁상 기자
1998.10.10 12:20